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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한나라 헌제를 끝까지 모셔야 했던 이유? [삼국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1. 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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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한나라 헌제를 끝까지 모셔야 했던 이유? [삼국지]


순욱이 조조에게 제시한 천자를 높여서 받들고, 공평무사하며, 정의를 크게 선양하라는 삼대 강령은 전방위적으로 조조의 개인적 야심을 억제했습니다. (한나라 마지막 황제, 헌제의 자리에 욕심내지 말라는 의도도 있었음)


그리고 마음이 언제나 황실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고와, 장군의 숙원이 천하를 바로잡아 회복하려는 데에 있다는 이 두 마디는 마치 조조 자신이 한 말에 자신을 옥죈 것과도 같아서, 그가 평생 감히 한나라 헌제를 대신하여 서슴없이 황제라 칭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조조는 자신의 야심이 부풀어 올랐을 때 그들에게 원한을 품었는지도 모릅니다. 순욱은 핍박을 받아 자살하였으며, 모개도 하옥되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후일의 이야기입니다.

서기 196년, 이때의 조조는 아직은 난세의 영웅이 되려고 하였으며, 한나라 황제(헌제)를 받들어 국가의 통일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삼국지 무제기의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위서에 따르면, 6년 전 원소가 유우를 다로 세워서 한나라 황제로 삼고자 했을 때, 조조는 원소에 다음과 같이 회답했던 적이 있습니다.


"동탁의 죄악은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우리 연합군이 그토록 많은 사람의 지지와 호응을 받은 이유는 우리들의 행동이 정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삼국지 조조 담배 조승상[조조가 한나라 헌제를 끝까지 모셔야 했던 이유?] 황제 모시느라 스트레스가 많으셨던 조승상


지금 황제(한나라 헌제 유협)는 나이가 어리고 세력이 약해서 간신의 간섭을 받고 있지만, 황제 자신은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황제를 바꾸면 천하에 누가 마음을 편하게 먹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조조는 비분강개하여 말합니다.


"여러분이 북쪽을 향한다면 저는 혼자 서쪽을 향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유주幽州로 새로운 황제를 받들러 가라. 나는 혼자서 서쪽 장안으로 황제(한헌제 유협)를 보위하러 가겠다!"


는 말입니다.


조조의 이 이야기는 길지는 않지만,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통일을 주장하고 분열을 반대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표명한 것입니다. 분열은 전쟁을 의미하며 아울러 백성들의 고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일찍이 호리행蒿里行(태산의 남쪽, 사람을 장사지내던 장소. 호리행은 장례 할 때 부르던 만가[추모곡], 출처, 심심한 뽀송이)이라는 시를 지어, 관동 연합군의 사분오열된 상황을 회고하고, 전쟁 속에서 백성들이 겪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묘사했습니다.


그야말로 곳곳에는 이재민이 가득하고, 굶어 사체가 깔려 있어 눈 뜨고는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조조는 노래합니다.


관동에 의로운 사람 있어, 흉악한 무리 토벌하려 병사를 일으켰네.

처음에 제후들 맹세하기를, 황제(한나라 헌제)를 위해 충성을 다하자 하였지.

군대를 합쳤으나 힘을 모으지 못하고, 주저하는 자와 나아가는 자 있었네.

이익을 좇으니 다툼은 일어나고, 이윽고 서로를 해치기에 이르네.

회남에 황제를 칭하는 자 있더니(원술을 말함), 북방에선 옥새를 새기는 자가 생기네(원소가 유우를 황제로 잉립하려고 새로 옥새를 새긴 일)

갑옷에 서캐와 이가 일더니, 만백성이 죽어가네.

백골은 들판에 버려지고, 천 리 안엔 닭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네.

백성은 백에 하나가 남았으니, 생각할수록 사람의 애를 끊누나.


삼국지 조조의 호리행[조조가 한나라 헌제를 끝까지 모셔야 했던 이유?] 삼국지 조조의 호리행


(關東有義士, 興兵討群凶) 관동유의사 흥병토군흉

(初期會盟津, 乃心在咸陽) 초기회맹진 내심재함양

(軍合力不齊, 躊躇而雁行) 군합력부제 주저이안행

(勢利使人爭, 嗣還自相戕) 세리사인쟁 사환자상장

(淮南弟稱號, 刻璽於北方) 회남제칭호 각새어북방

(鎧甲生蟣蝨, 萬姓以死亡) 개갑생기슬 만성이사망

(白骨露於野, 千里無雞鳴) 백골로어야 천리무계명

(生民百遺一, 念之斷人腸) 생민백유일 염지단인장


이러한 광경을 조조는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조조는 굳게 국가의 통일을 주장했으며, 이를 위해 일생 분투합니다. 국가가 통일하려면 통일의 상징이 있어야 합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바로 황제입니다. 황제가 누구인지는 절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조건이 무르익는다면 자기가 황제를 맡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황제(한나라 황제, 즉 헌제를 지칭) 자체가 없을 수는 없으며 또한 둘일 수도 없습니다.


그가 동탁을 반대했던 이유는 동탁이 황제를 없는 것처럼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원소에 반대했던 이유는 원소가 황제를 둘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꿋꿋하게 정치 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조건이 무르익었을 때도 헌제의 자리를 빼앗지 않았습니다.


곧, 만약 국가에 내가 없다면 몇 사람이 황제를 칭할지 몇 사람이 왕을 칭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통일을 위해 그는 차라리 자신이 참을망정, 한 무더기나 되는 황제들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삼국지 강의 1권, 이중톈, 김영사

조조가 한나라 헌제를 끝까지 모셔야 했던 이유?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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