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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가 오강을 건너지 않고 멸망한 원인, 조선 이가환의 분석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3. 1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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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오강에 대한 설명


오강烏江은 지금 중국의 안휘성安徽省 화현和縣 동북 쪽에 있는 강이다. 초한楚漢 시 때 항우羽가 일찍이 서초패왕西楚覇王이 되어 천하를 호령했으나, 뒤에 해하垓下에서 한군漢軍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곤경에 처하자, 밤중에 일어나 장중帳中에서 우미인虞美人과 함께 술을 마시며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는데, 때가 이롭지 못하여 오추마가 가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가지 않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우여 우여 너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 何]"


교지로 쫓겨가는 서초패왕 항우교지로 쫓겨가는 서초패왕 항우


라고 노래하였다. 그리고는 오강烏江을 건너 그의 근거지인 강동江東으로 건너가 재기하려 하는데,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가, "강동 江東이 비록 작다고는 하나 땅이 사방 천 리나 되니 왕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바라건대, 왕은 급히 건너가소서." 하니, 항우가 웃으면서,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데 내가 어찌 건너갈 수 있겠는가." 하고, 또 "내가 강동江東의 자제子弟 8천 명을 거느리고 중원中原으로 왔다가, 지금 한 사람도 살아가지 못하는데, 나 혼자서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랴." 하였으며, 또


“내가 듣건대, 한漢나라가 내 목에다 천금千金과 만호萬戶의 읍을 현상으로 걸었다 하니, 내가 너희들에게 덕을 베풀겠다." 하고, 스스로 목을 찔려 죽었다. "史記 卷7 羽本紀"


항적이 오강烏江을 건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항적이 이미 스스로 그 까닭을 다 말하여 놓았습니다. 이에 그 후세에 그 일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은 또 그에 따라서 상상을 하고 헤아려 봅니다. 그러면서 혹 항적이 작은 일에 대해서 참지 못한 것을 허물하기도 하고, 혹 다른 사람에게 속은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우미인을 잃은 서초패왕 항우우미인을 잃은 서초패왕 항우


지금에 와서 본다면, 항적이 스스로 말한 것은 이른바 영웅이 사람들을 속인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후세에 의논하는 자들은 바보에게 꿈 이야기를 해 준 것(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이 진실인 것처럼 믿는다는 말이다)과 같아서, 항적에게 속음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무릇 항적이 오강을 건넜어야 했다고 하는 자들은, 어찌 강동 지역이 항적의 근본이 되는 지역이라고 여겨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근본이 되는 지역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부모가 살던 나라가 아니면, 역시 반드시 그 자신이 생장한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반드시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서 마을 사람들과 일족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단결시킬 수 있는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소에는 기쁘고 화락한 마음으로 서로 간에 살아가기에 충분하고, 위급할 때에는 달려와서 막아주어 서로 간에 상대방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곳이어야만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왕업王業을 일으킬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위급할 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치와 형세에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지금 항적은 집안 대대로 숙천宿遷(중국 강소성 북서부에 있는 지명으로, 남경南京에서 약 7백 리 정도 북쪽에 있으며, 옛날에 항우羽, 즉 항적籍의 집안은 대대로 이 숙천현의 하상下相이란 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초나라의 장수가 되었는데, 특히 항적의 할아버지인 항연燕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 초楚의 장군으로 진秦의 공세에 맞서 초楚의 방위와 부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회수淮水를 건너고 강수江水를 건너 천 리 먼 곳까지 와서 원수를 피해 살았습니다. 그런즉 강동 사람들이 보기에 항적은 단지 일개 떠돌이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항적은 능히 지역을 가려서 도읍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뜻을 얻었을 때를 당해서도 강동江東에 도읍하지 않고 팽성彭城에 도읍하였습니다. 그런즉 항적이 자신의 원래 고향인 숙천宿遷을 그리워하고 있는 마음을 여기에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항적이 이미 자신의 고향으로 강동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강동 사람들만이 유독 항적을 고향 사람으로 볼 리가 있겠습니까.


대개 항적은 여기저기 떠돌다가 와서 사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재주를 믿고 기개氣槪를 자부自負하여 주위 사람들을 깔보았으므로, 강동 지역의 자제들로부터 기피 대상이 된 지가 이미 오래됐습니다. 그런즉 강동의 자제들이 항적을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떠나가지 않은 것은, 한갓 항적의 위세를 겁내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영포 - 애니메이션 고응낭고鹰视狼顾영포 - 애니메이션 고응낭고鹰视狼顾


그리고 초楚나라의 후손(항우에 의해서 임시방편으로 세워진 황제인 의제義帝, 즉 초 회왕楚懷王 손심孫心을 말한다. 의제는 뒤에 장사침현長沙郴縣으로 옮겨지고 나서 항우의 밀령密令을 받은 영포에 의해 강江 속에서 격살擊殺되었는데, 한 고조 유방劉邦이 그를 위해 발상發喪하면서 민심을 끌어모았다. 史記 卷7)을 세워서 그런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호소縞素를 입고 난 뒤(한왕漢王 유방劉邦이 파촉巴蜀에서 출사出師하여 항우를 칠 때, 항우가 의제를 죽인 것을 기회로 삼아, 의제를 위하여 발상發喪하면서 군사들에게 상복喪服인 호소縞素를 입게 하고 나아가 싸워 이겼다. 史記 高祖紀)에는 항적이 강동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미 하나도 없었습니다.


초 회왕 손심 일러스트초 회왕 손심 일러스트


그리고 강동 사람들의 마음을 위협할 만한 것도 또 이미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위태로운 즈음에 강을 건너는 것이 옳은지 건너는 것이 옳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항적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항적은 평소에 고집스럽고 뻣뻣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던바, 죽음에 임하여 슬픈 소리를 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이에 억지로 '불쌍하게 보아서 나를 왕으로 대우해 준다고 하더라도.[憐而王我]'라고 하는 말(항우가 유방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치다가 오강을 건너기 직전에 오강의 정장亭長이 항우에게 이르기를, "강동이 비록 작지만, 지방이 천 리고 백성이 수십만 명이나 되니, 역시 왕 노릇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속히 건너십시오.[江東雖 地方千里 衆數十萬人 亦足王也 願大王急渡]"라고 하자, 항우가 웃으면서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데, 내가 어찌 건너겠는가. 그리고 내가 강동의 자제 팔천 명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왔다가 지금 한 사람도 돌아가지 못하다. 비록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아 나를 왕으로 대우해 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 저들이 비록 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마음에 부끄러운 생각이 없겠는가? [天之亡我 我何渡 爲 且籍江東子弟八千人 渡江而西 今無一人還 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 見之 縱彼不 籍獨不愧於心乎]"라고 한 것을 말한다. 史記 羽本紀)을 한 것입니다.


한고조를 꾸짖는 항우한고조를 꾸짖는 항우


이는 대개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해서가 아니다.[天亡非戰]'라는 말(항적이 해하垓下에서 한漢나라 군사의 포위망을 가까스로 뚫고 도망하다가 음릉陰陵에 이르러 큰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한나라 군사가 바싹 추격해오자, 항적은 스스로 빠져나갈 수 없음을 알고는, 고작 20여인 밖에 남지 않은 부하 기병騎兵에게 이르기를 "내가 군를) 일으킨 지 지금 8년 동안에 몸소 70여 차례를 싸우면서 싸울 때마다 승리하고,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어, 마침내 천하의 패왕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끝내 이런 곤경에 빠졌으니, 이것은 바로 하늘이 나를 망치려는 때문이요, 내가 싸움을 잘못한 탓이 아니다."라고 하다)과 더불어 똑같은 뜻입니다.


그런데도 의논하는 자들은 이것을 살펴보지 못하고서 오히려 분분하게 떠드는 바, 옛일을 상고하면서 제대로 잘 살펴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혹 항적이 강동에는 비록 근본으로 삼을 만한 바탕이 없다고 하더라도, 만약 비난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 동쪽으로 가서 강을 경계로 하여 스스로 지키고 있었다면, 역시 한번 해 볼만 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사리에 통달한 의논이 아닙니다. 무릇 이른바 강을 경계로 하여 스스로 지킨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위 魏나라가 오吳나라에 대해서와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강 바깥쪽의 모든 지역을 자신이 다 차지하고 있어, 안으로는 전 지역을 주무르고, 밖으로는 천연적인 험고함을 믿을 수가 있는 경우를 두고 이르는 것입니다.


항적이 오강 가에 임하였을 당시의 양자강 남쪽 지역의 형세를 보면, 백월百越 지역에는 위타(한나라 고조高祖가 한나라를 세울 무렵에 지금의 광동廣東 지역에 해당하는 남월南越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왕인데, 고조가 통일한 뒤에 육가陸賈를 사신으로 보내어 설득하자, 위타는 나라를 들어 한나라의 속국이 되었다)가 차지하고서 설치고 있었고, 구강九江 지역에는 영포(진한秦漢 교체기의 무장武으로 평민 출신이다.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이 그의 관상을 보고 "형벌을 받은 뒤에 왕이 될 것이다." 하는데, 장년이 되어 법을 어겨 묵형墨刑을 받게 되자 "어떤 사람이 나의 관상을 보고 형벌을 받은 뒤에 왕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로 되려나 보다." 하면서 기뻐했다고 한다. 처음에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나자 동료들을 모아 항량군에 합세하여 용맹을 떨쳤으며, 항우의 명을 받아 초 의제를 살해하였다. 초한 전쟁 때 항우를 도와 구강왕九江王에 봉해졌으나, 유방의 반간계反間計에 넘어가 한나라에 투항하고, 회남왕淮南王에 봉해졌다. 그 뒤에 다시 한나라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주살 당했다. 史記 卷91 黥列傳)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고, 장사長沙 지역에는 오예吳芮(역시 진한 교체기의 장수이다. 처음에는 진나라에서 벼슬하여 번양령番陽令으로 있었는데, 진승과 오광 등의 반란으로 인하여 나라가 혼란해지자 영포와 함께 연합하여 초楚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 뒤 한 고조 때문에 장사왕長沙王에 봉해지기도 하다)가 침입한 상태였으며, 강한江漢의 상류와 파촉巴蜀 지역은 또 한漢나라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항우의 동상항우의 동상


지금에 와서 당시의 형세를 헤아려보면, 강서江西, 호광湖廣, 양광兩廣, 사천四川 등의 지역이 모두 적국의 차지였습니다. 그러니 항적이 믿을 곳이라고는 오직 얼마 안 되는 오吳와 월越 사이의 자그마한 땅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강烏江의 정장亭長이 말을 하면서도 역시 '사방이 천 리 되는 지역[地方千里]’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좁은 지역을 차지하고서 스스로 보전하려고 할 경우, 어느 누가 함께 지키려고 하겠습니까.


아, 항적은 팽성彭城에서 이미 함락되고 난 뒤에 다시 죽을힘을 다해 싸워 팽성을 다시 취하였습니다. 항적은 또 형양滎陽과 성고成皐에서 힘이 부족하였는데도 한 치도 뒤로 물러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즉 항적이 비록 사납고 경박하여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하기는 하였지만, 역시 일찍이 해볼 만한 형세가 있는 것을 보고서는 쉽사리 포기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항적은 유독 오강에서만은 이처럼 하였습니다. 그런즉슨 왜 그랬는지 그 까닭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옛일에 해 평론하는 자들은 오히려 항적이 오강가에서 한 말에 현혹되어, 강동 지역이 실로 항적이 근본으로 삼을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역시 잘못된 견해입니다.


초한전의 유방과 항우초한전의 유방과 항우


지금 여기에 호랑이가 한 마리 있어 꽹과리를 치고 창을 잡고서 산기슭으로 내모는데, 산기슭 저쪽에는 바로 그 호랑이가 숨어서 사는 굴이 있으면, 곁에서 흘겨보기만 하면서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죽을 곳으로 뛰어든다면, 이것이 어찌 사리에 맞는 것이겠습니까. 곁에서 흘겨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본다면, 산기슭의 바깥이 그의 소굴이 아님을 잘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달徐達(명나라의 개국공신으로, 중산왕(中山王)에 봉해진 인물이다. 일찍이 명나라 태조가 "큰 공을 세우고서도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칭찬하였을 정도로 태조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이 명明나라 태조太祖에게 고하기를, "우리가 강에 임하여 군사들에게 호령을 내리면 능히 강회江淮 지역을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서달의 말도 오히려 이와 같았습니다. 가령 항적에게 이와 같은 형세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가 어찌 선뜻 오강을 건너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 깊이 생각을 하면서 옛날의 일을 알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영웅에게 속지 않는다면, 옛날의 사실을 제대로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삼가 이상과 같이 논합니다.


출처 - 금대전책, 오강烏江을 건너지 않은 데 대한 논論 삼상三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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