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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화재, 명필과 묵죽도 (신위, 위창, 숙신옹주 등)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2. 5. 11:51

조선 문화재, 명필과 묵죽도 (신위, 위창, 숙신옹주 등)


여기서 소개하는 내용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들입니다.


조선 소식 조주한문공묘비 윤순[조선 문화재] 백하 윤순 조주한문공묘비


소식蘇軾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

윤순尹淳(1680~1741), 1740년


백하 윤순이 당나라의 조주자사潮州刺史를 지낸 한유韓愈(768~824)의 묘비문을 쓴 것이다. 비무 내용은 송나라 명문장가 소식蘇軾(1037~1101)이 지었다.


미불 서풍을 근간으로 짜임과 운필의 변화를 조화롭게 운용한 윤순의 천연스러운 필치가 잘 드러난다. 윤순이 1740년(영조 16) 6월에 썼다고 했는데, 61세로 타계하기 1년 전이다. 윤순 행서의 전형을 살필 수 있어 서예사적 의미도 높다.


퇴촌이십영 시평 조선 신위[조선 문화재] 신위 퇴촌이십영 시평 (홍초소옥)


퇴촌이십영 시평退邨二十詠 時評

신위申緯(1769~1845), 1816년

이 서첩에는 '홍초소옥紅椒小屋'이란 당호를 쓰는 사람이 지은 오언시 20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자하紫霞 신위가 시가 쓰여있는 첩면 상단에 주필朱筆로 짧은 감상을 적었으며, 첩의 말미에 시를 칭찬하는 발문跋文도 남겼습니다. 신위의 시에 대한 안목과 천연스러운 필치를 동시에 살필 수 있습니다.


숙신옹주허여문기 조선 태조[조선 문화재] 태조 숙신옹주 허여문기


숙신옹주허여문기淑愼翁主許與文記

태조太祖(1335~1408), 1401년 씀, 1725년 간행 석각본


조선 태조 임금이 태상왕太上王 시절에 따님 숙신옹주에게 가옥 20여 칸을 급여한 문서입니다. 태조~경종 임금의 어필을 모은 1725년 간행 열성어필에 처음 실렸습니다. 이 필적의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묵죽도 허련 조선 무위노사[조선 문화재] 허련 묵죽도


乙酉秊春之初,

宿於寺裹爲無爲老師嚵意

痴年七十八 淸影搖秋

老痴. [小癡]


을유년(1885) 3월 초에

절 안에 묵으면서 무위노사(無爲老師, 안인安忍)의 부탁으로 그렸다.

소치의 나이는 78세, 맑은 그림자가 가을을 흔든다.

노치老痴.

묵죽도墨竹圖

허련許鍊(1809~1892), 1885년


소치 허련은 글과 글씨와 그림을 모두 잘하여 삼절三絶이라 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묵죽을 잘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허련이 78세 나던 1885년(고종 22) 해남 대둔사(大芚寺, 또는 대흥사大興寺)에 묵게 되었을 때 무위無爲 안인安忍(1816~1886)을 위해 그려준 것입니다. 무위 안인은 호의縞衣 시오始悟(1778~1868)의 제자입니다.


백씨초당기 모서 오세창 위창[조선 문화재] 백씨초당기 모서


백씨초당기 모서白氏草堂記慕書

오세창吳世昌(1864~1953), 1911년


위창葦滄 오세창이 청대 서화가 등석여鄧石如(1743~1805)의 백씨 초당기白氏草堂記를 그대로 모서慕書한 것입니다. 오세창은 1919년 31 대한독립 선언으로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는데 신해년(1911) 가을 음력 7월에 쓴 이 서첩은 수감 이전 필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서풍은 성재性齋 김태석金台錫(1875~1953)에게도 영향이 되었습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문화재, 명필과 묵죽도 (신위, 위창, 숙신옹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