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술을 사랑하던 고려 사람들 - 고려도경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5. 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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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雜俗一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예禮(예기禮記)에 말미암은 것이 적고, 남자의 건책巾責은 조금 당나라의 제도唐制를 본받고 있으나 부인의 딴 머리를 아래로 내려뜨리는 것은 아직 완연히 좌수 변발(오랑캐들의 하찮은 풍습)의 모습이 있고, 귀인이나 선비 집안에서는 혼가婚嫁에 대략 빙폐聘幣(아내를 데려가는데 필요한 돈이나 예물)를 쓰나 백성에 이르러서는 다만 술이나 쌀을 서로 보낼 뿐이다.


중국 생선 요리중국 생선 요리

(출처 : 长命百岁的饮食经)


관혼상제冠婚喪祭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말한다. 이 제도가 완전히 시행된 것은 조선 태종 때,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여 신칙申飭(단단히 타이르다)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정료 庭燎

고려의 풍속이 밤에 술마시는 것을 좋아하며, 더우기 사신 접대하기를 더욱 삼가한다. 항상 잔치가 파하면 한밤중을 넘어 산이나 섬, 주, 군의 교, 정, 관, 사에는 모두 뜰 가운데 홰를 묶어 불을 밝히고, 산원散員(고려와 조선 시대 초기 군관의 계급. 정8품에 해당)들이 이 홰를 잡고 사신이 숙관宿館(오늘날의 여관)에 돌아갈 때면 앞에 나열하여 서로 나란히 간다.


부어라 마셔라부어라 마셔라

(출처 : 平时我能喝一两斤那天一口没喝,怎么闻着都吐了?(图))


향음 鄕飮

고려의 풍속이 술과 단술을 중히 여긴다. 공회 때에는 다만 왕부王府(고위 공무원)와 국관國官(그냥 공무원)만이 상탁牀卓과 반찬盤饌이 있을 뿐(1인용 탁상에 맛있는 음식과 술을 놓았다는 의미), 그 나머지 관리와 사민은 다만 좌탑坐榻에 앉을 뿐이다. (공무원 빼고는 빈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의미. 췌~ 더러운 세상)


좌탑坐榻

이는 평상으로 고구려의 벽화에도 이미 보이는 바다. 이 평상은 침상寢床도 되니, 온돌이 적던 때는 판방板房에 이 평상을 놓고 방장房帳이나 병풍을 치고 살았다.


공무원들만 즐긴 맛있는 술자리공무원들만 즐긴 맛있는 술자리

동한東漢에서는 예장태수豫章太守 진번陳蕃이 서치徐稚를 위하여 한 탑榻을 마련하였을 뿐인 즉 전고前古에도 이 예법禮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고려인은 탑 위에 또 소조小俎(작은 소반)를 놓고, 그릇에는 구리[銅]를 쓰고 숙석魚肅月昔과 어채魚菜(으깬 생선을 채소에 데친 음식)를 섞어서 내오되 풍성하지 않고, 또 주행酒行(순배巡杯)에도 절도가 없으며 많이 내오는 것을 힘쓸 뿐이다.


탑마다 다만 두 손[客]이 앉을 뿐이니, 만약 빈객이 많이 모이면 그 수에 따라 탑을 늘려 각기 서로 마주 앉는다. 나라 안에 밀이 적어 다 장사치들이 경동도京東道로부터 사오므로 면麵값이 대단히 비싸서 큰 잔치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식품 가운데도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 있으니, 이 또한 웃을 만한 일이다.


경동도京東道 - 송대宋代의 변경汴京으로부터 산동성山東省, 하남성河南省까지의 전역을 가리킨 것이다.


출처 - 고려도경 2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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