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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전설 2개, 백제 위례성 우물(소서노), 마한 태기왕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1.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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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전설 2개, 백제 위례성 우물(소서노), 마한 태기왕


백제 위례성 우물(소서노)

백제건국 초기, 형인 비류와 헤어져 산 위에 나라를 세운 온조는 동쪽으로 내려가서는 백성들에게 곡식을 키우는 방법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사냥하러 다녔으나, 밤에는 잠자리에 들어가면 새벽까지 일체 바깥에 몸을 나타내지를 않았다.


위례성 우물은 온조가 잠자는 움막의 바로 옆에 있었다. 밤이 되면 온조는 움막에서 나와서는 샘으로 들어간 후 용이 되어 북쪽으로 뚫린 한강으로 나갔다. 위례성 우물을 중심으로 땅속으로는 한강과 금강으로 통하는 강줄기가 있었다.


북쪽에서 떠나올 때 틀림없이 자기가 나라를 세우면 그들이 침범해 올 것을 예상했었다. 그래서 북쪽으로 올라와서 한강 변에 나와서는 북쪽 하늘을 살피고는, 적의 침범이 없을 것 같으면 곧장 물줄기를 타고 위례성 우물로 돌아왔다가 남쪽으로 내려가서는 금강 쪽으로 내려갔다.

온조는 매일 같이 이와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가 용이 되어 북쪽으로 남쪽으로 드나드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하루는 그날 저녁도 일찍 움막으로 들어온 온조는 평상시대로 용이 되어 북쪽으로 올라갔다. 위례성 우물로 들어가서 물줄기를 타고 땅속으로 한참 올라가는데, 평상시 깨끗한 물 냄새가 나면 맑은 물은 흙탕물로 변해 있었다.


백제 초기 국가들, 위례성[삼국시대 백제 위례성 우물(소서노) 전설] 백제 초기 국가들과 위례성 위치


틀림없이 한강 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급히 물줄기를 헤치고 올라가서는 살짝 얼굴을 내밀었을 때, 건너편 강변에 많은 군사가 말을 타고 건너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군사들이 쳐들어오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놀라게 하려고 파도를 일으키며 물살이 강하게 급류로 흐르게 하여, 그들이 돌아가게 하고는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온조가 북쪽 한강 변에서 용이 되어 물살을 헤치고 있을 때, 때마침 그의 어머니인 소서노가 큰아들 비류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작은아들 온조와 합작을 권하기 위해서 위례성에 왔다.

소서노가 위례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온조가 있는 움막에 안내를 받았으나 온조는 없었고 아무도 그의 거처를 몰랐다.


소서노는 즉각적으로 반란이 일어나서 자기 아들을 죽인 것으로 생각하고는 데리고 온 비류의 부하로 하여금 그들을 쳐부수게 하였다. 위례성 온조의 부하들은 비류가 이 나라를 쳐부수러 온 것으로 생각하고는 힘껏 싸워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까지 죽이고 말았다.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목조 우물[삼국시대 전설 백제 위례성 우물] 풍납토성에 발굴된 목조 우물


새벽녘 동이 틀 때 위례성 우물을 통해 우물 밖으로 나온 온조는 먼저 피비린내를 맡고는 옷을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와 보았다. 거기엔 많은 시체가 있었으며, 시체 가운데에는 자기 어머니의 시체 소서노도 있었다.


그는 차분하게 싸우게 된 동기를 듣고는, 자기 때문에 어머니 소서노가 죽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는 다시는 용이 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했다. 그리고 부하들로 하여금 돌을 날라오게 하고 위례성 우물에 돌을 던져서 아래쪽에 있는 북쪽과 남쪽으로 통하는 물줄기를 막아버렸다 한다.


온조는 그 후 사람으로서 임금이 되어 한강 변 광주 땅에서 다시 위례성을 세웠다고 하는데 위례산의 위례성 우물은 그 후부터는 흙탕물만 고인다고 한다.


비류 온조 소서노의 남하[삼국시대 전설 백제 위례성 우물] 비류 온조 소서노의 남하

삼한시대 마한 태기왕 이야기

삼한시대 마한의 마지막 왕 태기왕은 신라 초기의 왕 박혁거세에게 밀려 이곳 천하의 요새 덕고산(지금의 태기산)에 입산하였다.


태기산은 하부가 괴암석벽으로 되어있어 산에 오르기가 쉽지가 않았지만, 상부는 고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샘물이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장기체류가 쉽다. 이러한 장점을 이용하여 돌로 성을 쌓고 군대를 제정비하고 재기에 꿈을 키웠다.


반면 추적군은 구리봉(지금의 갑천면 소개지 앞산)에 진을 치고 적지에 척후병을 보내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척후병으로부터 중요한 정보가 전해졌다. 드디어 참모회의가 열리고 전투명령이 떨어졌다.


공격 명령은 수비가 약한 뒤를 우회하여 기습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추적군 참모 회의가 한참 열리고 있을 때, 태기왕 진영에서는 적군들의 군영에 별다른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자, 앞 경계병만 남기고 모두 잠자리에 들어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군사들의 피로에 지친 잠은 세상일을 잊은 채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모르고, 산채에는 적막감에 쌓여있었다.


태기왕 이야기[삼국시대 전설] 마한 태기왕과 신라


이때 추적군 현지 군영에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워놓고, 그 손에는 횃불을 들어 군사들의 이동이 없음을 위장하여 놓고 야행을 하여, 기습 공격이 시작되었다.


단잠에 빠져 있던 군영은 대적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쫓겨 패로의 길을 가야 했다. 태기왕은 대패를 거듭하면서 태기산성에서 약 50Km 떨어진 평창군 봉평면 멸운리에서 그 운명을 다했다.


군사들이 진을 치고 태기왕의 군사가 먼지와 피로 얼룩진 갑옷을 냇가에서 씻어 입었다 하여 갑천(甲川 : 지금의 갑천)면 지명이 유래되었다 한다.


급하게 쫓기다 왕의 말 지르매가 떨어졌다 하여 지르매제, 멸망한 곳을 멸운, 옥쇄를 빼앗긴 곳을 옥골 등 지명이 있으며, 공격 소식을 듣고 지원군이 오다가 패망 소식을 전해 듣고 한탄을 하였다 하여 한탄대(지금의 남터)라 불리며, 한탄하고 돌아가다 어두워진 골을 어두원골 등 태기산성을 기점으로 하여 많은 애환이 담긴 지명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고 다만 구전문화로 전하여 지고 있을 뿐이다.


삼국시대 전설 2개, 백제 위례성 우물(소서노), 마한 태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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