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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성역의궤와 수원 출신 김후 (수원화성박물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0. 23. 10:29

수원 화성성역의궤와 수원 출신 김후 (수원화성박물관)


수원 화성성역의궤 김후[수원 화성] 화성성역의궤, 수원화성박물관


김후 초상

김후金㷞(1751~1805)의 본관은 해풍海豊이고 자는 광중光仲이며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상걸金相傑(1727~1798)의 아들이다.


1771년(영조 47) 정시 무과에 급제 후 출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790년(정조 14) 수원중군에 제수되었고, 1791년 당시 수원부 읍치邑治의 외곽을 호위하던 독성산성禿城山城의 중군을 역임하였다.


1793년에는 경기중군이 되어 경기지역의 모든 군사업무를 실질적으로 통솔하게 되는데, 수원 화성 축성(화성성역의궤를 만든 이유)이 시작되기 딱 1년 전이었다. 정조가 의도적으로 수원 토박이 무반 가문 출신의 김후를 중용하였다.

1794년 2월 화성성역 별감동別監蕫이 되어 화홍문, 방화수류정 등 시설물의 현장감독으로 886일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축성이 끝나자 그 공을 인정받아 숙마 1필을 하사받았고 이후 황해병사를 거쳐 내금위장에 이르렀다.


김후 초상은 40대 중반의 모습으로서, 오사모에 흉배가 부착된 단령을 입고 있는 상복본常服本이다. 가슴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수 놓인 흉배가 부착되어 있어 무관 당상관임을 알 수 있다.


제작 시기는 수원 화성 축성을 마치고 그 공로를 포상받는 시점인 1796년 후반으로 추정된다.


수원 화성성역의궤 수원화성박물관[수원화성박물관]


김후 초상은 문관 초상보다 수적으로 드문 무관초상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가작佳作으로 평가된다. 김후 초상을 보관하던 함과 호수 그리고 호수함도 함께 전한다.

정조는 수원 출신의 무관들을 수원 화성 축성에 참여시켰는데(화성성역의궤 제작 이전), 해풍 김 씨 집안만 하더라도 김후 외에도 감동監蕫 김혁金㷜과 김희金熺 등이 참여하였다.


수원화성 김상걸 감동 김혁 김희[수원화성박물관]


김후 호수虎鬚

김후가 사용하던 것으로 전하는 호수와 그것을 보관하는 함이다. 호수는 무관이 융복戎服차림을 할 때 머리에 쓰던 주립에 꽂는 장식품이다.

호랑이 수염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보리 이삭이나 새의 깃털로 만들어진다. 김후 호수는 시료 분석 결과 새의 깃털로 확인되었다. 호수는 무관의 상징이다.


화성성역의궤 수원 화성 축성 정조대왕[수원화성박물관]


수원 화성 축성 종합보고서, 화성성역의궤


정조의 명령으로 1796년 완공된 수원 화성의 축조에 관한 기록을 집대성한 책이다. 1801년에 간행된 종합공사보고서로 건축도면과 축성 기계의 그림도 수록하여 당시의 건축기술과 과학 수준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자료다.


화성 축성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1796년 9월에 편찬을 시작하여 그해 11월에 원고가 완성되었고, 1801년 9월에 간행되었다.


화성성역의궤 수원화성박물관[수원화성박물관]


프랑스판 화성성역의궤

파리 동양어대학도서관 소장본을 프랑스 민속박물관장 Henri Chevalier가 홍종우洪鍾宇에게 번역을 의뢰해 간행한 책.


조선 시대 건축보고서의 진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수원 화성 축성은 큰 토목건축 공사로서 많은 경비와 기술이 필요하였으므로, 그 공사 내용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겨야 하겠다는 뜻에서 정조가 봉조하奉朝賀 김종수金鍾秀에게 편찬을 명령, 1796년 9월에 시작하여 그해 11월에 원고가 완성되었고, 이어 1801년(순조 1) 9월에 인쇄 발간되었다.


수원 화성 박물관 화성성역의궤 정조대왕[수원화성박물관]


책의 체재는 권수卷首 1권, 본편本編은 제1권에서 제6권까지로 축성공사와 관련된 내용이며, 부편附編 3권은 행궁의 증축공사에 대한 내용으로 총 10권 9책이다.


책의 구성은, 책머리에는 이 책의 편찬방법, 경위, 구성방침을 실은 범례가 있고, 권수에는 본편과 부편에 총목록을 실은 총목總目과 성곽축조에 관계되는 일지를 실은 시일時日, 성곽축조 및 의궤편찬에 관한 관청의 관리명과 담당업무를 실은 좌목座目, 그리고 성곽과 각종 건조물과 공사에 사용된 부재部材와 기계, 도구 등의 그림 및 그 설명을 실은 도설圖說을 수록하였다.

화성성역의궤는 그 내용만으로도 중요한 학술자료가 되지만, 정교한 활자나 높은 수준의 인쇄술을 잘 나타낸 표본적인 서적으로도 귀중한 것이다.


화성성역의궤 수원 행차 화성 박물관[수원화성박물관]


그 밖에도 조선 후기 축성공사의 실태와 무기 발달에 대응한 축성법을 잘 나타냈고, 대역사에 든 물동량과 경영의 본말을 알 수 있어서 사회경제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다.


더욱이 이 책은 1997년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200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화성성역의궤 서장대 수원화성 축조[수원화성박물관] 서장대


서장대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군사지휘소로 일명 화성 장대라고도 불리며 2층 누각으로 축조되어 있어 2층에 오르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정조대왕의 화산 능참배 시 이곳에 방문하여 직접 군사를 지휘하였다고 한다.


수원 화성 축조

- 총 공사 기간 2년 9개월, 총 공사비용 87만 냥

- 국왕으로부터 돌을 나르는 인부에 이르기까지 70여만 명 참여

- 돌덩이 18만 7천 6백 개 사용

- 거중기, 녹로, 유형거 등 축성 과학기구 사용

- 성과급제와 공사실명제 시행


수원 화성성역의궤와 수원 출신 김후 (수원화성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