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성충이 이끌어낸 백제와 고구려 동맹-조선상고사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5. 2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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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ㆍ백제 동맹의 성립


의자왕이 대야주 40여 성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않아서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고구려의 정권을 잡았다. 의자왕의 성충(成忠)에게 물었다.


"연개소문이 남의 신하로서 임금을 죽였는데 고구려 전국이 두려워서 그 죄를 묻는 자가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고구려가 서국(西國 : 지나를 가리킴)과 전쟁을 한 지 여러 백 년 만에 처음에는 여러 번 서국에게 패하다가 근세에 이르러 날로 강대해져서 요동을 차지하여 그 세력이 요서에까지 미치고 물에서만 마음대로 돌아다닐 뿐 아니라 바다에까지 드나들어 영양왕 때에는 세 번이나 백만의 수나라 군사를 격파하여 나라의 위엄이 크게 떨쳐서 고구려의 군사와 백성들이 서국과 맞서려는 기염(氣焰)이 하늘을 찌르려 하는 판인데 건무(建武 : 영류왕)가 도리어 이를 압박하고 서국과 화친하여 군사와 백성들의 노여움을 산 지가 오래였습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여러 대의 장상(將相)으로 이름난 집안으로서 왕의 정책에 반대하고 정당론(征唐論)을 주장하여 국민의 마음에 호응하고, 그리하여 건무를 죽였으므로 고구려 전국이 연개소문의 죄를 묻지 아니할 뿐 아니라 바야흐로 그 공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고 성충이 대답하였다.


백제의 충신 성충백제의 충신 성충

(출처 : 황산벌의 기백을 게임으로 느껴보라(계백전))


왕이 다시 "고구려와 당이 싸우면 어느 나라가 이기겠소"하고 물으니, 성충은


"당은 비록 땅이 고구려보다 넓고 백성도 고구려보다 많지마는 연개소문의 전략은 이세민(二世民 : 당의 太宗)이 따를 바가 아니니 승리는 반드시 고구려에 돌아갈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신이 왕년에 일찍이 고구려에 가서 연개소문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연개소문이 아무런 직위도 없고 다만 명문의 한 귀소년(貴少年)이었지마는 모습이 우람하고 의기가 호탕하므로 신이 그를 기이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함께 이야기하다가 말이 병법에 미쳤습니다. 그래서 신은 연개소문의 지혜와 계략이 비상함을 알았습니다. 이번의 일로 말하더라도 연개소문이 아버지의 직위를 이어받은 지 오래지 않아 아무런 기색도 없다가 하루아침에 대신 이하 수백 명을 죽이고, 패수(浿水)의 전쟁에 수(隋)의 군사를 격파하여 위명을 떨친 건무왕을 쳐 이기고 고구려의 대권을 잡았으니 이는 이세민이 따를 바가 아닙니다."


왕이 또 "그러면 고구려가 능히 당을 멸망시킬 수 있단 말이오?"하고 물으니 성충은


"그것은 단언할 수 없습니다. 만일 연개소문이 10년 전에 고구려의 대권을 잡았더라면 오늘날에 당을 멸망시켰을지 모르지마는, 연개소문은 겨우 오늘에 와서야 성공하였는데 이세민은 이미 20년 전에 서국을 통일하면서 나라 다스리는 규모가 정밀하여, 백성을 사랑하여 민심을 열복시킨 지 이미 오래이므로 연개소문이 설혹 싸움에 이긴다 하더라도 민심이 갑자기 당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당을 멸망시키기 어려운 한 가지 이유입니다.


연개소문이 비록 고구려를 통일하였지마는 그것은 겉모양이고 그 속에는 왕실과 호족들의 남은 무리가 날로 연개소문의 뜻을 엿보고 있어 만일 연개소문이 당을 멸망시키기 전에 죽고 그 후계자가 옳은 감[人材]이 아니면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당을 멸망시키기 어려운 또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러니 두 나라의 흥망을 미리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십자외교의 형세십자외교의 형세


왕이 물었다.


"우리나라가 이제 대야주는 차지하였으나 아주 그 근본을 뒤집어엎지 못하였으므로 신라는 보복할 마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오. 고구려가 당을 멸망시키거나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거나 반드시 남침(南侵)해올 것이니 그때 우리나라는 북으로 고구려나 당의 침략을 받고, 동으로는 신라의 반공을 받을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성충이 대답하였다.


"지금의 형세로 보건대 고구려가 당을 치지 않으면 당이 고구려를 쳐서 서로 대립할 것인데 이것은 연개소문이 뻔히 알고 있을 것이고 고구려가 당과 싸우자면 반드시 남쪽 백제와 신라와는 화친하여야만 뒤돌아볼 염려가 없을 것도 연개소문이 환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와 신라는 피차 원한이 깊어 고구려가 이 중 한 나라와 화친하면 다른 한 나라와는 적국이 될 것도 연개소문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개소문이 장차 두 나라 중에서 어느 한 나라와 화친하여 당과 전쟁을 할 때 남쪽 두 나라가 서로 견제해서 고구려를 엿보지 못하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제 백제를 위해 계책을 세운다면 빨리 고구려와 화친하여 백제는 신라를, 고구려는 당을 맡아 싸우는 것이 옳을 줄 압니다.


신라는 백제의 적이 못 되니 틈을 타서 이로움을 따라 나아가면 모든 편의가 고구려보다 백제에 있습니다."


왕이 그의 말이 옳다고 하고 성충을 고구려에 사신으로 보냈다.


고립될지 모르는 백제고립될지 모르는 백제

(출처 : 삼천궁녀 해동증자 의자왕의 진실 | 삼국 역사애니메이션★지니키즈 타임머신)


성충이 고구려에 가서 이해를 따져 연개소문을 달래서 동맹의 조약이 거의 맺어지게 되었는데, 연개소문이 갑자기 성충을 멀리하여 여러 날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성충이 의심이 나서 탐지해보니 신라의 사신 김춘추(金春秋 : 뒤의 태종 무열왕)가 와서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을 막고 고구려와 신라의 동맹을 맺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충은 곧 연개소문에게 글을 보내


"공이 당과 싸우지 않으면 모르지만 만일 당과 싸우고자 한다면 백제와 화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왜냐하면, 서국이 고구려를 칠 때 번번이 양식 운반의 불편으로 패하였으니 수나라가 그 분명한 본보기요.


이제 백제가 만일 당파 연합하면 당은 육로인 요동으로부터 고구려를 침노할 뿐 아니라 배로 군사를 운반하여 백제로 들어와서 백제의 쌀을 먹어가며 남에서부터 고구려를 칠 것이니, 그러면 고구려가 남과 북 양면으로 적을 받게 될 것이니 이 위험이 어떠하겠습니까?


신라는 동해안에 나라가 있어서 당의 군사 운반의 편리하기가 백제만 못할뿐더러 신라는 일찍이 백제와 화약하고 고구려를 치다가 마침내 백제를 속이고 죽령(竹嶺) 밖 고현(高峴) 안의 10군을 함부로 점령하였음은 공이 잘 아는 바이니, 신라가 오늘에 고구려와 동맹한다 하더라도 내일에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의 땅을 빼앗지 않으리라 어떻게 보증하겠습니까?"


하였다. 연개소문이 이 글을 보고는 김춘추를 가두고 죽령 밖 욱리하(郁里河) 일대의 땅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성충은 마침내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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