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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현명했던 여인 신헌영 [신비의 딸이자 양호의 고모]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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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辛敞은 자가 태옹泰雍이고 관직은 위위衛尉에 이르렀다. 신비辛毗의 딸 신헌영辛憲英은 태상太常인 태산泰山 사람 양탐羊耽에게 시집갔는데, 외손자 하후담夏侯湛이 그녀의 전傳을 지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헌영은 총명하고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다."


예전에 문제文帝(조비)가 진사왕陳思王(조식)과 태자 자리를 놓고 다투었는데, 나중에 문제가 태자로 책봉되자 신비의 목을 끌어안고 기뻐하며 말했다. "신군辛君(신비)은 내가 얼마나 기쁜지 아시오?" 신비가 그 일을 신헌영에게 일러주었더니, 신헌영이 탄식하며 말했다.


"태자는 군왕을 대신해 종묘와 사직을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군왕을 대신하면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고, 나랏일을 주관하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마땅히 근심해야 하는데도 기뻐했으니 어떻게 오래 갈 수 있겠습니까? 위魏나라는 아마도 창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삼국무쌍7 제국편. 신헌영진삼국무쌍7 제국편. 신헌영

(출처 : 《真三国无双7:帝国》自定义武将分享)


[위魏 제왕齊王 정시正始 10년(249)] 동생 신창이 대장군 조상曹爽의 참군參君으로 있었는데, 사마선왕(사마의)이 장차 조상을 주살하고자 조상이 궁성을 나간 틈을 타서 성문을 닫아버렸다. (고평릉의 변) 그러자 대장군의 사마司馬 노지魯芝가 조상의 부병을 이끌고 명을 어긴 채 빗장을 부수고 성문을 나가 조상에게 가면서 신창을 불러내 함께 가고자 했다. 신창이 두려워하며 신헌영에게 물었다.


"천자께서 도성 밖에 계신데 태부(사마선왕 - 사마의)가 성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장차 나라에 일보지 못할 것이라 하는데, 사태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신헌영이 말했다.


"세상일은 알 수 없지만 내가 헤아려보니 태부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다! 명황제(명제 조예)께서 붕어하실 때 태부의 팔을 붙잡고 후사를 그에게 부탁하셨는데, 그 말씀이 아직도 조정 신하들의 귀에 남아 있다. 또한, 조상은 태부와 함께 고명顧命을 의탁한 임무를 받았는데, 조상이 홀로 권세를 독차지하고 교만과 사치를 자행하면서 왕실에 불충하고 사람의 도리에도 바르지 않으니, 이번 거사는 조상을 주살하는 것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신창이 말했다. "그렇다면 거사는 성공할까요?" 신헌영이 말했다. "어찌 성공하지 못하겠느냐! 조상의 재주는 태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신창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나가지 않아도 될까요?" 신헌영이 말했다.


"어떻게 나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직분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대의다. 무릇 다른 사람이 어려운 지경에 있어도 오히려 그를 딱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남을 위해 일을 하면서 그 맡은 일을 방기한다면 상서롭지 못하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남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남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심복의 직분이지만, [너는 조상의 심복이 아니니] 너는 대중의 뜻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신창은 결국 [노지와 함께] 궁성을 나갔다. 사마선왕은 과연 조상을 주살했다. [하지만 신창은 사면을 받았다.] 사태가 안정된 후에 신창이 감탄하며 말했다. "내가 누님과 의논하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도의를 얻지 못할 뻔 했다."


[위魏 원제元帝 경원景元 3년(262)] 종회가 진서장군이 되었을 때, 신헌영이 조카 양호羊祜에게 말했다. "종사계(종회, 자는 사계)는 무슨 이유로 서쪽으로 출정한다더냐?" 양호가 말했다. "장차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신헌영이 말했다. "종회는 일을 처리하면서 제멋대로 함부로 하는데, 이는 남의 밑에서 오랫동안 처하는 태도가 아니니, 나는 그가 다른 뜻을 품고 있을까 봐 두렵다." 양호가 말했다. "숙모님은 더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신헌영 일러스트. 서진 명장인 양호의 고모신헌영 일러스트. 서진 명장인 양호의 고모

(출처 : 바이두 이미지)


그 후에 종회가 양탐의 아들 양수羊琇를 불러 참군으로 삼자, 신헌영이 근심하며 말했다.


"지난날 종회가 출정하는 것을 보았을 땐, 나는 나라를 위해 걱정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환난이 우리 집안에 닥쳤고, 이는 또한 나라의 큰일이니, 필시 막지 못할 것 같다."


양수는 사마문왕(사마소)에게 한사코 사퇴를 청했지만 사마문왕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신헌영이 양수에게 말했다.


"가거라, 조심해라! 옛날의 군자는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님께 효도를 다 하고, 집을 나가서는 나라에 충절을 다하며, 직위에 있을 때는 자신의 책임을 생각하고, 도의에 직면했을 때는 자기 뜻을 생각하여, 부모님께 우환을 끼쳐드리지 않았을 따름이다. 군대에서 너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과 서의 마음뿐이다! 너는 이것을 신중하게 생각해라!"


양수는 결국 자신을 보전할 수 있었다. 신헌영은 79세에 이르러 [진 무제] 태시 5년(269)에 죽었다.


출처 - 위진세어, 김장환, 학고방


드라마 삼국지의 신비드라마 삼국지의 신비

(출처 : 바이두 이미지)


마지막으로 신헌영과 양탐 사이의 자식들 소개합니다. 출처는 바이두 백과 - 辛宪英 (魏晋时期才女)[클릭]입니다.


친차 (2남 1녀)

양근羊瑾 : 서진의 상서우복야西晋尚书右仆射

양수羊琇:자는 치서, 서진의 산기상시字稚舒,西晋散骑常侍

양씨羊氏:회남태수 하후장과 혼인, 외손자가 동진 원제 사마예淮南太守夏侯庄妻,外孙为晋元帝


양자 (5남 1녀)

양지羊祉:양탐의 형인 양비의 큰아들, 위군태수 역임羊耽兄长羊秘之长子,魏郡太守

양요羊繇:양탐의 형인 양비의 아들, 거기연 역임羊秘少子,车骑掾

양발羊发:양탐의 형인 양도와 부인 공씨 사이의 아들, 도독회북호군 역임羊耽兄长羊衜和夫人孔氏之子,都督淮北护军

양승羊承:양탐의 형인 양도와 부인 채씨 사이의 큰아들, 어려서 사망羊衜和夫人蔡氏长子,早夭

양휘유羊徽瑜 : 양탐의 형인 양도와 채씨 사이의 딸, 사마사의 후처, 양헌황후로 추존羊衜和蔡氏之女,司马师继室,追谥景献皇后

양호羊祜 : 양탐의 형인 양도의 채씨 사이의 아들, 서진의 태부이자 명장羊衜和蔡氏少子,西晋太傅、名将


서진의 명장 양호 초상. 너무 후덕하다서진의 명장 양호 초상. 너무 후덕하다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양비와 양도는 젊어서 사망해 동생인 양탐이 아이들을 맡아서 키운 듯. 2남 1녀를 낳았지만 실제로 기른 자식은 7남 2녀.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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