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단군왕검 이두문-신지의 역사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8. 2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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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 이두문-신지의 역사


神誌의 역사 - 조선상고사

전사前史(단군왕검 이두문 시절)에 단군왕검 때에 신지神誌라는 사람이 있어 사관史官이 됐다 하였으나,


사실은 곧 신치의 번역이요,

신치는 신크말치의 약자요,

신크치는 신가의 별칭이요,

신가는 앞에서 말한 다섯 가의 수석首席 대신이니,

신치 곧 신가가 늘 신수두의 제일祭日에


단군왕검 이두문


단군왕검 이두문으로 우주 창조의 신화와 영웅과 용사 등이 행한 일과 예언, 유의, 경계하는 이야기를 노래하여 역대로 예가 되었다. 후세에 문사文士들이 그 노래를 거두어 한 책을 만들고, 그 벼슬 이름 신치로 책 이름을 한 것이니, 이른바 단군왕검 이두문으로 신지가 곧 그것이다.


이제 신지의 원서가 없어져서 그 가치의 어떠함을 알 수 없으나, 그 책 이름이 단군왕검 이두문으로 지은 것이니, 그 내용의 기사도 단군왕검 이두문으로 기재한 것일 것이다.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磾傳에 신지비사神誌秘詞


여칭추극기如秤錘極器

칭간부소량秤幹扶蘇樑

추자오덕지錘者五德地

극기백아강極器百牙岡

조항칠십국朝降七十國

뇌덕호신정籟德護神精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

흥방정태평興邦定太平

약폐삼유지若廢三諭地

왕업유쇠경王業有衰境’의 10구를 싣고,


부소량扶蘇樑은 지금의 송도松都, 오덕지五德地는 지금의 한양, 백아강百牙岡은 지금의 평양이라고 하였다.


단군왕검 주화 2010년단군왕검 주화 2010년


단군조선 주화 2010년 북한단군조선 주화 2010년 북한


그러나 송도, 한양, 평양은 고려의 삼경三京이고, 단군왕검의 삼경은 하나는 지금의 합이빈이니,


고사에 부소갑扶蘇岬, 비서갑非西岬 혹은 아사달阿斯達로 기록한 것이고,

하나는 지금의 해성海城, 개평蓋平 등지이니,

고사에 오덕지五德地, 오비지五備地, 안지홀安地忽 혹은 안시성安市城으로 기록한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평양이니,

고사에 백아강百牙岡, 낙랑樂浪, 평원平原 혹은 평양平壤으로 기록한 것이다.


단군왕검 이두문 읽는 법에 부소扶蘇, 비서非西, 아사阿斯는 ㅇ스로 읽고, 오덕五德, 오비五備, 안지安地, 안시安市는 아리로 읽고, 백아강百牙岡, 낙랑樂浪, 평원平原, 평양平壤은 펴라로 읽는 것이니, 위의 비사 10구는 단군왕검 이두문의 신지를 한시로 번역한 것이다.

단군왕검 이두문 신지


대게 삼국 말엽에 한학漢學이 흥성하여 한학자들이 전에 단군왕검 이두문으로 기록된 시와 글을 한시와 한문으로 번역함을 시도하였으니(최치원의 향약잡영鄕藥雜詠 따위), 신지의 한시 번역도 그 한 예이다.


어찌하여 비사秘詞라 일컬었는가? 고대의 역사 종류를 성서聖書라 하여 대궐 안에 비장 해두어 민간에 유행함을 허락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단군왕검 이두문 포함)


신지와 신지비사 따위가 어찌하여 하나도 후세에 비장이 불에 타고 신라의 것이 겨우 전하여 고려조까지도 왕궁에 단군왕검 이두문 한 벌이 있어 이조에 와서는 이를 서운관書雲觀에 두었었는데, 역시 이조 임진왜란의 불에 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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