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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경의 세설신어 해제解題 - 3, 안길환, 명문당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31. 16:00

이 시대의 사상과 학술 방면을 생각해보면 한나라는 유학을 관학官學(나라에서 세운 학교나 학원 따위의 교육 기관, 그리고 그 교육 방침)으로 정하고 있었으며, 유교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와 연결지어져서 국가 지배의 받침대가 되고 있었는데, 이윽고 후한이 되자 유교는 오로지 훈고학訓詁學(경전의 자구 해석에 치중)으로 향하는 한편, 중앙집권의 쇠미와 함께 그 사상적 지배력을 잃어간다. 이윽고 위진시대에 접어들자 이것에 대신하여 노장사상老莊思想이 강성해진다.


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 나름대로의 유희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 나름대로의 유희

(출처 : 儒家教育的“正经”与“旁经”之别)


죽림칠현과 같은 사람들은 이미 원래의 정신을 잃고 형해화形骸化(형식뿐이고 가치나 의의가 없는 것)되었고, 혹은 봉건지배의 구실이 되어 버린 유교의 예교사상에 반항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태도를 구했다.


하물며 위, 진으로 이어지는 불안한 시대, 권력자들의 싸움에 정나미가 떨어진 사람들은 자연히 이 세상과의 대립을 초월한 무위자연無爲自然(무리해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사는 삶, 참조 - 노자(老子)의 윤리 사상 - 무위 자연(無爲自然))의 가르침에 경도되어 가는 것도 역시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이것이 또 후한시대 무렵부터 중국에 이입해온 불교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중국 북방이 이민족의 지배하에 들어감과 동시에 서방 문명이 점차 중국에 유입되어 불교라고하는 서역의 가르침이 점점 중국인 사이에 뿌리를 내려가게 된다. 특히 동진으로 접어들자 불교의 신앙은 점차 더 깊이 침투해 갔다.


이렇게 해서 유교, 노장과 함께 불교사상은 육조(서진, 동진, 송, 제, 양, 진나라를 일컬음)인의 교양속에 깊이 파고들었고 또 노장불교老莊佛敎에 의해 사람들은 깊은 철학적 사색을 몸에 익히게 된다. 이른바 현학玄學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현학이란현학이란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이것이 또 청담의 유행이 되었으며 교양인들은 종종 상대방을 찾아서, 예컨데 재성론才性論(사람의 재능과 품성, 당시 유명한 논論으로는, 부하傅嘏의 재성론才性論, 왕찬王粲의 거벌론去伐論, 혜강稽康 성무애락론聲無哀樂論, 하후현夏侯玄의 본원론本院論, 왕필王弼 역약전易略傳, 하안何晏의 도덕론道德論, 이강李康 운명론運命論, 육기陸機 변망론辯亡論 등이 있다)과 같은 철학적 토론을 반복하며 서로 그 이치의 우열을 다투었던 것은 이 세설신어에서도 자주 보는 바이다.


당시의 문학자와 사상가들은 모두가 귀족들이었으므로 그들이 아무리 피하고자 해도 각 시대의 정권과 어떤 형태로든 연결지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격렬한 정권의 이동은 그들 귀족의 운명을 항상 위협했는데 그 중에서도 위진의 문인 전기를 읽어보면 그 최후는 권력자의 손에 의해 주살당한 예가 혜강뿐만이 아니라 너무나도 많다는 데 놀라게 된다.


그들은 이런 현황을 눈으로 보고, 귀로 전해 들으면서 항상 어두운 공포감을 안고 살아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세설신어에 소개되고 있는 사람들의 언행은 그 얼마나 명랑하고 또 유연하단 말인가? 본디부터 그들 귀족은 중앙정권에서의 다툼에 말려들지 않는 한, 장원경제莊園의 토대 위에 안주하면서 그 자신들은 아무런 생산도 하지 않으며, 유유히 청담에 탐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학에 밝았던 의사 화타유학에 밝았던 의사 화타

(출처 : 中医药名家华佗)


동진 중엽 무렵부터 산수 자연의 미를 즐기는 풍조가 강해진다. 유협이 '노장을 떠나 산수에 재미들다'라고 했던 것처럼, 그들은 산수 자연 사이에서 미를 찾아내고 진을 구하며 자유를 찾아 헤맸던 것이다. '안석 나가지 않는 즉 창생을 어이할꼬?'라고 말했던 사안과 같은 사람도 회계의 동산에 살고 있으면서 중앙에서의 부름에 좀처럼 나아가려고 하지 아니했다. 왕희지가 회계내사가 되어 난정회蘭亭會(목제穆帝 영화永和 9년(353) 3월 3일, 왕희지, 손탁孫綽, 사안謝安 등 41명이 산음山陰 난정에서 계연禊宴을 베풀며 시를 지어 읊은 모임)를 개최했던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동진, 당나라 난정회 체험 1동진, 당나라 난정회 체험 1


동진, 당나라 난정회 체험 2동진, 당나라 난정회 체험 2


동진, 당나라 난정회 체험 3동진, 당나라 난정회 체험 3

(출처 : 兰亭会)


그러나 이 어지러운 정권의 이동, 음참한 권력자의 투쟁은 자칫 그들을 투쟁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와중에서 세설신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실로 시원시원하기만 하다.


이런 시원스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언제 어디서 검은 그림자가 몰래 스며들는지 모르는 시대에 어떻게 그처럼 시원시원할 수 있었던 것일까?


첫째로는 그들 귀족들이 지니는 의젓함이다. 매사를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혹은 마음에 드는 대화를 나누며, 또는 철저한 현학의 토론을 즐기었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노장사상은 그들에게 현실의 대립을 초월하는 자유로운 경지를 제시하였다. 불교는 그들에게 심원한 철리를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그들은 또 권력자인 누가 제위를 뺏더라도 자기들은 높은 문화의 소유자임을 자랑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자기네들의 생활태도에 대하여 일종의 자신감을 가지고 잇었다. 그러므로 비록 주살당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하더라도 권력이란 것의 어리석음을 마음속으로 비웃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유의경 상상도유의경 상상도

(출처 : 世说新语)


후한 말기, 청담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로부터 인물에 대한 월단月旦(인물 비평)이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하여 행해졌는데, 이윽고 위나라 세상이 된 다음에는 구품관인九品官人의 법이 행해짐에 이르러 이것과 함게 사람의 품격에 대한 논평이 성행되었다. 이런 일은 예술에 있어서도 각 작가들을 품평하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서품畵品, 화품畵品, 시품詩品이란 것들이 나타났는데 이 시대는 특히 인물 품평에 특별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사람의 풍격을 정확하게 평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는데 그 품평의 기준은 무엇보다도 청고淸高, 간이簡易, 명민明敏, 준수俊秀, 우아優雅한 것을 좋아했다. 이른바 육조의 인물 풍격은 이 세설신어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 책 문장들의 재미있는 면들과 함께, 거기에 묘사되어 있는 인물의 매력에 푹 빠지지 않을 수없다.


단, 이것을 자치 잘못 익혔다가는 청고淸高(맑고 고결함)는 독선(스스로를 높이다가 고집불통이 되는 것)이 되고, 간이簡易(형식을 간소화)는 거오倨傲(간이 과정에서 거만하고 오만해짐)가 되며, 방종이 될는지도 모른다. 일부의 세설신어가 후생後生(오늘날의 후손들)을 그르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일까?


출처 - 세설신어 下, 안길환, 명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