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배구,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군주를 만족시키다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5. 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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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용호상박의 명장들, 장개충


배구 - 상황에 따라 변화하다


배구裴矩는 오뚝이 같은 인물이다. 그는 평생 북제, 수 문제와 양제, 우문화, 두건덕, 당 고조와 태종 등 모두 세 왕조, 일곱 명의 군주를 섬겼으니, 군주마다 모두 그에게 만족하였다.


배구의 초상배구의 초상

(출처 : 裴矩)


그가 보는 수 양제는 공 세우기를 좋아하는 군주로, 온갖 방법으로 변방을 개척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그는 수고를 마다치 않고 직접 서역의 각국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풍속 습관, 민족, 물산, 복장 등의 상황을 살폈고, 서역도기를 써서 양제의 환심을 샀다. 이에 수양제는 그에게 5백 필의 비단을 하사했고, 항상 옆에 두어 서역의 상태를 묻곤 했으며, 황문시랑으로 진급시켜 서북지역으로 보내 서역 업무를 보도록 하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10여 개의 작은 나라를 수나라에 귀순토록 설득했다.


어느 해인가 수 양제가 서북 변방을 순시하였는데, 배구는 많은 돈을 아끼지 않고 서역의 27개국 군주들을 설득하여 진우와 옥, 비단 가무와 분향으로 길가에서 황제를 뵙도록 하였다. 또한, 현지 백성들을 동원하여 그 대열이 수십 리에 달해 전에 없는 성황을 이루게 하였다. 수 양제는 크게 기뻐하여 그를 은청광록대부로 승진시켰다.


배구는 이처럼 하는 일마다 효과를 보자, 더욱 기발한 생각을 해내기 시작했다. 양제에게 천하 사방의 각종 기묘한 기예로 장대 오르기, 줄타기, 씨름, 레슬링, 말 서서 타기 등, 잡기를 모두 낙양에 집중시켜 서역의 각국 사절단이 마음껏 보게 하고 국위를 떨칠 수 있도록 한 달간 공연하도록 하였다. 이 기간에는 낙양 거리에 커다란 장막을 치고 술과 음식을 차려 외국인들이 마음껏 즐기도록 하고, 돈은 일절 받지 않았다. 당시 외국인 중 일부 지식인들도 이를 과장이라 하고 허세라고 여겼지만, 양제는 오히려 매우 만족했고 배구에 대해 깊이 신임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배구는 나를 너무 잘 안다. 그가 주청한 것은 모두 내가 일찍이 생각했던 바로, 내가 말하기 전에 그가 제안했다. 나랏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르렀겠는가?"


이에 또 40만 전을 하사하고, 각종 진귀한 모피와 서역의 보물을 선물하였다. 배구는 개인적으로 뛰어났을지 모르지만, 나라와 백성에게는 커다란 재앙을 몰고 왔다. 고구려 정벌은 바로 배구의 사주로 시작된 것이었다. 전쟁이 날로 확대되고 지체되면서 매번 패했고, 수나라의 인력과 물력, 재력이 다 소모되어 사방에서 원성이 일어나면서 수나라 멸망을 가져왔다.


서역으로 떠나는 수나라 사절단서역으로 떠나는 수나라 사절단

(출처 : 隋炀帝时期只会拍马溜须的他,为何敢在唐太宗面前说真话)


의병이 곳곳에 가득하고 불꽃이 사방에서 일어나자, 양제는 양주에 갇히게 되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때에 배구는 지금 황제는 저무는 해로 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백해무익하다고 보고 방향을 바꾸기로 했고, 그 목표를 우왕좌왕하는 군관과 병사들로 잡았다. 그는 병사들을 겸손하고 공순히 대했으며, 지위가 낮은 관리에게도 항상 웃는 얼굴로 대했다.


그는 양제에게


"폐하, 양주에 오신지 2년이 되었습니다. 사병들이 이곳에서 외로워하고 있으며, 마음을 붙이지 못합니다. 이는 오래 할 계책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사병들이 이곳에서 혼인해 가족을 이루도록 양주 내외의 과부나 홀로된 여자, 여승들을 사병들과 혼인시켜줄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본디 개인적인 왕래가 있어야 하나, 일률적으로 승인하여 주십시오"


라고 건의하였다.


양제는 이 건의를 크게 칭찬하였다. 즉각 집행토록 했고 사병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배구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배구 대인의 은혜다"라 하였다. 후에 정변이 발생하여 양제가 죽었을 때, 모든 총신이 죽음을 당했으나, 사병들이 이구동성으로 오직 배구만은 좋은 사람이라 하여 다행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외교에 큰 획을 남긴 배구외교에 큰 획을 남긴 배구

(출처 : 裴矩)


후에 그는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당나라에 투신했고, 당태종 때에는 이부상서가 되었다. 당태종은 관리의 뇌물수수를 매우 염려하여 근절할 것을 결심하였고, 증거를 잡는 데에 고민하였다. 한번은 그가 사람을 보내 일부러 뇌물을 줬고, 궁정 수비를 담당하던 관리가 비단 한 필을 받았다. 태종이 크게 화를 내고 이 관리를 죽이려 했다. 배구는 이를 말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사람은 뇌물을 받았으므로 엄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먼저 재물로 유인하셔서 극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한 것이니 예의 도덕으로 사람을 이끄는 원칙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당 태종은 그 의견을 받아들이고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배구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겉으로는 순종하면서 마음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사건마다 이렇게만 된다면 천하가 크게 다스려지지 않을까를 걱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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