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서주 대학살] 후한서 도겸전과 자치통감 기록 [후한서] 도겸전 초평 4년, 조조가 도겸을 공격해 팽성국 부양傅陽현을 격파하자 (주1) 도겸이 물러나 담현을 보전했다. 조조가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자 돌아왔다. 지나는 길에 취려, 저릉(수릉), 하구를 함락하고 모두 도륙했다. (주2) 모두 남녀 수십만 명을 죽이고 닭과 개조차 남지 않으니 사수가 이 때문에 흐르지 못했다. 이로부터 5개 현의 성보城保에 다시는 (사람의) 행적이 없었다. 애초 삼보에서 이각의 난을 만난 이래 백성들이 유이流移하여 도겸에 의탁한 자들이 모두 섬멸되었다. (주3) 흥평 원년, 조조가 다시 도겸을 공격해 낭야, 동해의 여러 현들을 공략해 평정하니 도겸이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단양으로 달아나 되돌아가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