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명나라 간신 완대성의 죽음에 대한 기록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4. 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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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청초, 이자성의 난으로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목을 매달아 자살합니다. 이에 완대성, 마사영 등이 남명 정권을 꾸려 명의 부활을 내걸지만, 청나라 군대의 기세가 등등해 맞서지 못하고 도망치는 와중에 투항하고 맙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할 수 있으나, 인품이 원래 고약한 사람이라 남명 정권을 꾸린 이후에도 정권을 장악한 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이는 등 전횡을 일삼던 악인입니다.


숭정제, 목을 매달고 자살하다숭정제, 목을 매달고 자살하다

(출처 : qulishi.com)


☆ 명사 간신전


이듬해, 대군이 호적湖賊을 토벌하면서 사영士英과 장흥백長興伯 오일생吳日生을 사로잡아 어명에 따라 참수했다.


완대성은 사삼빈射三賓, 송지진宋之晉, 소장蘇將 등과 함께 강간江干으로 가 투항한 후, 대군을 따라 선하관仙霞關을 공격하던 중 바위 위에 넘어져 죽었다. 그리고 야사에는 이렇게 전해진다.


상해 선화관 유적지 1상해 선화관 유적지 1


상해 선화관 유적지 2상해 선화관 유적지 2

(출처 : 仙霞关)


사영이 대주산臺州山으로 달아나 중이 되었으나 우리 군대에 사로잡혔고, 대성과 국안國安도 차례로 투항했다. 당왕唐王을 찾아 순창順昌으로 갔다. 대군이 이르러 용강龍江을 수색함에 사영, 대성, 국안부자가 왕과 내통하고자 했던 상소가 발견되자 연평성에서 사영과 국안을 나란히 참수했다. 대성은 산을 오르다 스스로 바위 위에 떨어져 죽으니, 그 시체를 도륙하였다.


☆ 청나라 오위업吳偉業 녹초기문鹿樵紀聞 가운데 마완시말馬阮始末


선하관에 이르자 공들이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오르는데 대성은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사람들은 고개가 길어 말을 타고 가다가 위험한 곳에 이르면 말에서 내려서 길을 갔다. 대성은 왼손으로 말을 끌고 오른손으로는 말 타고 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내 정력이 젊은이들보다 열 배는 낫네."


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모두를 격려하고 앞서갔다.


한참 후, 오통령五通嶺에 도착한 일행의 눈에 대성의 말이 길목으로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그가 바위 위에 앉아 있어 소리쳐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말 위에서 채찍으로 그의 변발을 건드렸지만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말에서 내려 살펴보니 죽어 있었다.


드라마 속 완대성드라마 속 완대성

(출처 : 阮大铖一出戏为何写了八年?)


☆ 청나라 전징지錢澄之의 장산각문존藏山閣文存 가운데 환염사실晥髥事實


어느 날 갑자기 얼굴이 부어 보이니, 내원內院에서 이를 걱정하며 헌충獻忠(경耿씨, 명나라 금화지부金華知府)에게 말했다.


"완공의 얼굴이 부은 것으로 보아 병이 있는 듯하니, 말 타고 가는 게 무리일 것 같습니다. 노인은 특히 얼굴이 붓는 것을 조심해야 하니 공께서 상의하시어 구주에 잠시 머물러 계시다가 저희가 관에 들어가 건녕建寧을 취한 후 사람을 보내 맞이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헌충이 대성에게 이 말을 전하자 대성이 정색하며 말했다. "내가 무슨 병이 있다고 그러시오? 내 비록 나이 예순이나 야생마를 타고 큰 활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장한 사내란 말이오." (중략) 그리하여 대성과 함께 가게 되었다. 관 아래쯤에 이르러 모두 말을 탄 채로 고삐를 당기며 천천히 고개를 올라갔는데 대성만 홀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완대성이 지은 희곡, 연자전완대성이 지은 희곡, 연자전


사람들이 그를 향해 소리치며, "갈 길이 아직 멀었으니 말을 타십시오. 험준한 길이 나올 때 내리셔도 무방합니다." 라고 말하자 대성이 왼손으로 말을 끌고 오른손을 그들에게 흔들며 대답했다. "겁낼 게 뭐 있나. 내 근력을 보게. 젊은 자네들보다 백배는 낫네." 건장한 모습으로 병이 없음을 믿게 하려는 듯했다.


말을 마치고 사람들을 격려하며 올라가니 그들도 더 바라보지 않았다. 한참 후 모두 오통령에 이르렀는데, 선하관 가장 높은 곳에서 대성의 말이 달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바위 위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 말 위에서 채찍으로 변발을 건드렸지만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죽어 있었다.


완대성의 배신에 분노하는 이계군완대성의 배신에 분노하는 이계군

(출처 : 바이두 이미지)


☆ 청나라 대명세戴名世의 글 "홍광조 위동궁 위후 및 당화기략"


대군이 금구金衢의 군현들을 연달아 손에 넣고 선하령을 넘기에 앞서 청호靑湖 아래 절벽에 이르렀다. 대성에게 약간의 병색이 있어 그와 친하게 지내는 자가 다가가 말했다.


"공은 연로하시니, 고생스럽게 먼 길을 가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저희가 먼저 고개를 넘을 테니 공은 여기서 잠시 쉬고 계시다가 천천히 복주福州로 오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대성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내 비록 늙었지만 큰 활을 쏘고 건장한 말을 몰 수 있소. 이제 저 칠민七閩을 취하려면 내가 반드시 있어야 하거늘 어찌 그런 말을 하시오?" 그러고는 혼자 탄식하며, "이는 필시 동림복사東林復社가 나를 이간시키려는 수작이다!"라고 말했다.


모두들 동림복사가 누구를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 "공이 가시는 길을 누가 감히 막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튿날, 전군이 고개를 넘는데 대성이 홀로 말에서 내려 걸어 올라갔다. 힘찬 발걸음으로 나는 듯 올라가던 그는 말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채찍으로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자네들같이 젊고 건장한 사내도 이 대머리 늙은이보다 못하군그래!"


모두 그의 정정함에 감탄했다. 오통령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호흡이 자꾸 끊기더니 바위 위에 앉아 숨을 거뒀다. 고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때 길가의 주민들이 모두 달아나버리는 바람에 어디서도 관을 구할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별수 없이 문짝을 메고 고개를 올라갔는데, 날씨가 무더워 시충尸蟲이 길에 득실거렸고 결국 썩은 뼈만 남았다.


시충尸蟲. 시체도 뜯어먹는 벌레시충尸蟲. 시체도 뜯어먹는 벌레

(출처 : 食尸虫)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을 지은 리궈원은 다른 파트에선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노골적인 표현으로 완대성을 비난합니다.


1. 완대성은 심지어 죽기 얼마 전까지도 악행을 그치지 않았다. 참으로 구제 불능인 이 인간을 어찌하면 좋을까?

2. 그가 살아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곧 재난이었다.

3. 그 일생의 행적에 옳은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4.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악취가 진동하는 악당 중에 악당인 것이다.

5. "대성이 안에서 적과 내통하는 바람에 금화가 함락되고 백성들이 도륙당했다"


이런 간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생한 기록이 남아있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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