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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원 - 유언비어로 권력의 싹을 자르다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5. 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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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용호상박의 명장들, 장개충


사미원史彌遠 - 유언비어로 권력의 싹을 자르다


1222년 6월 초, 기국공祁國公 조현赵弦을 제국공濟國公으로 진봉하고, 기왕沂王의 적자인 조귀성赵贵诚을 소주방어사邵州防御使로 삼았다. 조현은 황자가 되었다. 조현이 비파 타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승상 사미원의 많은 돈을 들여 탄금 잘하는 미녀를 그에게 보냈다. 그리고 미녀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몰래 조현의 동정을 살피도록 하였다.


사미원 화상史彌遠사미원 화상史彌遠

(출처 : 史弥远)


미녀는 글을 알고 총명하여 조현의 총애를 받았고, 둘 사이에 나누지 못할 얘기가 없었다. 당시는 양황후楊后가 전권을 쥐고 있었으며 사미원도 오랫동안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조정 대신들과 지방 관료들은 모두 사미원이 추천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조현은 사미원의 등등한 기세에 불만이 많았다. 일찍이 여러 차례 양황후와 사미원의 조정 농단을 상주하는 글을 썼고, 아울러 "사미원은 8천 리 밖으로 유배해야 한다"고 했으며, 지도에 그려진 경애주琼崖州를 가리키며 "반드시 사미원을 이곳으로 유배해야 한다"고도 했다. 조현이 총애하는 미인이 재빨리 이를 사미원에게 전했다.


조현은 사미원을 '신은新恩'이라 불렀는데, 자신이 즉위하면 그를 광동의 신주新州(광동성 신흥현) 아니면 은주恩州(광동성 양춘현)로 유배 보내겠다는 의미였다. 사미원은 이를 듣고 7월 7일 칠석날 신기한 완구를 진헌하는 명절을 이용하여 조현의 태도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조현은 술기운을 이용하여 사미원이 진헌한 신기한 완구를 전부 땅에 내동댕이쳤다.


중국 광동성 위치중국 광동성 위치


사미원은 그의 내심을 알고 매우 두려워했다. 그날 밤 조현의 폐위 계책을 논의하였지만, 조현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조신 진덕수眞德秀가 당시 궁중교수宮中敎授를 겸임하면서 조현에게 간하였다.


"황자가 어머니(양황후)에게 효도 공경하고, 대신(사미원)을 존경하면 천명은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깊은 우려가 있습니다."


조현은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사미원이 정자사淨慈寺에서 자신의 아비인 사호史浩와의 약속을 핑계로 국자학록 정청지鄭清之와 더불어 혜일각慧日閣에 올라 시종들을 물리고 밀담을 나눴다.


"지금의 황자는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오. 듣자니 기왕부의 귀성貴誠이 매우 현덕 하다고 하니 그에게 선생을 선택하도록 하시오. 당신이 그를 잘 가르쳐 키워주시면 장래 일이 성사된 후에 내 직위는 당신의 것이 될 것이오. 그러나 이 일이 누설되면 당신과 나 모두 멸족을 면치 못할 것이오"


정치는 황망히 "감히 누설치 않겠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정청지는 위혜헌왕부魏惠憲王府의 교수를 겸임하였다. 정청지는 매일 조귀성에게 글을 가르치고, 송 고종高宗 때의 어서御書를 강의했으며, 귀성에게 밤새도록 연습케 하였다.


정청지가 사미원을 볼 때마다 귀성의 시문詩文을 내보이니 사미원은 칭찬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미원 또한 항상 정청지에게 귀성의 상황을 물었다.


"듣기에 황질皇侄께서 이미 현덕 하시고 성숙하셨는데 어쩔 셈인가?"


하니 정청지는


"귀성의 현덕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만, 한마디로 말해서 출중하십니다"라 하였다.


사미원이 재삼 숙고하고는 조현을 폐출하기로 했다. 이에 송 영종의 면전에서 조현의 과실을 밝혀 영종寧宗이 그를 폐출시키고 귀성을 세우기를 바랐다. 그러나 송 영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덕수가 이 일을 듣고 궁중교수의 직무를 사퇴하겠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떠나면서 다시 앞서 간언했던 말을 조현에게 해주였다. 조현은 역시 듣지 않았다.


송이종의 묘에서 발견된 석상송이종의 묘에서 발견된 석상

(출처 : 赵昀)


1224년 8월 21일, 송 영종이 병이 나자, 사미원은 정청지에게 귀성이 황자가 될 것이라고 얘기하도록 했다. 귀성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정청지는 이렇게 말했다.


"승상께서 저에게 당신과 오랫동안 교류케 하셨습니다. 저는 그가 안배한 당신의 심복입니다. 당신이 말씀을 안 하시니 제가 어찌 승상에게 회답하겠습니까?"


귀성이 손을 모아 예를 차리고 천천히 "제게는 소흥紹興에 노모老母가 계십니다"라 하니 정청지가 이를 사미원에게 전하였고, 사미원은 또다시 귀성의 효성이 비범함을 칭찬하였다.


8월 27일, 영종의 병이 중하자, 사미원은 거짓 조서를 내려 귀성을 황자로 하고, 이름을 윤㽙으로 고치게 하여 무진군武泰軍의 절도사로 위임하고 성국공成國公에 봉했다. 윤8월 초3일, 영종이 복녕전福寧殿에서 병사하였으니 향년 57세였다.


사미원은 양황후의 두 조카 양곡楊谷과 양석楊石을 보내 조현의 폐위와 조윤(송나라 이종宋理宗)의 개립을 황후에게 알렸다. 양 황후는 안 된다고 여기고 "황자 조현은 선제께서 정하셨는데, 어찌 마음대로 바꾸느냐"고 하였다.


송나라 이종 조윤宋理宗송나라 이종 조윤宋理宗

(출처 : 赵昀)


양곡 등이 밤새 일곱 차례나 오갔음에도 양 황후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후에 양곡 형제가 바닥에 끓어 앉아 읍소하였다.


"내외의 군민들이 모두 조윤에게 돌아섰습니다. 그를 세우지 않으면 화가 닥칠 것이고, 양씨 가족은 목숨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양 황후는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조금 지나자, 비로소 "조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 물었다. 사미원은 곧바로 사람을 보내 조윤에게 입궁토록 당부하였다.


"지금 선포되어야 할 사람은 기정혜왕부沂靖惠王府의 황자인 조윤이지, 만세항萬歲港의 황자 조현이 아닙니다. 만약 잘못된다면 당신들은 죽게 됩니다."


조현은 송 영종이 붕어했음을 알고, 입궁하여 계위하라는 조서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조서를 가지고 오는 자가 없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담장 사이로 밖을 살피다 조서를 전달하는 사자가 자신의 집을 지나치자, 비로소 의심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다시 궁중 사자 한 사람이 또 그 집을 지나치는 보았다. 날이 저물어 누군지 분간하지 못했고, 조현은 더욱 의심이 깊어졌다. 조윤은 조서에 따라 입궁하여 황후를 알현했다. 양 황후는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오늘부터 네가 나의 황자이니라"고 말했다.


송나라 영종 宋 寧宗송나라 영종 宋 寧宗

(출처 : 赵扩)


사미원은 조윤을 이끌고 송 영종의 영구 앞으로 가 애도가 끝나면 조현을 부르겠다고 하였다. 조현이 명을 받고 궁에 들어가자, 그의 수행원들은 금위군에 의해 궁 밖에 남게 됐다.


조현이 송 영종의 영구 앞에 가 애도를 마치자, 사미원이 그를 다시 장막 밖으로 이끌어 도지휘사 하진夏震에게 감시하도록 하였다. 이어 사미원이 백관들을 조당에 불러 세우고, 송 영종의 유조를 읽었다. 조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현이 놀라서 "오늘의 일에 내가 어찌 이 자리에 서있단 말이오?"라 하니 하진이 "유조가 선포되기 전이니 여기에 계셔야 합니다. 유조를 선포한 후에 즉위할 수 있습니다"라 속였고, 조현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곧이어 저 멀리 누군가가 어좌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조윤이 이미 즉위했던 것이다.


사미원이 유조를 다 읽자, 백관들의 감축이 이어졌다. 조현은 절하고 싶지 않았다. 하진이 그의 머리를 잡아당겨 절하게 했다. 영종의 거짓 유조로 조현은 개부의동삼사가 되었고, 제양군왕濟陽郡王 및 영국부판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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