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한글날과 훈민정음 해례본 간단히 이해하기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6. 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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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절, 국문학자 김태준은 제자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1940년 국문학자 김태준


"선생님, 저희 본가에 훈민정음과 비슷한 책이 있던데요."


국문학자 김태준과 한글


훈민정음 해례 발견


김태준은 그 책이 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진본임을 확인한다.


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우리 말과 글이 탄압받던 일제강점기. 훈민정음해례는 민족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에게 전해진다.


1940년 조선어 사용 탄압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에게


간송 전형필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지 497년. 베일에 싸여있던 한글 창제의 원리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 ,한글 창제의 미스터리뿌리 깊은 나무 ,한글 창제의 미스터리



뿌리 깊은 나무, 한글 창제의 미스터리


진짜 영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제자가 우리 집에 해례본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영화 같은 이야기죠. 우리 집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어요라는 이런 이야기 들으면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 아닙니까.


1940년이면, 일제강점기고 조선의 교육과 말이 말살되었던 그 시기인데, 문화 전체가 말살되었던 그 시기에 훈민정음해례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우리 민족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큰 힘을 실어주는 큰 격려와도 같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발견된 훈민정음


훈민정음 발견과 민족 의의


훈민정음 1만1천원전형필[1906~1962] 민족 문화재 수집가


그야말로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발견된 거죠. 그 당시 간송 전형필 선생이 훈민정음 해례를 살 때, 1만 1천 원을 주고 사셨다고 해요. 근데 그 당시 만원이면 가옥 몇 채, 요즘 말로 아파트 몇 채를 살 수 있었던 돈인데, 그 돈을 주고서도 사셨던 겁니다. 


전형필이 산 훈민정음


한글날, 훈민정음해례가 발견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한글날(10.9)과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날과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에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이 1446년 9월 상한이라고 나옵니다. 9월 상한이란 9월 10일이란 뜻입니다. 이걸 양력으로 환산하니 10월 9일이 된 것이죠. 이 기록을 바탕으로 지금의 한글날이 나온 겁니다.


1446년 9월 훈민정음 반포


한글날 10월 9일


그리고 중요한 건, 한글 창제는 1443년이지만, 반포는 1446년 9월 10일. 그러니,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한글날은 반포일이라는 것입니다.


한글창제와 반포 연도한글창제 1443년. 한글반포 1446년.


한글날은 반포일 기준



훈민정음 해설시인 해례본?


훈민정음해례는 훈민정음의 해설서라고 봐야 되겠죠?


훈민정음 해설서


그렇죠. 훈민정음은 1책 2권입니다. 지금은 책과 권을 구별 안 하는데, 책은 형식 단위고, 책 안에 형식이 두 개 있었던 겁니다.


훈민정음 1책 2권


첫 권은 세종대왕이 직접 쓴 사용법이고, 두 번째 권이 해례본입니다. 말하자면 교과서가 있고, 교사용 지도서가 해례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구성


훈민정음 해례본 구성


1. 어제서문


2. 예의例義 :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


3. 해례解例 :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예


훈민정음 해례, 지도서훈민정음 해례는 훈민정음 교사용 지도서(해설서)


해례본으로 10월 9일 날 반포된 것도 알았고,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아주 소중한 책입니다.


한글 창제 원리


특히, 세종같이 최고 권력자인 왕이 내가 왜 이런 글을 만들었는가 밝힌 경우가 전혀 없어요. 알파벳을 이렇게 만들었다, 한자를 이렇게 만들었다, 이런 게 전혀 없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주역과 동기


한글은 창제 동기까지 명확히 밝혀져 있고, 지금까지 한 국가의 공용 문자로 사용된다는 건 우리의 긍지이자 자부심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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