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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정조 황금갑옷, 국화 그림, 팔가백선, 정조 어필 비망기 (수원화성박물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0. 15. 07:30

조선 임금 정조 황금갑옷, 국화 그림, 팔가백선, 정조 어필 비망기 (수원화성박물관)


조선 임금 정조 황금갑옷[조선 임금 정조] 규장전운에서 정조의 이름이 성이라고 함


조선 임금 제22대 정조


조선 후기 문예 군주이자 개혁 군주로 규장각을 설치하여 학문을 발전시키고 장용영을 창설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탕평 정책을 추진하여 정국을 안정시켰다.


정조는 신분과 관계없이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차별받던 서얼들을 등용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더불어 국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임금 정조는 오늘날 조선 시대 세종과 더불어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다.


조선 임금 정조 규장각[수원 화성 박물관]


특히 정조는 수원화성 축성과 신도시 수원 건설을 통하여 오늘날 수원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정조正祖 (1752~1800)

이름은 성祘 (규장전운奎章全韻에서 '성'으로 발음), 자 형운亨運, 호 홍재弘齋,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1752년(영조 28) 

9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탄생

1759년(영조 35) 

윤6월 

 왕세손으로 책봉(8세)

1762년(영조 38) 

2월 

 김시묵의 딸과 가례를 올림(11세)

(영조 38) 

윤5월 

 사도세자 승하

1764년(영조 40) 

2월 

 효장세자(정조의 백부, 훗날 진종으로 추존)의 후사가 됨(13세)

1775년(영조 51) 

12월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 수행(24세)

1776년(영조 52) 

3월 

 영조 승하, 조선 제22대 임금으로 즉위(25세)

(정조 즉위) 

9월 

 규장각 설치

1788년(정조 12) 

1월 

 장용영 창설(37세)

1789년(정조 13) 

10월 

 사도세자 묘소 이장 및 수원 읍치 이전(38세)

1794년(정조 18) 

1월 

 수원화성 성곽 착공(43세)

1795년(정조 19) 

윤2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8일간의 수원 행차(44세)

1796년(정조 20) 

9월 

 수원화성 성곽 준공(45세)

1800년(정조 24) 

6월 

 조선 임금 정조 승하(49세)

1899년(광무  3) 

12월 

 고종대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로 추존


조선 임금 정보 팔가백선[수원 화성 박물관]


황금갑옷을 입은 정조


정조는 선왕 영조와 마찬가지로 많은 행차를 했으며 행차가 지나갔던 지역의 백성들을 만나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는 백성들과 직접 대면하여 사회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의도와 더불어 장엄한 행차를 통해 국왕의 위엄을 알리고자 하였다.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독과 용기[수원 화성 박물관]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둑과 용기


정조의 행차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1795년 윤2월의 수원 행차였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한 수원 행차는 7박 8일간의 일정으로 약 6,300여 명이 동원된 대규모 행사였다.

군복인 융복을 입고 수원으로 행차하던 조선 임금 정조는 화성에 입성하기 전에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갑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는 수원화성의 완공(1796년)을 앞두고 왕조의 중흥과 그 권위를 통하여 관료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애민정신의 실천을 통해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어 왕권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자 함이었다.


조선 임금 정조 어필 비망기[수원 화성 박물관] 반차도 중 임금의 갑옷을 실은 말의 행렬


조선 임금 정조 수원화성박물관[조선 임금 정조] 황금갑옷 입은 모형


행렬 앞에 세우는 대장기 둑㪲과 용이 그려진 대형 깃발 용기龍旗 역시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조선 임금 정조 영조 혜경궁[수원 화성 박물관] 선원계보기략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선원계보기략은 조선 왕실 족보로서 1679년(숙종 5) 처음 간행되어 왕실과 관련한 변동 사항이 있을 때마다 증보되었다.

본 2종의 표지 서명은 모두 선원보략璿源譜略이나 각각 1책과 8책으로 구성되어있다.

1책의 선원계보기략은 1841년(헌종 7)에 중교重校, 보간補刊된 것으로 순원왕후純元王后의 가상존호加上尊號 사실을 추가하여 실으려고 간행되었다.


조선 임금 정조 비망기 김시묵[수원 화성 박물관] 선원계보기략


1900년(광무 4) 증보된 8책의 선원계보기략은 내사본內賜本으로 제1책의 표지 이면에 1901년(광무 5) 6월 봉조하奉朝賀 송근수宋近洙에게 하사한다는 내사기內賜記가 있다.


영조와 사도세자 및 조선 임금 정조의 계보는 제7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조 장조(사도세자) 정조 세계도영조 장조(사도세자) 정조 세계도


정조가 그린 파초 그림

왼쪽 위에 정조의 호인 홍재 낙관이 있다. 이 파초 그림은 서화와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조선 임금 정조 세계도 대리청정[수원 화성 박물관]


정조가 그린 국화 그림

오른쪽 위에 조선 임금 정조의 호인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낙관이 있다.

이 국화 그림과 파초 그림은 쌍폭으로 추정된다.


조선 임금 정조 성군 개혁 군주[수원 화성 박물관]


팔가백선八家百選

정조가 세손 시절 소장했던 서책인 팔가백선이다. 이 책의 서문과 본문 첫 면 하단에 정조의 소장인 관물헌觀物軒, 이극지장貳極之章이 함께 찍혀있다.


관물헌은 정조가 세손시절 강학하던 장소이며, 이극은 세자를 지칭한다.


조선 임금 군주 서울 등용 규장각[수원 화성 박물관]


이 책에는 당송팔대기의 한 사람인 한유(768~824)의 문장 28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유는 당나라 문인으로 호는 창려이다. 정조는 옛 문장을 익히기 위해 세손 시절부터 이러한 책을 가까이하였다.


훗날 조선 임금 정조는 직접 당송팔대가의 글 100편을 뽑아서 어정팔가백선御定八家百選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이는 1781년(정조 5) 명나라 사람 모곤의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鈔를 참고하여 당송시대 문인들인 한유, 유종원, 구양수, 소순, 소식, 소철, 중공, 왕안석 등 8명의 문장을 선별하여 편찬한 것이다.


정조어필 비망기正祖御筆 備忘記

1796년(정조 20) 2월 12일 좌의정 채제공을 파직하는 비망기다. 1789년(정조 13)과 1790년 두 차례 좌의정을 지내고 1793년(정조 17) 영의정을 역임한 채제공은 1795년 12월 다시 좌의정에 임명되었다.


조선 임금 정조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 수원행차[수원 화성 박물관]


이때 정조가 사간원 헌납 유하원柳河源을 유배시키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를 가르친 적 있던 채제공이 유하원을 두둔하자 정조는 직접 어필로 비망기를 내려 파직을 명하였다.


왕이 친필로 비망기를 내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조선 임금 정조 황금갑옷, 국화 그림, 팔가백선, 정조 어필 비망기 (수원화성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