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청주 흥덕사지 출토 유물 - 고인쇄박물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6. 8.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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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에는 이 책이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흥덕사가 1984년 '운천지구택지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진행한 '운천동사지발굴조사' 중에 새로운 절터가 발견되었다.


이에 1985년에 이 절터에 대해 발굴조사를 하였는데, "서원부흥덕사西原府興德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금구靑銅禁口 조각과 "황통십년흥덕사皇統十年興德寺"라고 새겨진 청동불발靑銅佛鉢이 출토됨으로써, 이곳이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로 확인되었다. 이밖에도 '계향지사桂香之寺', '대중삼년大中三年(849)'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 청동소종, 금강저, 철불나발편 등이 출토되었다.


청주 흥덕사지 치미


흥덕사지 치미

전통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에 올려 건물이 더욱 웅장하게 보이도록 하는 기와로 '망새'라고도 한다. 건물의 권위나 위엄을 상징하며, 건물에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안전을 염원하는 뜻에서 만들었다.


흥덕사지의 치미는 금당의 서북쪽에서 출토되었는데, 높이가 약 1.36m로 이를 통해 당시 흥덕사의 규모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 고인쇄박물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심체요절 능화판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고려 때의 승려인 백운화상 경한景閑(1298~1374)이 중국의 석옥선사가 전해 준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보완하여 엮은 책으로,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마음의 본체를 바로 가리켜 보인 설법의 중요한 절목만을 골라 수록하였다.


1377(고려 우왕3)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석찬과 달잠이 묘덕의 시주를 받아 금속활자로 간행하였으며, 현재 상, 하권 중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실물로 전하는 금속활자 인쇄물 가운데 간행 시기가 가장 이른 것이며, 인류의 인쇄역사와 기술변화를 열려주는 중요한 증거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 완전한 서명書名이나, 이하 설명에서는 간략 명칭인 직지를 사용한다.


황통10년 흥덕사


'황통10년...흥덕사...'의 음각명문이 새겨진 불발

부처님께 올리는 밥이나 쌀을 담는 그릇이다. '황통십년경오皇統十年庚午'는 1150년(고려 의종4)에 해당하며, 함께 출토된 유물들의 연대 추정과 흥덕사의 연혁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흥덕사지 금강저


금강저

스님들이 불도를 닦을 때 쓰는 도구의 하나로, 번뇌를 깨뜨리는 보리심을 상징한다.


흥덕사지 청동소종


청동소종

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몸체 위에 용의 장식을 달아서 메달 수 있도록 만들었다.


흥덕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금구


'흥덕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금구

금구편의 측면에 '갑인오월일서원부흥덕사금구일좌개조입삼십이근인甲寅五月日 西原府興德寺禁口一坐改造 入參拾貳斤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직지를 찍어낸 흥덕사의 위치를 알려준 유물이다.


대중3년 기와


'대중3년'이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

'대중3년'은 849년(신라 문성왕11)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흥덕사지의 창건시기를 9세기까지 올려볼 수 있다.


흥덕사지 철불나발


철불나발

금당지에서 발견된 불상의 머리카락 부분이다. 이를 통해 금당에 봉안되었던 주존불이 철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청주 고인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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