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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 남편 사도세자와 아들 정조 (수원 화성 행궁)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0. 30. 12:27

혜경궁 홍씨, 남편 사도세자와 아들 정조 (수원 화성 행궁)


33년 만의 재회, 혜경궁 홍씨의 현륭원 참배

조선 정조는 수원행차의 첫 행사로 현륭원(사도세자 무덤) 참배를 계획했으나 장거리 여행으로 지쳐있는 혜경궁 홍씨를 위하여 하루 뒤로 미루었다.


수원에 도착한 이튿날(윤2월 11일) 새벽,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가 계시는 현륭원으로 향했다. 정조의 누이동생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 역시 뒤따랐다. 남편을 떠나보낸 지 33년 만에 무덤을 찾은 혜경궁 홍씨는 그동안 가슴에 담아 두었던 설움을 이기지 못해 통곡하였다.

철의 여인, 혜경궁 홍씨

혜경궁 홍씨(1735~1815)는 1735년(영조 11) 6월 도성의 서대문 밖 평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아버지 홍봉한洪鳳漢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다.

10살이 되던 1744년 1월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왕세자빈이 되었다. 혜경궁 홍씨의 불행은 남편 사도세자가 광증을 보이면서 시작되었다. 결국, 1762년 5월 영조의 명령 때문에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을 겪었다.


사도세자 서거 후 혜빈惠嬪이 되었고 1776년 아들 조선 정조가 즉위하자 혜경궁惠慶宮으로 격상되었다. 말년에는 궁중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한중록을 집필하여 사도세자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였다.


1815년(순조 15) 81세 고령으로 서거하였으며 현륭원에 마련된 사도세자 옆자리에 합장되었다.


수원행차 원행을묘정리의궤 혜빈[수원 화성 행궁 전시회] 수원화성박물관


을묘년 수원행차의 최종보고서, 원행을묘정리의궤


발간 : 1798년 (조선 정조 22)

분량 : 10권 8책 635장 (총 1,2709쪽)

활자 : 금속활자 정리자整理字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기 위해 떠난 7박 8일간의 수원행차에 관한 기록이다.


의궤儀軌란 의식儀式과 궤범軌範이란 말로써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으로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다.


조선 정조(사도세자 아들)의 명령으로 편찬된 이 책은 목판화 그림인 도식이 대부분인 권수, 1795년 수원행차의 전말을 기록한 원편 (권1~권5) 5권, 그리고 을묘년에 행한 다양한 행사에 대하여 기록한 부편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새로 주조한 금속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의궤로 대량 인쇄되어 대신들에게도 배포되었다. 당대의 최고 화원畵員들이 생생하게 그린 그림과 꼼꼼하게 행사 내용을 기록하고 있어 그 당시의 생활상을 잘 알 수 있다. 의궤로는 맨 처음 활자와 판화를 함께 갖춘 인쇄 채제로 제작한 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이후 화성성역의궤(1800년)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의궤의 모범이 되었다.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혜경궁 홍씨 현륭원 정조[혜경궁 홍씨 남편 사도세자] 중국역사회모본 서문


사도세자의 죽음, 임오화변壬午禍變


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안에다 엄히 가두다

廢世子爲庶人, 自內嚴囚


1762년(임오년) 나경언은 사도세자가 남몰래 궁을 빠져나가 평양에 다녀오고, 시전 상인의 돈을 빌려 쓰고 갚지 않는 등 비행을 저지른다고 영조에게 고해바쳤다.

영조는 크게 분노하였으며, 광증으로 인한 사도세자의 무분별한 행동에 크게 실망하였다.

마침내 윤5월 13일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령하였으나, 주변 신하들의 만류로 여의치 않자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8일 만에 죽게 하였다. 이 사건을 임오화변壬午禍變이라 한다. 윤5월 21일 왕세자가 서거하자 영조는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시법諡法(시호를 논의하여 정하던 방법)에 따르면 이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思, 일찍 죽는다悼는 뜻이다.


정조 대왕 윤염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수원 화성 행궁 전시회] 수원화성박물관


온궁영괴대도溫宮靈槐臺圖

1760년(영조 36) 7월 사도세자가 온양행궁에서 활쏘기한 후 군수 윤염尹琰(1709~1771)에게 명하여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게 하였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1795년 정조는 이를 기념하여 영괴대비靈槐臺碑를 건립하였으며 그림도 제작하였다. 그림 상단의 온양행궁에는 세 그루의 회화나무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고 그 주변으로 다양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림 아래에는 어제영괴대명御製靈槐臺銘과 더불어 윤염 일가에 대한 포상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795년 을묘년은 혜경궁 홍씨와 동갑인 사도세자가 생존해 있었다면 함께 회갑을 맞는 해였으므로 조선 정조는 아버지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관련 기념사업을 추진하였고, 그 내용을 원행을묘정리의궤 부편4의 온궁기적溫宮紀蹟에도 수록하였다.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 임오화변[수원 화성 행궁 전시회] 수원화성박물관


봉수당진찬도 온궁영괴대도 영조 정조[수원 화성 행궁 전시회] 수원화성박물관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1795년 윤2월 13일 조선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베푼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전체적으로 채색의 농도가 짙고 화려하며, 인물들의 동작 표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보존 상태가 완벽에 가깝고 후대의 가필 흔적도 없어 현전하는 봉수당진찬도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면 부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구도로 행사의 화려함을 잘 표현하였다.


평양 임오화변 수원행차 정조[수원 화성 행궁 전시회] 수원화성박물관


혜경궁 홍씨, 남편 사도세자와 아들 정조 (수원 화성 행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