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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와 중국 위진남북조 (백제, 신라, 가야)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8. 1. 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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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와 중국 위진남북조 (백제, 신라, 가야)


삼한三韓 시대

이상에서 기술한 (위진남북조 시대 고구려[링크]) 고구려의 국가 형성은 한반도 남부, 나아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삼국지 동이전 기사에 의하면, 3세기의 한반도 남부는 마한, 진한, 변한의 세 국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서부에 위치한 마한 안에서만 소국 50여 개가 분립해 있었다고 한다.


삼한 시대에 그 소국의 하나로서 백제국伯濟國이 있었는데, 이것이 마한 내부의 여러 나라를 연합, 통일하는 중핵이 되었던 듯하고, 그러한 이유로 마한통일체가 백제百濟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찍이 국가형성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고구려는 남쪽으로의 공격 방향을 주로 이 백제연합체로 겨누었다. 369년 마침내 고구려는 백제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백제연합체를 이끈 근초고왕은 다행히 고구려군에게서 승리를 거뒀다. 그 기회에 왕은 수도인 한성에 가까운 한강 남쪽에서 승리를 가져온 여러 군대를 열병하고 깃발의 장식물에 모두 황색을 사용했다.


삼한 위진남북조[삼한 시대와 위진남북조] 삼한 지도


위진남북조 시대에 중국에서 황색은 황제가 사용하는 색임을 고려할 때, 근초고왕은 고구려에 대한 대승리를 기회로 해서 마한 내부의 여러 국가보다 한 단계 위에 위치한, 이를 통일하는 황제의 지위에 오를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삼한 시대에 백제의 국가형성은 이처럼 고구려의 직접적인 자극에 의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백제는 371년에는 고구려의 평양성까지 쳐들어갈 정도로 세력을 떨치게 되었으나 강대한 고구려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왜국과 동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에 비하여 신라는 진한 가운데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에서 발전한 것으로, 처음에는 백제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고구려의 힘을 이용하여 백제의 영향에서 벗어났지만, 신라를 병탄하려 하는 고구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저항하였다.


신라는 한편으로 이러한 고구려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백제, 왜의 연합세력으로부터 압력을 받으면서 국가형성의 험난한 길을 끈질기게 걷기 시작했다. 이러한 험난한 환경은 오히려 신라의 내실을 강건하게 했을 것이다.


6세기에는 중국과 고구려의 율령을 참조하여 율령을 제정하였고, 이윽고 7세기에는 한반도를 통일하는 기초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삼한 시대와 중국 위진남북조 (백제, 신라, 가야)

출처 : 중국의 역사 위진남북조, 가와카쓰 요시오, 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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