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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교육 역사, 유학, 유아, 초등, 중등, 근대, 학생 운동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8. 2. 1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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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교육 역사, 유학, 유아, 초등, 중등, 근대, 학생 운동


유학교육

대전은 백제 시대에는 우술군雨述郡(지금의 회덕), 고려 시대에는 하남도河南道에 속하여 지배를 받았는데, 교육부문에서도 백제 오경박사, 고려의 국자감, 향교 등을 미루어 볼 때 유학의 영향 아래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조선에 이르러 유학이 성행하면서 대전에서도 유학교육의 뚜렷한 양상이 나타난다. 회덕과 진잠에는 각각 회덕향교, 진잠향교가 설립되었고, 서원으로는 숭현서원(유성구 원촌동), 정절서원(동구 가양동), 도산서원(서구 탄방동), 용호서원과 미호서원(회덕)이 설립되어 유생들을 가르쳤다.


특히 대전은 기호학파의 영역에 속하였는데 이이, 김장생, 김집, 송시열로 학통이 이어지며, 송준길, 윤휴, 권시 등의 명성 있는 유현儒賢이 배출되었다.

유아교육

유아교육은 1840년 독일의 프뢰벨이 어린이 동산 창설에서 비롯되어 우리나라에는 1897년 일본인을 위한 사립 부산유치원이 처음으로 세워졌다. 대전에도 1913년 대전유치원이 처음 개원하였으나, 역시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다. 1929년 드디어 한국인을 위한 유치원인 대덕유치원이 문을 열어 3명의 직원이 51명의 원아를 가르쳤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기독교를 중심으로 유아교육에 관심을 보였고, 1960년대 정부에서도 유아교육에 관심을 쏟으며 교육과정, 시설 등에 관한 제도 정비를 실시하여 지속해서 교육기관을 증설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유아교육은 '유아에게 알맞은 교육환경을 제공하여 유아를 교육하고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돕는다'라는 교육 목표를 두고 있다. 대전에 첫 유치원이 개원한 후 80여 년이 지난 현재 246개원(공립 89, 사립 157)에서 21,052명의 원아를 교육하고 있다.


대전 유아 교육 시설 교육박물관[우리나라 교육 역사] 한밭 교육 박물관


대전 초등학교 수 역사 박물관[우리나라 교육 역사] 한밭 교육 박물관


초등교육

1895년 갑오개혁으로 근대교육이 도입되며 소학교가 설립되고 초등교육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1905년 통감부 체제가 되면서 초등교육은 일제의 주도 아래 놓였다. 대전의 최초 소학교인 대전소학교(대전 원동 국민학교)가 1906년 개교하였지만(1980 폐교), 일본인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된 것이었다.

이후 사립 신흥학교(1906, 현 신탄전 초등학교) 회독 공립보통학교(1911, 현. 대전 삼성 초등학교), 진잠공립보통학교(1913, 현 진잠초등학교)가 개교하였고, 일제강점기 동안 10개의 학교가 더 설립되어 현재 140여 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초등학교는 그 이름이 시대에 따라 소학교 -> 보통학교 -> 국민학교 ->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교육내용 또한 꾸준히 변화해 왔다. 하지만 초등교육의 중점이 학생의 일상생활을 위한 기초 능력 배양과 기본생활습관 형성인 것은 변함없다.


대전 중학교 역사 2012년[우리나라 교육 역사] 한밭 교육 박물관


중등교육

대전의 중등교육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지만, 사립 중등학교가 없고 공립에만 의존하던 상황과 실업 중심의 교육제도, 일본인 위주의 학교 운영 등으로 기반이 미약했다.


1917년 대전중학교가 개교한 이후 1920년대 한국인의 대학진학이 허용되었음에도 대전 공립 고등 여학교가 일본인을 위해 운영되었을 뿐이었다. 실업교육을 위해 대전 공립 상업 보습학교(1920), 대전 공립 공업 전수학교(1927)가 있었고, 관립 대전 사범학교(1943)를 두어 교원을 양성하였다.


해방 후 중등교육은 한국전쟁, 정치적 긴장과 격변 속에 높은 교육열을 보이며 학교 수, 학생 수 모두 양적으로 급증하였다. 특히 대전은 1990년대부터 둔산, 관저, 노은, 도안에 이르기까지 서부권을 중심으로 한 신도시 개발이 이어지며 이 지역에 중등교육기관이 급속도로 팽창하였다.


또한 중등교육은 무시험, 고교 평준화 등 중고등학교 입시제도 변화, 특성화 교육, 대학입시 제도 변화 등을 통해 지속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대전 고등학교 역사 박물관[우리나라 교육 역사] 한밭 교육 박물관

근대교육

1876년 개항으로 교육에서도 변화가 시작되어 1895년 갑오개혁으로 새로운 학제가 도입되고 소학교, 중학교, 사범학교, 외국어학교 등 각급 학교가 설립되면서 근대교육이 본격화되었다.


대전은 1904년 경부선 부설로 일본인이 급증하면서 이들의 교육 문제 해소를 위해 소학교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1906년 4월 개교한 대전소학교(대전 원통 국민학교, 1980 폐교)가 바로 그것으로 대전 최초의 근대식 학교이다.


반면 대전의 중등교육은 사학의 중등학교 운영이 없어 그 기반이 미약했다. 하지만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교육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며 대전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초등, 중등, 고등 교육이 균형 있게 기반을 잡고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대전 분야별 고등학교 현황[우리나라 교육 역사] 한밭 교육 박물관


대전 교육기관 현항 2012년[우리나라 교육 역사] 한밭 교육 박물관


학생운동

대전지역 학생운동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차례 있었다.


첫째는 1919년 전국적인 독립 만세운동의 영향 아래 3월 16일 안동장터에서 양사길의 주도로 시작된 안동장터 독립 만세운동이다. 두 번째는 1930년 광주 항일 학생운동의 확산 속에 대전 공립 상업 보습학교와 대전중학교 학생이 각각 일제에 맞선 것이다.


보습학교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결의하고 인동 주변에서 행진하며 조선이 학생 석방, 조선 총독 폭정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으나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과 함께 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전중학교 학생들은 선우회 조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1932년 일본인이 경영하는 대전군시제사공장 파업에 한 달여 동안 삐라를 제작하고 배포하며 동조하였다. 하지만 결국 투옥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1960년에 일어난 학생운동은 대전고등학교 학생 1,000여 명이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대항한 것으로 3월 8일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독재에 반기를 들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시위 중 경찰과 유혈사태를 빚었는데, 이 38민주의거는 대구 228의거와 함께 315의거, 419혁명의 기폭제 역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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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밭 교육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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