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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훈 - 지식인의 재생, 안지추가 겪었던 일들이란 무엇일까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2. 3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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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안지추지식인 안지추

(출처 : 看1500年前的“老南京”如何教育孩子)


부형父兄은 언제까지나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향의 일족이나 국가의 제도도 또한 항상 보증해 준다고는 할 수 없다. 일단 방랑자가 되면 원조해 줄 사람이 누구라도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자기 삶의 모든 것을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속담에도 "산처럼 쌓아둔 재산보다 몸에 익히고 있는 보잘것없는 재주가 더 도움된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재주 가운데서도 배우기 쉬우면서도 게다가 귀중한 것은 독서술에 비할 것이 없다...


남북조 시대 지식인 안지추남북조 시대 지식인 안지추

(출처 : 颜之推的名言)


학예를 갖춘 사람은 설령 어디를 가더라도 안주할 장소쯤이야 찾을 수 있다. 후경의 대란 이래, 포로가 되는 괴로움을 경험한 사람은 많았다. 그중에는 대대로 신분도 없는 미천한 출신자로 겨우 논어나 효경 정도를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제법 선생이라고 불린 인물도 사실 있었다.


그러나 반면 몇 대에 걸쳐 높은 신분과 벼슬을 유지했던 집안에 태어났으면서도 서적이라고 할 만한 것을 제대로 읽지도 못한 무리는 예외 없이 땅을 갈던가 말을 돌보는 일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실례를 보면 누구든 스스로 힘써서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만약 항상 수백 권의 서적이라도 집에 수장하고 있다면 설령 몇백 대를 지나더라도 신분도 없는 계층으로 떨어지는 일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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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훈 모현편 삽화안씨가훈 모현편 삽화

(출처 : 【必慎交游】《顏氏家訓·慕賢篇》)


업이 평정된 후(업鄴 : 북제의 수도), 우리는 모두 관중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북제의 수도 업이 북주에 의해 함락당해 나라가 멸망했다는 뜻) 그때의 일인데, 맏아들인 사로가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관계에서 벼슬자리나 봉급도 얻을 길이 없고, 집에는 번듯한 재산도 없습니다. 막노동해서 아버님을 모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항상 아버님께서 과업을 돌보시고 저는 경서와 사서 공부만 열심히 해 왔습니다. 그러나 과연 자식 된 자로서 이대로 태평스레 있어도 좋을는지 저는 정말 의문스럽습니다."


나는 사로에게 아버지로서 확실히 설명해 주었다.


안씨 가문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가정 교육안씨 가문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가정 교육

(출처 : 《颜氏家训》中的教子)


"아들이 아버지를 봉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식의 학문교육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아버지로서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너에게 학문을 버리고 돈 버는 데 전념케 하여 풍요롭게 먹거나 입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마음 편히 그것을 맛있다고 여기면서 먹을 수 있겠는가, 편안히 그것을 따뜻하다고 생각하며 입을 수 있게는 가.


네가 옛 성왕이 열어놓은 길을 너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로 알고, 우리 가문 대대로의 학문을 계승하는 데 노력해 준다면, 나는 설령 먹는 것이 변변치 않거나 입는 것이 초라하더라도 오히려 즐거이 그것을 먹을 것이며 그것을 입을 것이다..."


출처 - 중국의 역사[위진 남북조], 가와카쓰 요시오, 421p


그가 산처럼 쌓아둔 재산보다 몸에 익힌 재주가 훨씬 뛰어나다고 표현했던 건 그의 일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안씨가훈 표지. 중국에서 판매중인 책 표지안씨가훈 표지. 중국에서 판매중인 책 표지

(출처 : 耳闻目见)


영가의 난으로 9대조 안함이 강남으로 내려온 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관직에 나아가 녹봉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벼슬을 시작했던 양나라는 후경의 난을 겪으며 쇠퇴하기 시작하다 곧 멸망했고, 그는 서위의 침공 당시 북방으로 이송된 십여 만의 포로 중 하나였습니다.


북방에서 양나라 멸망 소식을 듣곤 북제에 입관했지만 혼군인 고위는 정사를 어지럽히고 은행 세력에게 권력을 나누어 줬으니, 그가 새로 몸담은 북제 역시 이내 멸망합니다. 그는 일생 양, 북제, 북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재산이 강탈당하고 사라지는 것을 많이 목격했을 겁니다.


그가 아들에게 산처럼 쌓아둔 재산보다는 독서의 가치가 더 높다는 것을 말한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몸을 보존할 방법은 공부였던 것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근데,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말인진... 모르겠네요.


ps. 안지추는 북주의 마지막 황제인 고위에게 항복할 것을 권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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