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삼국지의 세계 서평, 삼국지빠들도 모르던 이야기 다수 수록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8. 18. 09:31

삼국지의 세계


제목 그대로 정사나 연의를 통해선 접해볼 수 없었던 다른 "세계"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도 여태껏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다룬 책이기 때문이라, 목차만 보고 이 책을 봐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제5장 삼국의 외교와 정보전략

 1. 외교전술

 2. 망명, 투항과 정보 교란

 3. 위촉오 각국의 이민족 문제

 4. 장수와 군대


제7장 유불도, 삼교 정립의 시대

제8장 문학이 움튼 시대

 4. 미술과 공예

 5. 종이와 정보의 역할


등등,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접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이토록 재미있었을 줄이야 생각도 못 했습니다.

"위촉오를 둘러싼 주변 세계와 삼국의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의문에 대답해줄 책이 바로 삼국지의 세계입니다.


삼국지 연의 속 삽화 - 조운 황충 제갈양(제갈무후) 장포 관흥


삼국지 강의와의 궁합


삼국지 강의를 읽고 난 뒤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삼국지의 세계를 읽고 난 뒤에 삼국지 강의를 읽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삼국지 강의란 책의 내용은 무겁습니다. 그래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삼국지 매니아인 저로서도 삼국지 강의를 읽는 중 버겁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었는데, 삼국지의 세계를 읽으면서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을 크게 받았습니다. 삼국지의 세계를 읽으면서 당대의 정보 혁명, 정략결혼, 유교, 도교, 문학의 개성 등에 대해 미리 이해하고 지나가면 삼국지 강의를 읽기도, 이해하기도 훨씬 수월합니다.


여태 살면서 이렇게 궁합이 좋아 보이는 책은 난생처음입니다.


중국 게임 삼국지지三國之志 - 관우 조조


두 책... 정말 좋은 궁합의 책입니다.

(삼국지 강의는 중국, 삼국지의 세계는 일본에서 나온 책인데 우리나라에선 왜 이런 책이 나오지 않는지 아쉬움)

(이재하 교수의 인간 조조라는 책 이외엔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음)


제7장 유, 불, 도, 삼교 정립의 시대부터


6장까지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봐왔던 내용이라 속독을 했습니다. 후한 말기의 혼란과 삼국 말기의 통일 과정을 다뤘기 때문이죠. 이 책이 7장부터 재밌는 건 그만큼 재밌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길지도 않습니다. 핵심만 쏙쏙 뽑아 읽기 좋게 정 되어있습니다.


가령, 현학을 예로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도가 사상과 유가 사상을 연결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을 현학玄學이라 합니다. 위나라 시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그 중심엔 실권을 장악한 조상 일파 중 하안과 왕필이 있었습니다. 하안은 도덕론을 지어 유가와 도가가 동일하다 주장했으며 왕필은 노자와 주역에 주석을 달았습니다.

또,  조상 일파의 하안과 하후현은 재능과 덕성을 서로 전혀 관계가 없다 주장하였으나, 사마의 일파는 재능과 도덕의 일치를 주장하였는데, 당시에 도덕이나 품성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출신 집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에 조조 이래로 이어져 온 "유재시거"가 어떻게 현실에서 정치 투쟁으로 이어졌는가를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예는 불교입니다.


부처의 소위 32상 가운데 '정립수마슬상正立手摩膝相', 즉 몸을 바로 하여 직립했을 때 손이 무릎에 닿는다고 하는 것으로 유비의 손이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는 비유는 불교의 영향일 것이며, 오나라 수도 건업에서 활약하던 승려인 지겸과 강승회는 손권과 직접 만나며 오나라 군신은 물론이고 온 나라 전역에 불교를 퍼트려 손침 대에 탄압을 받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특히, 조조의 아들 조충이 코끼리의 무게를 잰 일화는 사실이 아닙니다. 불경인 잡보장경의 기로국인연에 나오는 이야기로 신동을 미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교 경전이 이용된 사례입니다. 위나라 지식인들 사이에 퍼졌던 불교가 진나라까지 이어진 반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북방 사람(위)과 남방 사람(오)에 대한 우스갯소리, 조비의 살롱에서 나온 괴담집인 열이전에 대한 이야기, 촉나라의 사분력, 오나라의 건상력, 위나라의 경초력과 같은 과학의 이야기, 삼국 도성의 특징과 삼국 이후의 역사, 삼국의 공예품 특징, 무기 개발 경쟁 등등, 마치 삼국 시대에 대한 교과서를 읽는 기분마저도 듭니다.


재미있는 책입니다.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에피소드


329p


(손호)의 아버지 손화는 아내가 제갈각의 조카였기 때문에, 제갈각 살해 때에 연루되어 같이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불행한 처지에서 자란 손호는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었던 듯하다......

.....

.....

오나라의 마지막 재상인 장제는 오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현명한 이도, 어리석은 이도 모두 예상한 일로 지금 알게 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손호는 신하들도 자신과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초조함이 그를 신하들에 대한 시기심과 폭행으로 이끈 것일지도 모른다. 군사력으로는 이미 진나라에게는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손호가 의지한 것은 참위사상이었다.

임평호에서 황제라고 새긴 돌이 나왔다는 둥, 파양의 역양산에서 나온 돌에 '축복받는다'라는 문구가 발견되었다는 둥, 오흥의 양선산의 석실에서 서상이 있었다는 둥의 산악과 돌을 숭배하는 민간 신앙과 연결된 뜬소문이 보고될 때마다 그는 기뻐하며, 천책, 천새, 천기라며 연호를 바꾸고 석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삼국지 하후돈 - 눈 알을 먹는 모습


또한 양선산에서는 봉선이라는 황제만이 행할 수 있는 의식을 신하에게 시키기도 하였다. 이때 건립된 "천발신참비"와 선국산비에는 신참을 기록한 이상한 문장과 기이한 문구가 적혀있는데, 마치 손호의 이상 심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전에도 위나라의 수춘에서 '오나라 천자가 온다'는 동요가 유행하는 것을 듣고, 손호는 어머니와 처자 그리고 수천 명의 궁녀를 데리고 낙양으로 간다고 말하면서 궁전을 나간 적이 있었다. 아마도 집단 히스테리 상태에 빠졌었던 것 같다.


또 언젠가 총애하는 축실이 죽었을 때는 수개월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손호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일종의 우울증에 빠져있던 그였다.


325p


손권이 죽은 후 태자 손량이 불과 10살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했다. 후견인 제갈각은 제갈근의 아들, 즉 제갈량의 조카였다. 그는 숙부와 마찬가지로 어린 황제를 보좌하여 명재상이 되어 보려고 마음먹었음에 틀림이 없다. 더구나 손권이 제갈량에게 감화를 받아 자기 아들에게 량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숙부와 같은 이름의 황제를 보고 제갈각도 흥분되었을 것이다.


ps. 책의 후반에 나오는 야마타이 국가와의 관계 등은 보기 껄끄럽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에 대한 내용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