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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계보 9 - 대진국 황제 총 일람 [세조에서 애제까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2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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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진국 황제 계보(15대, 존속 연도 : 259년)


1. 세조世祖 - 32 - 668

조대기에서 말한다. 개화 27년 9월 21일 평양성 함락 때 진국장군모 대중상大仲象은 서압록하를 지키다가 변을 듣고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험한 길을 달려 개원을 지나는데, 소문을 듣고 따르겠다고 원하는 자 8000인이 재빨리 모여들어, 동쪽으로 동모산에 이르러 웅거했다.


성벽을 굳게 하여 스스로 보존하고 나라를 후고구려라 칭하고 기원을 중광重光이라 하였다. 이르는 곳마다 격문을 전하니 원근의 뭇 성들은 귀속해 오는 곳이 많았다. 다만 옛 땅을 회복함을 자기의 임무로 삼다가 중광 32년(A.D.699) 5월 대중상은 붕어하였다. 묘호廟號를 세조世祖라 하고 시호諡號를 진숙열황제라 하였다.


사극 대조영 속 대중상사극 대조영 속 대중상


2. 태조太祖 - 21 - 699

태자 조영祚榮(A.D.699~719)은 부사를 따라 영주 계성으로부터 무리를 이끌고 당도하여 제위에 오르다. 홀한성을 쌓아 도읍을 옮기고 군 10만을 모집하여 위세를 크게 떨치었다. 곧 계책을 세우고 제도를 세워 당나라에 대항하여 적에 복수할 것을 스스로 맹세했다.


말갈의 장수 걸사비우와 거란의 장수 이진영과 손을 잡고 병력을 연합하여 크게 당나라 장군 이해고를 천문령에서 격파했다.


고왕 대조영 표준영정고왕 대조영 표준영정


뭇 장수들을 나누어 군현을 두고 지키며 유망민을 초무하고 정착을 널리 보호하고 크게 백성의 신망을 얻어 모든 기강을 새롭게 했다. 국호를 정하여 대진이라 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니, 땅은 6,00리가 개척되었다. 천통 21년(A.D.719) 봄 대안전에서 돌아가시니 묘호廟號를 태조太祖라 하고 시호諡號를 성무고황제라 하였다.


3. 광종光宗 - 20 - 719

마침내 5경 60주 1군 38현을 소유하니 그 원폭이 9,000리였다. 성대한 나라였다. 이 해 당나라 신라 및 왜도 나란히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니 천하는 해동성국이라고 칭송했다. 이에 발해 사람 셋이면 한 마리 호랑이를 당한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때의 군민은 화락하고 역사를 논하며 의를 즐겼다. 오곡은 풍성하고 사해는 안락했다. 대진육덕의 노래라는 것이 있어 이러한 대진국을 찬미했다.


발해의 5경 15부발해의 5경 15부


4. 세종世宗 - 57 - 738

개원하여 대흥大興이라 하고 도읍을 동경의 용원부로부터 상경의 용천부로 옮겼다.


5. 원의元義 - 1 - 794

대흥 57년(A.D.794)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廟號를 세종世宗 시호諡號를 광성문황제라했다. 국인은 그의 족제(아우) 원의元義를 즉위시켰으나 성품이 포악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다,


6. 인종仁宗 - 1 - 794

개원하여 중흥中興이라 하였다.


발해의 다섯수레 유물과 유적발해의 다섯수레 유물과 유적

(출처 : [어린이·청소년] 발해의 역사·문물·풍습… 무엇이든 물어봐)


7. 목종穆宗 - 7 - 795


8. 의종毅宗 - 5 - 809

선제의 손자 화여華璵(6대 인종(仁宗), A.D.794~795)를 맞아 즉위시키고 개원하여 중흥中興이라 하였다. 이듬해(A.D.795)에 붕어하시니 묘호廟號를 인종仁宗 시호諡號를 성成황제라 하였다.


황숙皇叔인 숭린崇璘(7대, A.D.795~809)이 즉위하니 이를 목종穆宗 강康황제라 한다. 의종(毅宗, 8대) 정定황제 원유元瑜, 강종(康宗, 9대) 희僖황제 언희, 철종(哲宗, 10대) 간簡황제 명충明忠을 지나 선宣황제 인수(人秀, 11대 성종(聖宗), A.D.818~832)에 이르다.


9. 강종康宗 - 6 - 813

10. 철종哲宗 - 1 - 818


예수를 알았던 발해 사람들예수를 알았던 발해 사람들

(출처 : 신라는 발해를 동족으로 생각했나)


11. 성종聖宗 - 13 - 818

대개마의 남북에 자리잡고 땅의 넓이 9,000리 영토는 크게 열리고 문치는 널리 가득 퍼졌다. 위로는 국도로부터 밑으로는 주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식 있고 구서 오계를 아침저녁으로 읽고 익혔다. 춘추에 공적을 생각하여 뭇 사람이 의논하여 인재를 추천하며 공물을 바쳤다.


사람들은 이미 힘을 길렀고 집집마다 모조리 나라에 쓰임을 기다리니, 이로부터 국세는 부강하여 나라의 안팎이 모두 편안하게 즐거웠으니 절로 도둑질이나 모사의 폐단이 없어졌다. 당나라, 왜, 신라, 거란 할 것 없이 두려워하며 복종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천하만방은 이로써 성인흥취의 해동성국이라고 흠송하였다.


발해인들의 온돌 유적발해인들의 온돌 유적

(출처 : 신라는 발해를 동족으로 생각했나)


12. 장종莊宗 - 13 - 830

13. 순종順宗 - 13 - 858

14. 명종明宗 - 32 - 870


15. 애제哀帝 - 901

오대가 바뀌었을 때 야율은 빈번하게 몇 차례나 싸움을 일으켜 왔으나 종내 굴복 시키지는 못했고, 뒤에 장종 화황제 이진, 순종 안황제 건황, 명종 경황제 현석을 지나 애제인 청태에 이르러 거란에게 멸망되니 세조로부터 15세를 전하여 259년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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