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환단고기에서 언급된 책들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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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책명, 주요 내용 순


단군세기檀君世紀

구정도邱井圖


칠회력七回曆 - 임자 12년(B.C.2229), 신지神誌인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曆과 구정도邱井圖를 만들어 바쳤다.

배달유기倍達留記 - 신축 3년(B.C.2180), 신지神誌인 고글高契에게 명하여 배달유기倍達留記를 편수케 하였다.

육십갑자六十甲子 - 을축 4년(B.C.2096), 처음으로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사용하여 책력을 만들었다.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 - 기미 54년(B.C.1382), 지리숙支離叔이 주천력周天曆과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을 지었다.


중국의 선천팔괘도중국의 선천팔괘도

(출처 : 바이두 이미지)


태백일사太白逸史

표훈천사表訓天詞

대변경大辯經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

오제설五帝說


황제중경黃帝中經 - 오행치수의 법과 황제중경黃帝中經이라는 책은 태자 부루扶婁로부터 나와서 우사공虞司空에게 전해진 것이다.


중국의 황제내경중국의 황제내경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조대기朝代記

삼성밀기三聖密記

진역유기震域留記

운급헌원기雲笈軒轅記

법류부의전法類符擬篆

삼한비기


음부경陰符經 - 강태공姜太公은 제나라를 통치하기에 앞서 도술을 닦고 천제못天帝池에서 하늘에 제사 지냈다. 그리하여 역시 제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았으니 8신神의 풍속이 이 땅에 더욱 번성하였다.


후세엔 그 땅에 도술을 즐기는 자가 많이 배출되어 신선 사상과 도가의 사상을 섞어서 널리 퍼뜨리고 또 다듬었으니, 바로 강태공이 이를 장려함이라. 일찍이 음부경陰符經의 주를 만들어 자부삼황紫府三皇의 뜻을 조술하였다.


중국의 음부경중국의 음부경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삼황내문三皇內文 - 사람과 문물이 어느덧 풍숙하였으니 때마침 이때 자부선생紫府先生께서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을 만드시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천폐天陛에 진상하니, 천왕께서 이를 칭찬하였다.


삼일신고 - 본디 신시개천의 시대에 나와서 책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대저 하나를 잡아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옴의 뜻으로 근본으로 삼는다.


신지비사神誌秘詞 - 단군 달문達門 때의 사람 신지神誌 발리發理가 지은 것이다. 본래 삼신께 올리는 옛 제사에서 서원의 글이다.


대변설 - 대변설의 주에 말하기를, "남해현 낭하리의 계곡의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한웅이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리다'라고 있다"고 했다.


강태공 강상강태공 강상

(출처 : 周文王重用姜尚)


이태백전서李太白全書 - 옥진총담玉塵叢談에는 "발해국에 글이 있는바 당나라에서는 아무도 이를 해득하는 자가 없었다. 이태백은 능히 이를 풀어 이에 대답했다"하고 있다.


삼국사기 - 삼국사기엔, "헌강왕 12년의 봄 북진北鎭으로부터 적국인狄國人이 진에 들어와 나무 조각을 나무에 걸어 놓고 갔음을 상주하고는 마침내 그 나무에 쓰인 15자를 취하여 바쳤는데 '보로국寶露國과 흑수국黑水國의 사람이 함께 신라국新羅國과 화통하고자 왔노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삼성기 - 원동중의 삼성기의 주에, "왜倭, 진辰, 여국餘國은 혹은 횡서橫書하고 혹은 결승結繩하고 혹은 계목楔木한다"고 있다.

※ 안함로-원동중이 아니라, 안함 노원 동중. 환단고기 창작자가 실수한 대표적 부분.


헌강왕과 망해사 일화헌강왕과 망해사 일화

(출처 : 울산 망해사 쌍부도는 승탑일까 호국 기원 불탑일까)


백호통소의白虎通疏義

통전악지通典樂志

구서지문九誓之文

참전계경


유기留記 - 이명李茗의 유기留記는 말한다.


"옛날 백제의 장사꾼이 있었는데 바다를 건너 아유타에 가서 많은 재보를 벌어 돌아왔다. 그곳 사람들도 백제 사람들을 따라와 내왕했던바, 날로 교제하여 친밀해졌다. 그렇지만 그 풍속은 겁이 많고 싸움엔 익숙지 않아 많은 사람에게 통제되고 제약을 받게 되었다."


 또 말한다.


"평양에 을밀대乙密臺가 있는바, 세상에선 말하기를 을밀선인乙密仙人이 세운 것이라 한다. 을밀은 안장제 때 뽑히어 조의가 되고 나라에 공이 있었는데 본래 을파소의 후손이다.


평양의 을밀대평양의 을밀대

(출처 : 구글 이미지)


집에서 책을 읽고 활쏘기를 배우며 삼신을 노래하고 무리를 모아 수련하니, 그 옳음과 용기에 공으로 봉해졌다. 일세의 조의로서 그의 무리는 3,000이었으니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모여서 다물흥방의 노래를 제창했다. 이에 의하여 그 몸을 던져서 의를 다한다는 풍속을 고취한 사람이었다."


단군세기檀君世紀 - 행촌시중은 저서가 세 가지 있으니 단군세기는 원시국가의 체통을 밝힌바 현저하고, 태백진훈은 도학심법을 소개한 것이요, 농상집요는 경제실무의 학문이다.


태백진훈太白眞訓

농상집요農桑輯要


행촌삼서杏村三書 - 선생 이시중은 시중 벼슬을 하시다가 강도의 흥행촌으로 퇴거하시고, 자신을 흥행촌의 늙은이라고 부르시며 마침내 행촌삼서를 쓰시어 집에 간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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