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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축성, 도로, 재료 (수원화성 박물관, 풍납토성, 삼년산성, 강화외성)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0. 2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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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축성, 도로, 재료 (수원화성 박물관, 풍납토성, 삼년산성, 강화외성)


수원화성 정조대왕 화성전도[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전도


조선 시대 성곽의 결정체,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조선성곽과 이웃 나라 성곽이 지닌 장점을 결합하여 새로운 시설물을 고안한 성곽 건축의 결정체다.


수원화성은 삼국시대 이래 우리 성곽 문화가 지닌 우수성을 바탕으로 중국 및 일본 성곽의 장점을 결합하여 만든 성곽이다.


각각의 시설물들은 방어 기능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특히 지형과 지세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도 않으며, 꼭 있어야 할 자리에 해당 기능을 가진 시설물을 배치한 점은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또한, 화성에는 정조의 애민정신이 깃들어 있다. 축성 기간 중 지나치게 춥거나 더울 때는 공사를 중지하고, 기존의 설계를 바꿔가면서까지 민가의 훼손을 최소로 줄였다.


수원화성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려 한 정조의 의지가 담긴 새로운 개념의 성곽이다.


수원화성의 규모

둘레 : 5,713m

면적 : 지정구역 371.145m2, 보호구역 13,520m2


수원화성 강화외성 벽돌[수원화성박물관] 십자로

(중앙에 행궁을 배치하고 남북 방향의 주요 도로에 동서 방향의 간선도로를 +자 형태로 만든 모습)


십자로 생성

조선 초기 중앙 도시는 남향의 관청과 그 앞에 T자 형태의 도로를 배치하였다. 그러나 수원화성의 관청은 동향이고, 도로도 남북 방향을 주 도로로 하는 +자 형태의 길을 생성하였다.

이는 지형을 고려한 것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뻗어 나오는 도로와 연결하여 상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교통의 중심지로 조성하려 하는 의도였다.


수원화성 축성 정조대왕[수원화성박물관] 축성 공사


수원화성 풍납토성 성곽[수원화성박물관] 축성 공사


풍납토성 수원화성 축성 목재[수원화성박물관] 축성 공사


정조대왕 수원행차 수원화성 축성[수원화성박물관] 축성공사, 거중기


수원화성의 축성공사

수원화성의 방어시설인 동북노대를 만드는 모습이다.


수원화성 축성에는 석재를 올리고 내리기 위해 사용된 거중기와 녹로, 기초지반을 단단하게 다지는 달구, 운반 도구인 유형거, 동거와 평거 등과 같이 다양한 축성 도구가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정조대왕 수원화성 축성[수원화성박물관] 팔달산, 숙지산


석재의 이동 경로

수원화성 축성에 필요한 석재는 팔달산, 여기산, 숙지산 등에서 채석되었다.

석맥을 잘 골라 결을 살펴 정으로 구멍을 파고 밤나무나 물푸레나무를 박고 물을 부어 나무가 팽창하는 힘으로 돌을 떠내었다. 이렇게 채석한 돌들은 육로로 운반되었다.


수원화성 목재 구포 각종 나무[수원화성박물관] 석재 조달 장소


석재 조달

조달 방식 : 정해진 가격에 따른 가격으로 석수에게 돈을 지급

조달 장소

1. 팔달산 - 13,900 덩어리

2. 숙지산 - 81,100 덩어리

3. 여기산 - 62,400 덩어리

4. 석록산, 아어산 - 30,200 덩어리


수원화성 축성 광주 왕륜면 정조[수원화성박물관] 석재, 성돌


종류

크기

소요량(개)

개당 가격

길이

한변

작은 성돌

2자 8치

1자 5치

6만 2천

3전

중간 성돌

3자

1자 8치

4만

5전

큰 성돌

3자 5치

2자

3만

8전


수원화성 축성 벽돌 목재 안면도[수원화성박물관] 벽돌 조달


벽돌의 이동 경로

수원화성 축성에 필요한 벽돌은 광주 왕륜면 백운동 가마, 서봉동 가마, 북성 밖 가마에서 조달하였다. 벽돌가마는 모두 20좌가 설치되었고 여기서 만들어진 벽돌을 수원으로 유입하였다.


석맥 수원화성 거중기 녹로[수원화성박물관] 벽돌 조달


목재의 이동 경로

수원화성 축성에 필요한 목재는 국가에서 관리하던 재목을 베어 오거나 사 오는 2가지 방식으로 조달되었다.


이러한 목재들은 때로는 군함으로, 때로는 뗏목으로 바닷길을 이용하여 전국에서 구포鷗浦(현재 화성시 비봉면 구포) 항구를 통해 수원으로 유입하였다.


석재 수원화성 도로 석록산[수원화성박물관] 목재 이동


목재 조달


조달 방식 : 나라의 산림에서 직접 벌채하거나 민간 목재상에게 구입

조달 장소

1. 충청도 안면도 : 대부등(길이 30자 이상) 1,000주

2. 황해도 장산곶, 봉산 : 풍락송(길이 15~20자) 1,700주

3. 강원도 양주, 금화 : 각종 나무(길이 약25자), 4,600주, 노송(길이 30자) 4주

4. 전라도 : 느티나무(굵기 2자 5치) 52주

5. 민간상 : 서까래(13,299개), 송판(2,300닙), 소재목(3,200주)


서까래 수원화성 팔달산[수원화성박물관] 서까래


수원화성 규모 보호구역 십자로[수원화성박물관] 목재 조달 수로


풍납토성 한성백제 삼년산성[수원화성박물관] 풍납토성


흙으로 쌓은 풍납토성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풍납토성(사적 제11호)한성백제 시대 초기의 판축법版築法으로 축성된 대표적인 토축성土築城이다.

판축법은 흙을 막대기로 다져 흙 속의 공기를 빼내 흙바닥을 단단하게 하는 축조방식으로써 판축성벽의 축조방식은 일정 구간에 나무틀을 만든 후 그 안에 모래와 찰흙을 번갈아 가며 다지는 것이다.


삼년산성 충북 보은 470년 강화외성[수원화성박물관] 삼년산성


석재로 쌓은 삼년산성

충북 보은군 보은읍 오정산五頂山에 위치한 삼년산성(사적 제235호)신라 시대 서기 470년에 축성된 대표적인 석축성石築城으로, 3년에 걸쳐서 축성했다고 하여 삼년산성으로 불린다.


체성은 내외벽면을 나란히 일정한 높이 이상으로 석재를 축조해 올린 협축夾築 방식으로 축성되었다.


강화외성 전축성 몽골 고려 김시혁[수원화성박물관] 강화외성


벽돌로 쌓은 강화외성

강화외성은 수원화성과 더불어 벽돌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전축성塼築城이다. 고려 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1233년 내성을 쌓았고, 1237년에 흙으로 외성을 쌓았다. 


이후 조선 시대에도 이를 보수하여 사용하였으며 병자호란 후 외성 안쪽은 흙으로 바깥쪽은 돌로 개축하였다. 강화유수 김시혁金始爀의 건의로 1743년(영조 19)에 외성을 벽돌로 다시 쌓아 완성되었다.


수원화성 축성, 도로, 재료 (수원화성 박물관, 풍납토성, 삼년산성, 강화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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