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대왕 13차 수원 행차와 군복 (수원화성박물관)

조선 정조대왕 13차 수원 행차와 군복 (수원화성박물관)


정조 어진 선원보감[정조대왕 어진] 선원보감


이 포스트는 수원화성박물관에서 개최한 조선 정조대왕 수원 행차 행사에서 찍은 사진과 글을 소개합니다.


조선 후기 성군인라 칭송되는 조선 정조대왕은 탕평 군주이자 문예 군주로 규장각 설치, 장용영 창설, 수원화성 축성 등의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수원과는 특별한 인연을 맺어 재위 기간 동안 무려 13차례나 수원 행차를 거행하였습니다.


1789년 수원으로 옮겨 조성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에 매년 참배하기 위한 행차였습니다.


조선 정조대왕은 재위 20년이 되는 해인 1795년 을묘년 8일간의 성대한 수원 행차를 위해 6천 명이 넘는 수행원을 이끌고 화성행궁으로 향했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 잔치를 수원에서 베풀어 자식으로서의 지극한 효심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1. 수원으로 납시다!


정조대왕은 조선 시대 그 어떤 국왕보다 행차를 많이 했던 임금이었다. 그는 24년의 재위 기간 중 66회 행차를 하였으며 그중에서도 을묘년(1795년) 수원 행차는 조선 시대 최고의 국왕 행차로 평가된다.


을묘년은 정조대왕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해였다. 국왕 본인이 즉위한 지 20년이 되었으며 사도세자와 혜경궁이 회갑을 맞이하는 해였기 때문이다.


1795년 윤2월 9일 이른 아침 길을 떠난 국왕의 행렬은 이튿날 저녁 수원에 당도하였다. 장안문으로 입성하기 전 정조대왕은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였다.


그 누구보다 위풍당당하던 국왕의 입성에 모든 백성은 열렬히 환호하였다. 자신이 만든 신도시의 백성들과 마주하는 정조대왕 역시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조선의 제22대 국왕 정조대왕이 수원에 납시었다!


화성일기 이희평, 정조대왕 수원행차[조선 정조 수원행차] 화성일기 이희평


화성일기華城日記

이희평李羲平(1772~1839)이 을묘년 수원 행차 때 윤2월 9일부터 17일까지 수원을 다녀와서 지은 기행일기다. 한산韓山 이씨 이희평은 혜경궁의 이성異性 6촌 친척이며 혜경궁 회갑연 잔치에 참석한 외본 69명 중 한 명이다.


일기에는 한강 위에 설치한 주교舟橋의 모습과 정조의 행차 광경, 서장대에서의 군사훈련과 직접 참여한 봉수당진찬의 모습 등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2. 정조대왕의 13차례 수원 행차


제1차 1789.10.6~10.9 (3박 4일)

아버지를 모신 현륭원에 처음 행차하다.


제2차 1790.2.8~2.12 (4박 5일)

수원부 관아에 장남헌, 복내당, 득중정 어제 현판을 내리고, 현륭원 참배 후 수원 남쪽 독산성에 행차하다.


제3차 1791.1.16~1.18 (2박 3일)

노량의 주교를 이용하여 변경된 노정을 따라 현륭원 참배를 다녀오다.

제4차 1792.1.24~1.26 (2박 3일)

현륭원의 재전齋殿에 어진을 봉안하고, 환궁 길에 지지대 이름을 명명하다.


제5차 1793.1.12~1.14 (2박 3일)

수원부의 이름을 화성으로 개칭하고, 채제공을 초대 화성 유수로 임명하다.


제6차 1794.1.12~1.15 (3박 4일)

팔달산에 올라 화성의 공사 구간을 살펴보고 화성의 유래를 설명하다.


제7차 1795.윤2.9~윤2.16 (7박 8일)

을묘년에 회갑을 맞이한 어머니를 모시고 8일간의 대규모 수원 행차를 나서다.


제8차 1796.1.20~1.24 (4박 5일)

영화역, 관길야, 대유평, 만석거라 이름을 짓고 비석을 세워 기념하도록 하였으며, 사도세자 탄생일에 맞추어 현륭원에서 작헌례를 거행하다.


제9차 1797.1.29~2.1 (2박 3일)

전년 9월에 완공된 화성을 처음으로 순행하다.


제10차 1797.8.15~8.19 (4박 5일)

인조의 아버지 원종元宗 무덤인 장릉章陵을 거쳐 현륭원에 행차하다.


제11차 1798.2.1~2.5 (4박 5일)

만년제의 개축을 논의하고,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현륭원 참배를 강행하다.


제12차 1799.8.19~8.21 (2박 3일)

태종의 헌릉獻陵을 경유하고 과천로를 이용하여 현륭원에 행차하다.


제13차 1800.1.16~1.18 (2박 3일)

왕세자(순조) 책봉을 알리기 위하여 생애 마지막으로 현륭원을 참배하다.


화성 행행일기 홍봉한 홍용한 정조대왕[조선 정조 수원행차] 화성행행일기 홍용한


화성 행행일기華城幸行日記

정조의 외조부 홍봉한洪鳳漢의 동생인 홍용한洪龍漢(1734~1809)이 1795년 수원 행차에 대해 쓴 글이다. 그의 시문집 장주집長州集 권17에 실려있다.

홍용한은 혜경궁의 회갑연에 초대받아 수원의 화성행궁에서 열린 다양한 행사를 직접 지켜본 인물이다. 수원 행차의 배경과 목적을 기술하고 국왕 행렬 및 수원에서 펼쳐진 수원향고 배알, 낙남헌 과시, 현륭원 참배, 서장대 군사훈련, 봉수당진찬연, 신풍루사미, 양로연 등 주요 행사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정조 어진 이창훈 초상 철종 어진[조선 정조 수원행차] 정조, 철종 어진


3. 군복 차림의 정조대왕


전하는 자궁의 뒤에서 융장戎裝을 입으시고 전립戰笠을 쓰셨는데, 붉은 털과 비취빛 깃이 마치 군의軍儀 같았다. 아로새긴 활과 붉은 화살, 금빛으로 치장한 칼을 차고 적색 등나무로 만든 채찍을 들고 8척尺의 붉은 말을 타고 계셨다.


- 1795년 혜경궁의 작은아버지 홍용한洪龍漢이 쓴 화성 행행일기 중에서


성상이 군복을 입자오시니 군복에 금으로 용을 그렸으니 금빛이 조요하여 날빛에 찬란하더라 ... 화성행궁에 도착하니 화성 마병도 모두 유의를 입고 돌아섰고 군례軍禮를 받드는 정조도 황금 갑주에 유의를 입어 애달프더라


- 1795년 혜경궁의 조카 이희평李羲平이 쓴 화성일기 중에서


정조대왕 투구 수원행차[조선 정조 수원행차] 투구


이처럼 정조대왕은 매번 수원 행차에 군복을 착용하였다. 그 이유는 생부 사도세자가 평소 군복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덤인 현륭원 참배를 위한 수원 행차에서는 모두 군복을 입었다.

정조대왕은 1795년 을묘년 윤2월 9일 아침 일찍 곤룡철릭袞龍帖裡 차림으로 창덕궁을 떠나 한강 주교를 건넌 후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시흥행궁으로 향할 때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정조대왕 갑옷 수원행차[조선 정조 수원행차] 갑옷


그리고 윤2월 10일 수원에 도착한 정조대왕은 장안문에서 갑주(갑옷과 투구)로 고쳐 입고 장용외영의 군례를 받기 위해 군문軍門으로 들어갔다.


수원유수 겸 장용외사인 조심태趙心泰(1740~1799)가 길 왼편에서 무릎을 꿇고 국왕을 영접하였으며, 정조대왕은 봉수당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다.


대모백은장 옥구 보도, 정조 대왕 수원행차[조선 정조 수원 행차] 대모백은장 옥구 보도


이희평은 이 모습을 정조대왕이 "황금갑옷을 입고 군례를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이같은 황금갑옷의 기록으로 인하여 드라마나 재현행사에서 정재도왕 역의 연기자들은 금색이 찬란한 갑주를 착용하곤 한다.


조선 정조대왕 13차 수원 행차와 군복 (수원화성박물관)



댓글(1)

  • 낭소
    2021.03.27 16:04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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