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하후연의 증손자 하후담의 서문, 하후칭과 하후영을 위해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2. 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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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의 일곱째 아들 하후화夏侯和는 자가 의권義權으로, 명쾌한 논변에 재사才思(재주가 있는 사고력) 넘치는 담론을 펼쳤으며, 하남윤河南尹과 태상太常을 역임했다.


하후연夏侯淵의 셋째 아들은 하후칭夏侯稱이고 다섯째 아들은 하후영夏侯榮이다. [하후화의] 종손從孫(형이나 아우의 손자) 하후담夏侯湛이 그들을 위한 서문을 지었다.


명필 하후담. 하후연의 증손자명필 하후담. 하후연의 증손자

(출처 : 바이두 이미지)


"하후칭은 자가 숙권叔權이다.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을 모아서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길 좋아했는데, 놀 때마다 반드시 군대의 전투와 진법에 관한 놀이를 했으며,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곧장 엄하게 채찍으로 때렸지만, 아이들이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하후연이 몰래 그를 기특하게 여겨 항우전項羽傳과 병서를 읽게했는데, 하후칭은 읽으려 하지 않으면서 말하길,


'능력만 있으면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있는데 어찌하여 남을 따라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했다.


하후칭이 16살 때, 하후연이 그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달아나는 호랑이를 보았는데, 하후칭이 말을 몰아 호랑이를 뒤쫓기에 말렸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하후칭은 화살 한 방으로 호랑이를 쓰러뜨렸다.


이름이 태조太祖(조조)에게까지 알려지자, 태조가 그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말하길, '내가 너를 얻었구나!' 라고 했다. 문제文帝(조조의 아들 조비)와는 포의지교布衣之交(불알친구와도 같다는 의미)를 맺었는데, 연회 때마다 기개가 온 좌중을 압도했으며 논변에 뛰어난 사람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세상의 고명한 자들 가운데 그를 좇아 교유한 사람이 많았다. 18살에 죽었다.


하후영. 하후연의 5남하후영. 하후연의 5남

(출처 : 夏侯荣)


동생 하후영은 자가 유권幼權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7살 때 문장을 잘 지었고, 하루에 천자씩 책을 암송했으며, 눈으로 훑어보기만 해도 곧바로 기억했다. 문제가 이를 듣고 그를 초청했을 때, 빈객 100여 명이 한 사람씩 명함을 아뢰었는데, 그것은 고향과 성명을 모두 적어놓은 세간에서 말하는 작리자爵里刺라는 것이다.


빈객들이 명함을 보여주자 하후영이 한 번 훑어보았는데, 그런 다음에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보라 했더니 한 사람도 틀리지 않았다. 문제가 그를 매우 훌륭하게 여겼다.


한중漢中(한중 공방전, 황충에게 하후연이 죽음)에서 패배했을 때 하후영은 13살이었는데, 주위에서 그를 끌고 도망가려 하자 그는 내켜 하지 않으면서 말하길, '임금과 어버이가 환난 중에 있는데 어찌 죽음을 피하겠는가!' 라고 했다. 그리고는 검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결국 진영에서 죽었다."


위진세어, 김장환, 학고방, 154p~156p

출천 - 삼국지 위서 하후연전


한중공방전. 유비와 조조 진격로한중공방전. 유비와 조조 진격로


나름대로 삼국지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하후칭과 하후영의 일화는 처음 읽어보네요.


간단히 하후연의 자식들을 정리해 봅니다.


하후형衡, 장남

하후패霸, 차남

하후칭称, 3남

하후위威, 4남 (하후장의 아버지, 하후담의 친할아버지)

하후영荣, 5남

하후혜惠, 6남

하후화和, 7남

금지옥엽 막내딸은 장비랑 결혼


장비와 유선의 황후 장씨장비와 유선의 황후 장씨

(출처 : 三国蜀汉后主刘禅的皇后---张氏)

(장비는 딸 같은 아내를 얻었음)


하후위는 하후장庄을 낳았고, 하후담은 하후장의 둘째 아들입니다. 하후담은 동생인 하후돈淳(행보관인 맹하후와 동명)과 진나라 시기에 문사로 이름을 날렸다는데 정보는 부족하네요. 여러 저서를 남겼다곤 하는데 다 소실되버렸고....


ps. 작리자爵里刺 = 고향과 성명을 모두 적어놓은 명패입니다. 바이두에서도 이미지 검색 안 되는 거 보니, 발굴된 적이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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