동아시아 역사

위진남북조 시대에 발전한 지인소설, 지괴소설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2. 28. 13:04

☆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문학적 특색


- 정치적 상황 : 장기 분열 시대

위진 남북조는 중국 역사상 사회가 가장 혼란스럽고 분열되었던 시기로 정권 탈취의 악순환과 그에 따른 정치적 부패와 전란 때문에 염세적인 세계관이 팽배하였다. 특히, 한나라 말기에 이르면 대규모의 농민봉기가 일어나면서 통치계급은 사분오열되고 지주 호족은 군대를 모아 자립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한나라를 엄청난 혼란에 빠뜨렸고 그 결과 220년에는 한나라가 망하고 위魏, 촉蜀, 오吳 삼국이 성립하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 뒤 위나라가 촉을 무너뜨리고 다시 서기 265년 사마씨司馬氏가 위나라를 대신해 서진西晉을 세웠지만 317년에 이르러 중국의 북쪽에는 흉노, 갈, 선비, 강, 저 등의 다섯 이민족이 서로 나라를 세우고 무너뜨리는 일을 반복하는 5호 16국五胡十六國 시대를 열었고 남쪽은 한족의 여섯 왕조가 바뀌는 혼란을 맞았다.


5호16국시대 초기5호16국시대 초기

(출처 : 来个趣味品娱乐一下--五胡十六国图)


이 시기는 589년 수나라의 통일로 막을 내리는데 이 시기를 앞 시대와 합쳐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따라서 후한의 멸망부터 치더라도 무려 370년간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 문화적 특색 : 염세주의와 도․불의 영향

이와 같은 정치적 불안은 사상적으로 문인들에게 미친 영향 또한 지대하였다. 즉 당시 문인들은 정치적인 압박과 사회적인 불안감 때문에 그들의 인생관을 바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사상은 낭만적이고 염세주의厭世主義적인 경향을 나타내어 착잡錯雜한 현실에서 도피하여 물외物外의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태평성대의 유교사상儒敎思想은 이미 자취를 감추게 되고 따라서 노장사상老莊思想과 마침 그 당시 번역飜譯되어 성행하던 불교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아 실제의 사회와 인생을 떠나서 소극적이고 퇴폐적인 염세주의 사상이 일시에 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왕필王弼, 하안何晏은 현리玄理를 담론하고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산천을 방랑하며 시주詩酒만을 즐기고 도연명陶淵明은 시사時事를 외면하고 전원에 은거하였으며, 청담지풍淸談之風이 크게 일어났다.


청담을 논하며 시간을 보낸 죽림칠현청담을 논하며 시간을 보낸 죽림칠현

(출처 : 魏晋南北朝时期私人撰史盛行原因分析)


문인들은 문학의 형식 면에서도 오직 유미주의唯美主義를 지향指向하여 조탁화려彫琢華麗한 것을 위주로 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문사文辭나 형식 면에서 아름다운 문장이라야 우선 가치 있는 문학 작품인 것으로 인식하였다.


☆ 지괴 소설


- 발생 배경

중국 역사상에서 위진남북조는 혼란의 시대였다. 동한 말년부터 시작된 동란动乱은 위진남북조 360여 년간을 이어왔다. 동한 중엽 이래로 다년간에 걸친 정치, 사회, 경제의 문란과 부패는 말년에 이르러 도비盗匪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군웅이 다투어 할거하게 되자 중앙정부로서는 이것을 막지 못해 끝내는 사회질서가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위험한 정국은 많은 문인을 정치로부터 도피하여 현실적인 길에서 멀어지도록 만들어 당시에는 은둔하는 것이 풍조를 이루었다. 그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이로써 사회적으로는 미신을 떠벌리고, 기이하고 이상한 것을 칭송하며, 귀신을 과장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그 결과 온갖 기이한 것을 말하는 지괴소설이 출현하게 되었다.


지괴소설이 발전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노신魯迅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중국은 본래 무巫를 믿었는데, 진秦, 한漢 이래로 신선설이 성행했고 한나라 말기에는 또한 무풍巫風이 크게 창달하여 귀신의 도가 더욱 번성했으며, 때마침 소승불교小乘佛敎 역시 중국에 들어와 점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산해경 장비국長臂國 사람산해경 장비국長臂國 사람

(출처 : 再续《山海经》52)


이러한 것들은 모두 귀鬼와 신神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신령스럽고 괴이한 것을 일컬었으므로 진대晉代에서 수대隋代에 이르기까지 귀신지괴鬼神志怪의 책이 특별히 많았다. 그러한 책은 문인에게서 나온 것도 있고 신도信徒로부터 나온 것도 있다. 문인의 작품은 비록 불교와 도교 양교처럼 그 의도가 자신의 종교를 신비화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한 의식적으로 소설을 지은 것도 아니었다.


대개 당시에는 이승과 저승이 비록 다르지만, 인간과 귀신이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기이한 일을 기술할 때 인간 세상에서 늘 있는 일을 함께 기록했으니, 본래 진실과 망령됨의 구별이 없었다.


즉 위진남북조 지괴소설은 무풍巫風, 방술方術의 흥성 및 전파, 불교의 전파와 불경의 번역, 문인, 방사, 승려를 중심으로 한 작자층의 확대, 귀신의 존재를 믿었던 당시 인의 관념 등으로 인해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다.


☆ 지인 소설


- 발전 배경

지괴소설의 출현과 동시에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대량의 지인 소설志人小說이 등장했다. 지인 소설은 선진의 제자 산문과 한대 사서史書의 인물전기 및 지인 고사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것으로, ‘지인志人’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지괴소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즉 현실을 살아가는 여러 계층 인간의 언행과 실제 생활 면모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환현 시기의 남북조환현 시기의 남북조

(출처 : 五胡十六国-下半场)


유명한 사람들의 인사와 일화를 기록한 지인 소설의 발전은 동한 말 사대부 사이에서 유행했던 인물비평의 풍조와 위진 이래 유행한 청담淸談과 관련 있다. 이러한 지인 소설이 등장하게 된 시대 사상적 배경을 노신魯迅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한 말의 문사들은 이미 품평을 중시하여 명성의 성패가 한마디 말에 의하여 결정되곤 했다. 위진 이후로는 더욱 품격 있는 언어를 서로 숭상하여 말씨는 현실을 벗어나 오묘한 곳으로 흘렸고 행동거지는 일부러 방탕하게 했으니, 한대에서 준일하고 꼿꼿한 지조를 중시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대개 그 당시에는 불교가 널리 퍼져 탈속의 기풍이 자못 유행했고 노장老莊의 설 또한 크게 성행했는데, 불교에 말미암으면서도 노장을 숭상한 것이 상반되지만, 세속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려 한 점은 일치했다. 이들은 서로 배척했지만, 사실은 서로 부추겨서 결국에는 널리 퍼져 청담淸談이 되었다.


동진 이후에는 이러한 기풍이 더욱 심해져서 이를 어기는 자는 오직 한두 명의 영웅일 뿐이었다. 세상이 숭상하는 바로 인하여 저작물이 생겨났는데 혹자는 옛일을 주워 모으기도 하고 혹자는 근저의 일을 기술하기도 했다. 비록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말에 불과하지만 모두 인간의 언행이었으므로 마침내 지괴의 울타리를 벗어났다. 


 이상에서 노신은 지인 소설 창작의 시대 사상적 배경으로 한ㆍ위 이래 이어져 온 청담과 인물품평 풍조의 성행을 들었는데, 이는 또한 위진남북조 지인 소설의 주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출처 - 중국문학.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