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동방의 자취를 오늘날에 증명할 수 있겠는가? (정조의 물음)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7. 28.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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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전책 지리책 - 정조의 물음


우리 동방으로 말한다면, 한쪽은 대륙과 연접되어 있고, 삼면은 바다로 막혀 있다. 조선朝鮮이라는 호칭은 멀리 단군檀君 시대 때부터 있었고, 숙신肅愼의 명命이라는 말이 주周나라의 역사에 실려 있다. 한漢 나라 무제武帝는 사군四郡으로 나누어 설치하고, 당唐나라 고종 高宗은 구부九府를 예전 그대로 설치하였다.


구부九府 -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지역에 설치한 아홉 도독부都督府를 말한다. 당나라가 668년(보장왕 27)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고구려의 옛 땅을 신성新城, 요성遼城, 가물哥勿, 위락衛樂, 사리利, 거소居素, 월희越喜, 거조去朝, 건안建安의 아홉 도독부로 나누고,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 都護府를 두어 이들을 관장하여 통치하게 하다.


그 지역과 그 자취에 대해 모두 옛날의 일을 인용하여 오늘날에 증명할 수 있겠는가?


삼한三韓의 분속分屬 문제는 마땅히 어느 설을 따라야 하고, 삼국三國의 국경은 분명히 어느 지역이었는가? 그리고 점제黏蟬는 지금 어느 도道에 예속되어 있었고, 개마蓋馬는 과연 무슨 산인가?


점제黏蟬 - 열수列水의 하구河口에 위치한 지역으로, 낙랑군樂浪郡에 속하던 지역이다. 그 위치에 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평남 용강군龍岡郡 어을동於乙洞에서 점제현비黏蟬縣碑가 발견되었으므로 이곳을 점제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점제현비점제현비


마한馬韓, 예맥濊貊, 고구려高句麗가 각각 2개가 있고, 옥저沃沮, 안시安, 패수浿水가 각각 3개가 있으며, 부여夫餘가 4개, 대방帶方이 5개, 가야伽倻가 6개씩이나 있다. 국호와 지명이 어찌하여 이처럼 혼잡하여 구별이 없는가? 이것들이 있던 곳을 다 들어서 말할 수 있겠는가?


신라는 오악五嶽구주九州를 봉하고, 고려는 사경四京십도十道를 두었다. 진흥왕眞王이 북방 국경 지대를 순행한 것은 국토를 개척한 공이 현저하고, 경덕왕敬德王이 고을 이름을 고친 것은 만이蠻夷의 풍속을 변경하려는 의도에서다. 이에 대해서도 역시 그곳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그 일에 대해 논할 수 있겠는가?


오악五嶽 - 신라 때의 오악으로, 동쪽의 토함산, 남쪽의 지리산, 서쪽의 계룡산, 북쪽의 태백산, 중앙의 팔공산을 말한다.

구주九州 - 통일신라 시에 9개의 구역으로 편제되었던 지방행정구획으로, 사벌주沙伐州(상주尙州), 삽량주揷良州(양산梁山), 청주菁州(진주晉州), 한산주漢山州(광주廣州), 수약주首若州(춘천春川), 웅천주熊川州(공주公州), 하서주河西州(강릉江陵), 완산주完山州(전주全州), 무진주武珍州(광주光州)다.


사경四京 - 고려 시에 나라의 중심지로서 중요시하던 네 지역으로, 개경開京(개성開城), 서경西京(평양平壤), 동경東京(경주慶州), 남경南京(서울)을 말한다.

십도十道 - 고려 성종 때 설치한 지방제도이다.

양주楊州, 광주廣州, 황주黃州, 해주海州를 담당하는 관내도關內道

청주淸州, 충주忠州를 담당하는 중원도中原道

공주公州, 운주運州를 담당하는 하남도河南道

전주全州, 영주瀛洲, 순주淳州, 마주馬州를 담당하는 강남도江南道

상주尙州를 담당하는 영남도嶺南道

경주慶州, 김주金州를 담당하는 영동도嶺東道

진주晉州를 담당하는 산남도山南道

나주羅州, 광주光州, 정주靜州, 승주昇州, 견주見州, 담주潭州, 낭주朗州를 담당하는 해양도海陽道

춘주春州, 교주交州, 화주和州, 명주溟州, 등주登州를 담당하는 삭방도朔方道

서경西京에서 관할하는 바를 담당하는 패서도浿西道 등이다.


신라의 9주 5소경신라의 9주 5소경


발해渤海의 옛 강토는 반이나 거란契丹으로 들어갔다. 그런즉 고려 태조太祖가 통일은 하였으나 어찌 능히 여한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외 딴 섬인 탐라眈羅는 당초에 성주星主가 있었다. 그런즉 아홉 개의 한韓 중에 네 번째로 친다는 것은 너무나 참담한 것이 아니겠는가?


성주星主 - 본래 탐라(耽羅)의 우두머리에게 주던 칭호인데, 후에는 제주 목사(濟州牧使)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하다.


아홉 개의 한韓 중에 네 번째로 친다는 것 -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면, 안홍安弘의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 9한(韓)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순서는 첫째가 일본(日本), 둘째가 중화(中華), 셋째가 오월(吳越), 넷째가 탁라(乇羅), 다섯째가 응유(鷹游), 여섯째가 말갈(靺 鞨), 일곱째가 단국(丹國), 여덟째가 여진(女眞), 아홉째가 예맥(濊貊)으로 되어 있다.


우리 조선朝鮮은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받아 동방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팔도八道로 나눔에 주州와 군郡이 별처럼 늘어서 있고, 사방으로 방어하매 진鎭과 보堡가 바둑알처럼 깔렸다. 소유한 국토는 수천 리를 넘고, 백성들을 잘 기른 지는 수백 년이 되었다.


비옥한 들녘과 기름진 토양은 뽕나무와 삼이 절로 넉넉하고, 깊은 숲과 큰 강에는 재물과 보화가 연일 생산된다. 남쪽에서는 균로箘簵와 칠사漆絲가 풍부히 나고, 북쪽에서는 산삼과 녹용과 피혁이 산출된다. 산에는 아름드리의 재목이 있고, 물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있다. 백성과 물 산의 풍요로움 및 풍속과 기질의 문명함은 중국 외부의 국가 중에서 거의 첫 번째가 된다. 그런데 어째서 근래에 들어와서는 사람들이 지리地理가 정치의 근본이 되는 줄을 알지 못한단 말인가?


균로箘簵 - 화살 만드는데 쓰는 나무의 일종이다.

칠사漆絲 - 칠은 황칠黃漆로 우리나라의 완도莞島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이며, 사는 모시苧로, 역시 우리나라의 특산물이다.


현재 관문關門의 방비는 허술하다는 탄식이 많고, 성곽城郭과 성지城池는 수선하는 효과가 없다. 그리고 경기京畿의 병마절도사兵馬節 度使 문제에 대해서는 조정 의론이 갈팡질팡하고 있고, 강화江華의 통어사統禦使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의논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울릉도鬱陵島와 손죽도損竹島는 무인도의 상태로 오래도록 버려져 있고, 여연閭延과 무창茂昌은 아득히 옛 군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손죽도 위치손죽도 위치


손죽도損竹島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리에 있는 섬이다. 4백여 년 전에 제주도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으나,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하여 육지로 피신하고, 이후 사람들이 다시 입도하여 거주하다. 특히 1587년(선조20) 2월에 손죽도 앞바다에 왜구가 침입하는데, 이때 녹도만호로 있던 이대원李大源이 싸우다가 전사 하였으며, 이후 한동안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고 무인도인 상태로 버려져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조정에서 이익을 독점하는 정사가 없는데도 어염魚鹽은 더욱 귀하여졌고, 팔도에 광물을 채취하는 관리가 없는데도 금과 은은 점점 고갈되어 간다. 인재가 줄어들고 습속이 나쁘게 되었음에 대해서는, 아마도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이 모든 몇 가지 사안에 해서 편의에 따라 바로잡고 구제하는 방책을 자대부子大夫들이 아니면 내가 누구에게 물어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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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요즘처럼 당대에도 역사 속 지리 고증에 애를 먹었나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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