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조선 시대 목활자 인쇄와 목판 인쇄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8. 2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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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목활자인쇄


나무로 만든 활자를 판에 짜서 찍어내는 목활자 인쇄는 조선 초기부터 중앙관서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었다.


조선 초기에 목활자로 인출한 것으로는 1397년 조선 건국과 더불어 공신들에게 내려준 개국원종공신녹권開國原從功臣錄券이 그 시기가 가장 빠르다. 특히 목활자는 전란戰亂 등의 국가 위기나 긴급한 필요 때문에 활자 인쇄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 금속호라자의 대용代用 혹은 보충을 위해 다양한 일시 출판기관에서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훈련도감訓鍊都監, 공신도감功臣都監, 내의원內醫院, 실록청實錄廳 등에서 목활자를 만들어 임진왜란으로 없어진 책들을 복구하는 데 사용하였으며, 지방의 서원과 사찰 등 민간에서도 목활자를 만들어 시, 문집, 족보 등을 인쇄하였다.


조선 울료자직해


울료자직해尉統子直解

목활자본/갑인자체훈련도감자甲寅字體訓鍊都監字

주대周代의 울료자尉統子를 직해直解한 병서이다. 훈련도감자는 임진왜란 후 신설된 훈련도감에서 유휴병력을 이용하여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주고 도감의 운영경비 마련을 목적으로 제작한 목활자이다.



목활자본 울료자직해 활자판


울료자직해 활자판

목활자본/갑인자체훈련도감자

훈련도감에서 갑인자의 서체를 자본으로 하여 제작한 목활자를 사용하여 찍어낸 울료자직해의 활자판이다.



목활자본 상촌고


상촌고象村稿

목활자본/추향당자秋香堂字, 17세기

조선 중기 문신 상촌 신흠申欽(1566~1628)의 시문집이다. 인출에 사용된 추향당자는 갑진자를 닮게 만든 나무활자이다. 이활자로 찍은 자경편自警編의 끝에 적힌 인기印記에 1609년 봄에 기성箕城의 추향당에서 활자를 만들어 찍었음을 밝히고 있다.



덕촌선생집 목활자본 영조 시대


덕촌선생집德村先生集

목활자본/지겟다리획활자,19세기 초

영조 때 동부승지를 지낸 덕촌 양득중梁得中(1665~1742)의 시문집이다. 인출에 사용한 목활자 '지겟다리획활자'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사용되었으며, 서체의 특징은 戈, 伐, 氏, 民, 我, 武등과 같은 글자의 지겟다리 획에서 독특한 모양을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목판 인쇄


조선의 개국과 함께 금속활자 인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인쇄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활자는 초기비용이 많이 들고 간행 부수에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목판인쇄는 조선 전 시기에 걸쳐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었다.


목판인쇄는 필요한 내용을 종이에 바르게 쓴 다음 나무판에 뒤집어 붙이고 이를 양각으로 새겨, 먹을 바르고 종이를 문질러 찍어 낸다. 오랜 기간에 걸쳐 다량의 보급이 필요한 경우에 주로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며, 특히 지방관서, 문중, 사찰, 서원 등에서 주요한 인쇄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목판본 오륜행실도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목판본, 1859년

1797년 정조의 명을 받아 심상규, 이병모 등이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고 수정하여 간행한 금속활자본 오륜행실도를 1859년 김병학 등이 철종의 명을 받아 내각에서 목판으로 다시 새겨낸 인본이다.



목판본 이륜행실도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목판본, 1730년

이륜행실도는 중종때 조신曺伸이 왕명으로 유교의 기본 윤리인 오륜五倫 중에 장유長幼와 붕우朋友의 이륜을 미간에 널리 가르치기 위해 만든 책이다. 1730년 영영嶺營에서 간행된 목판본이다.



목판본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목판본

부모은중경이라 약칭하기도 하며, 아이를 낳고 기르기까지 부모님의 은혜를 10가지로 나누고 있다. 또한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켜야 할 10가지 규범이 변상도와 함께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조선 이만운. 묵헌문집 목판


묵헌문집 목판黙軒文集

목판, 1938년

조선 후기의 문신 이만운李萬運(1723~1797)의 시문집 간행을 위해 1938년에 제작한 목판이다.


출처 - 청주 고인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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