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동진 효무제에게 중용된 전량 황제 장천석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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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석張天錫은 양주자사凉州刺史가 되어, 서쪽 땅에서 왕王을 참칭하고 세력을 폈는데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에게 붙잡혔고 그의 시중侍中으로 기용되었다. 그 후 수양壽陽에서 함께 패전(비수에서 패배한 일)했는데 장천석은 도읍으로 돌아왔다. (1)


효무제(동진 효무제 사마요)에게 중용되었는데 궁중에 입궐할 때마다 언제나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 상대를 하고 있었다. 이 일을 질투하는 자가 있었는데 어느 좌석에서 장천석에게 물었다. "북쪽에는 어떤 좋은 점이 있습니까?" 장천석이 말했다.


"오디(뽕나무 열매)는 달고도 향기로워서 올빼미 솔개가 이것을 먹으면 그 날카로운 소리가 부드럽게 바뀌고, (2) 짙은 낙유酪乳는 온호환 성품을 길러주는 까닭에 사람에게는 질투심 같은 것이 없답니다." (3)


전량 황제 장천석전량 황제 장천석

(출처 : 鲜为人知的两位搞笑帝王:一个超级能扯,一个甘当降王之老大)


유효표의 주.


(1) 장자張資의 양주기凉州記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장천석의 자는 순하純嘏이고 안정安定 오씨烏氏 사람이며 장이張耳의 후예이다. 증조부인 장궤張軌는 영가연중永嘉年中에 양주자사가 되었으며 경사京師의 대란大亂을 만나자 마침내 양주 땅에 근거지를 잡았다. 장천석은 그 지위를 찬탈하고 자립하여 양주목凉州牧이 되었다. 부견은 대장 요장姚萇을 보내어 양주를 쳐서 함락시켰다.


장천석은 장안長安으로 귀순했는데 부견은 그를 시중, 비부상서比部尙書에 임명하고 귀의후歸義侯로 봉했다. 부견을 따라 수양으로 갔는데 부견의 군대가 패하자 그곳에서 남쪽으로 귀순했다. 그리고 산기상시散騎常侍, 서평공西平公에 제수되었다.'


요장과 부견요장과 부견

(출처 : 姚苌)


(2) 시경詩經, 송頌, '노송魯頌'에 이런 구절이 있다. '펄펄 나는 올빼미가 반궁泮宮 숲에 내려앉네(翩彼飛鴞 集于泮林) 오디를 따먹고는 내 호의를 생각하네(食我桑葚 懷我好音).'


(3) 서하구사西夏舊事에 이런 글이 있다. '서하西夏(황하 서쪽의 땅)의 우양牛羊은 살이 쪄 있어서 낙유는 매우 정호精好하다. 단, 그 낙유를 가죽 위에 쏟아도, 조금도 녹아서 퍼지는 일이 없다.'


세설신어 上, 언어言語편 94화.

세설신어 上, 안길환, 명문당, 243p~244p


전량의 간단한 역사에 대해선 오유에 올라온 글을 참조하세요.


링크 - 그냥 간단하게 보는 전량(前凉)이란 국가에 관한 이야기.txt [클릭]


어리석었던 황제 효무제 사마요어리석었던 황제 효무제 사마요

(출처 : 皇帝和贵妃开了个玩笑,贵妃一个举动毁掉了强大的帝国)


장천석은 전형적인 망국의 군주답게, 정사를 게을리하고 형제들을 도륙했으며 색色을 밝혔습니다. 그러니 곽우 같은 명사들은 장천석의 초빙에 응하지 않고 산속으로 도망치거나 다른 나라로 피신을 갑니다.


비현실적인 이상론을 꿈꾸던 부견은 이런 인간도 나름 황제였다고 귀의후에 봉해줍니다. 이후, 비수 대전 당시에 퇴각하는 전진군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동진에 투항해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이 일화를 보건대, 그래도 똑똑하고 말도 잘했으니 효무제가 중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武에도 능력이 있었으니 부견이 전장으로 데리고 갔을까요? 아무튼, 능력은 있었으나 황제로선 그렇지 못했던 인물이라 추측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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