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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역사책 추천,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 문인의 삶

믿을만한 건강정보 2022. 12. 1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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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역사책 추천,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 문인의 삶

 

이 책의 서평

한 문인의 손이 움직인다. 가로로 세로로 그의 손이 움직인다. 움직이는 그의 손은 길게 혹은 짧게 움직인다.

검은 자욱이 깊이 베인 그 하얀 종이가, 그 문인의 운명을 결정할지 누가 알았으랴.

그는 집중한다. 손톱 끝의 검은 자욱을 왼쪽으로 보낼까, 아니면 오른쪽으로 보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여지없이 대각선으로 보내기로 했으니.

 

그는 다시 집중한다. 검은 선을 오른쪽 위로 그을까, 아니면 왼쪽 아래로 그을까, 어디로 그을지 그는 또 고민한다.

 

그는 또다시 집중한다. 오른쪽 위로 그을지는 결정했으나 조금 그을지, 길게 그을지를. 그는 마침내 길게 그었다. 그러나 깊은 시름은 다시 그의 미간에 드러난다.

 

갓난아이의 손가락 하나가 깊게 묻힐만한 주름살 사이가, 어느새 더 깊어져 그간 그어놓았던 검은 선을 모조리 빨아들일 것만 같다. 그 문인은 이내 손을 놓았다.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잠시 감는다.

 

검은 선은 이내 짙어져 눈앞을 온통 검게 물들였지만,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로 그의 입가 주름을 겉으로 드러낸다.

 

이제 그는,

그 문인은,

그자는,

그 글쟁이는,

 

여느 때 보다 눈꺼풀을 위로, 아래로 벌려놓은 채 자신을 괴롭히던 그 검은 선을 빠르게 긋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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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삶이란 이런 것이란 말인가

그가 젓가락을 들지 않고 붓을 들면 아름다운 꽃이 되고, 그가 숟가락을 들지 않고 허공에 손가락을 뻗으면 달콤한 향을 풍기는 바람이 되는, 검은 선을 남기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는 가슴속 한켠의 외로움을 달래진 못했다.

 

그 외로움은 그가 남긴 검은 선의 외로움이 투영된 것이랴.

 

그 외로움은 그에게 말한다.

 

"내 비록 그대가 하얀 세상에 남긴 검은 얼룩일지 모르오.

그러나, 검은 얼룩은 내 하나로 남을 순 없다오.

그대가, 나와 같은 검은 얼룩을 하나 더 남겨주시오.

그대와 내가, 나와 그대가, 그리고 우리와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작은 얼룩으로 만족할 순 없는 것이라오."

 

그는 다시 미간에 한 웅큼의 힘을 주어 두 눈썹 사이의 계곡을 더더욱 깊게, 더 깊게 파낸다.

 

하얀 배경의 동그란 검은 자욱이 그에게 말을 거는 또 다른 검은 자욱에게 되묻는다.

 

"내 어찌 너를 홀로 두겠느냐.

홀로 두지 않을 것이다.

홀로 두지 않을 것이나,

넌 어찌도 내가 큰바람을 불게 하는 것이냐.

난 네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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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대답 없는 그 검은 자욱에게 다시 묻는다.

 

"난 너를 경멸하느니라.

고동치는 내 속의 외로움도 너를 경멸하느니라.

그런데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너는,

나를 경멸하는 것이냐,

아니면,

나를 흠모하는 것이느냐."

 

그 문인은 오늘도 새하얀 종이에 검은 자욱을 남기며 울면서 웃는다.

 

옛 문인들은 붓과 먹에 영혼을 투영해 왔을 것이다. 어용학자들이 올려놓은 높은 벽 안에서 그들은 무엇을 고민했을까?

 

단지 영리를 위해서만 목을 젖혀 하늘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윗입술에 포개며 소심한 미소를 띠었을까. 목을 젖힌 세상에 펼쳐진 검은 세상의 하얀 빛에 자신의 검은 눈망울을 비추며 검은 세상의 하얀 빛이 되고자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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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대다수 문인은 검은 세상의 하얀 빛이 되고자, 하얀 종이를 자신의 손으로 검게 물들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존재다. 검은 자욱을 세상에 남기는 것으로 사명과 정의를 실현했다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다. 검은 자욱이 아름다운 향기가 되도록 노력했을 것이고, 검은 자욱이 남에게 베껴져 온 세상에 퍼지길 원했으며, 검은 자욱을 보고 황홀해 하는 황제의 표정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다. 그들은 그런 존재다.

 

그들은 모두가 보유한 동그란 검은 자욱을 자신의 검은 자욱으로 채우길 원한다. 그들에겐 욕구의 바람이 분다. 이를 모두 실현하라는 욕구. 

 

그들이 욕구를 견디지 못하고, 황홀해 하기는 커녕 동그란 검은 자욱에 빨간 자욱이 남는 글을 남긴다. 이들은 이를 비극이라 생각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이 자욱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

빨간 자욱이 생긴 이들을 탓할 것이다.

 

정치

이들은 정치를 알지 못한다. 단지, 이들은 자신들이 남긴 검은 자욱이 정치란 하얀 종이에 스며들길 원할 뿐이다. 이들의 욕구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하얀 종이에 나의 자욱이 남길 바랄 뿐. 그러나, 이들은 몰랐다. 정치란 종이는 하얗지 않았다. 그들이 남긴 검은 자욱을 잔인하게 씹어 삼킬 정도로 그 알 수 없는 자욱은 모든 걸 집어삼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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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은 왜 그리도 미련했을까. 그 검은 자욱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를 조금만 참았어도, 사마천처럼 평생의 고통을 안고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죽음을 숨기지 않았어도 되었을걸.

 

이사처럼, 아들에게 그 작은 소망하나를 유언으로 남기지 않았어도 되었을걸. 공자진처럼, 검은 자욱을 삼켜버린 이에게 삼켜지지 않았어도 되었을걸.

 

그들의 검은 자욱은 천 년이 지나도 아름다운 글로 남았다. 그들을 삼킨 검은 자욱은 그들이 남긴 검은 자욱을 되 삼켜 버릴 정도로.

 

문인의 삶이란 무엇이랴. 미련하디 미련할 뿐이다. 손톱 끝에 보이는 붓의 끝을 위로 떼지 못하고, 하얀 종이 위로 움직인 그들의 미련함은, 후세에 아름다움으로 남았으니 슬플 뿐이다.

 

후대의 이들은 당시의 이들을 기린다.

 

"아름다운 문장을 남긴 아무개여, 그대의 글이야말로 최고요. 아름답소, 존경스럽다오!"

 

문인의 삶. 미련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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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책을 읽다 보면 리궈원 작가가 우파로 몰려 탄압받았던 경험도 종종 언급됩니다. 그것도 재미있어요.

ps2. 리궈원 작가의 독서량과 방대한 지식을 잘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참 좋은 책입니다.

ps3. "어느 할멈이 이 아이를 낳았을까, 영형아의 유래"[클릭]를 보시면 잘못된 상식에 대한 지적도 언급됩니다. 여러모로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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