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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계보 8 - 고구려 황제 [28대 보장왕까지 모든 일람]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1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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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황제 계보 28대, 존속 연도 : 726년


1. 고주몽高朱蒙 - 39 - B.C.58

불리지弗離支는 일찍이 서쪽 압록강변을 지나다가 하백녀河伯女 유화宥和를 만나 그녀를 맞아들여 고주몽高朱蒙을 낳게 하였다. 때는 곧 임인년(B.C.79) 5월 5일이라. 곧 한나라왕 불능의 원봉 2년이다. 불리지가 죽으니 유화는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熊心山으로 돌아왔으니 지금의 서란이다.


주몽이 성장하여 사방을 주유하다가 가섭원迦葉原을 택하여 거기서 살다가 관가에 뽑혀 말 지기로 임명되었다. 얼마 안 되어 관가의 미움을 사서 오이와 마리외 협보와 함께 도망하여 졸본卒本으로 왔다. 때마침 부여 왕은 후사가 없었다.


주몽이 마침내 사위가 되어서 대통을 이으니 이를 고구려의 시조라 한다. 32년 갑오년(B.C.27) 10월 북옥저를 정벌하여 이를 멸망시켰다. 을미년(B.C.26)에 졸본으로부터 서울을 눌현으로 옮겼다. 눌현은 지금의 상춘 주가 성자이다.


국학원 역사문화공원 내 고구려 시조 고주몽 상 국학원 역사문화공원 내 고구려 시조 고주몽 상

(출처 : 국학원 역사문화공원 내 고구려 시조 고주몽 상)


2. 유리명제琉璃明帝 - 38 - B.C.19

19년 또 눌현으로부터 국내성으로 옮겼으니 또한 황성이라고도 한다. 성안에 환도산이 있는데 산 위에 성을 쌓고 일이 있으면 여기에 머물렀다.


3. 대무신열제大武神列帝 - 27 - 18

제는 낙랑국을 습격하여 멸망시켰으니, 동압록 이남이 우리에게 속했는데 오직 해성의 남쪽, 바다 근처의 여러 성만은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


낙랑국의 위치 비정낙랑국의 위치 비정

(출처 :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낙랑국의 전차戰車...!)


4. 민중제閔中帝 - 5 - 44

5. 모본제慕本帝 - 6 - 48

6. 태조무열제太祖武烈帝 - 94 - 53


7. 차대제次大帝 - 20 - 146

8. 신대제新大帝 - 15 - 165

9. 고국천제故國川烈 - 19 - 179


10. 산상제山上帝 - 31 - 197

원년 동생 계수를 파견하여 공손탁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현도와 낙랑을 정벌하여 이를 멸망시켰다.


고국천왕 4형제고국천왕 4형제


고구려왕은 산상왕 연우의 후손고구려왕은 산상왕 연우의 후손


11. 동천제東川帝 - 22 - 227

12. 중천제中川帝 - 23 - 248

13. 서천제西川帝 - 23 - 270

14. 봉상제烽上帝 - 9 - 292


15. 미천제美川帝 - 32 - 300

16. 고국원제故國原帝 - 41 - 331

17. 소수림제小獸林帝 - 14 - 371

18. 고국양제故國壤帝 - 9 - 384


19. 광개토경호태왕 - 22 - 392

19대 광개토廣開土(A.D.392~412)는 융공성덕하여 어느 왕보다 탁월했다. 사해안에서는 모두 열제광개토대왕라고 칭한다.


나이 18세에 광명전에서 등극하고 하늘의 음악을 예로써 연주했다. 군지에 나아갈 때마다 병사들로 하여금 어아의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이로써 사기를 돋우었다. 말을 타고 순수하여 마리산摩璃山에 이르러 참성단塹城壇에 올라 친히 삼신에게 제사 지냈는데 역시 천악을 사용하였다.


쓰레기 사극 광개토태왕쓰레기 사극 광개토태왕

(출처 : 바이두 이미지)


20. 장수홍제호태열제長壽弘濟好太烈帝 - 80 - 413

건흥建興이라고 연호를 바꿨다.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려서 강역을 널리 넓혔다. 이에 웅진강 이북이 모두 고구려에 속하게 되어 북연北燕 시위의 여러 나라가 모두 족속의 서열에 들어오게 되었다. 또 신라 매금 백제 어하라와 남쪽 평양에서 만나 납공과 수비 군사의 수를 정했다.


북연과 다른 연나라 위치북연과 다른 연나라 위치


21. 문자호태열제文咨好太烈帝 - 28 - 492

22. 안장제安藏帝 - 13 - 519

23. 안원제安原帝 - 15 - 531

24. 양원제陽原帝 - 15 - 545

25. 평강상호태열제平岡上好太烈帝 - 16 - 559


26. 영양무원호태열제嬰陽武元好太烈帝 - 32 - 590

수나라 왕 양광은 본래 선비의 유종족인 바, 남북의 땅을 통합하여 그 여세를 모아 우리 고구려를 모욕하고 업신여기더니, 상국을 업신여기고 자주 대병을 일으켰으나 고구려는 이미 대비가 있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홍무 25년 양광은 또다시 동쪽으로 침략해와서 먼저 장병을 보내 비사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케 했다.


수양제 양광의 동상수양제 양광의 동상

(출처 : 千古第一帝——隋炀帝杨广(圣武大帝——世祖明皇帝杨广))


관병은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하니 바야흐로 평양을 습격하려 했다. 제께서는 이를 듣고 완병술을 쓰려 했다. 계략을 꾸며 곡사정을 보냈다. 때마침 조의皂衣 가운데 일인이라는 자가 있어 자원하여 따라가기를 청한 끝에 함께 표를 양광에게 바쳤다. 양공이 배에서 표를 손에 들고 읽는데 절반도 채 읽기 전에 갑자기 소매 속에서 작은 활을 꺼내 쏘아 그의 뇌를 맞혔다. 양광은 놀라 자빠지고 실신했다.


우상 양명은 서둘러 양광을 업게 하여 작은 배로 갈아타고 후퇴하여 회원진에 명을 내려 병력을 철수시키도록 하였다. 양광은 좌우에 말하여 가로되,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 몸소 작은 나라를 쳐도 승리하지 못하니 이는 만세의 웃음거리가 아니겠는가?"


양명 등은 얼굴색이 검게 변하여 대답 못 하고 말았다. 


27. 고성제高成帝 - 25 - 618

소문은 마침내 고성제27대 영류營留(618~641)를 내어쫓고 무리와 더불어 보장을 맞아들여 이를 보장제(A.D642~668)로 삼다.

28. 보장제寶藏帝 - 27 - 642


수출까지 된 쓰레기 사극 연개소문수출까지 된 쓰레기 사극 연개소문

(출처 : 바이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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