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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찬술 시기, 일문)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1. 6. 13:00

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찬술 시기, 일문)


찬술 시기

위진세어의 찬술 시기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지 배송지 주에서 간보干寶(?~336)와 손성孫盛(302~374)이 위진세어의 고사를 많이 채록하여 그들의 진서晉書를 지었다는 기록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진서는 간보의 진기晉紀와 손성의 진양추晉陽秋를 말한다. 진기는 동진 명제明帝 태녕太寧 3년(325)에 찬술되었고, 진양추는 동진 폐제廢帝 해서공海西公 태화太和 5년(370)에 찬술되었다. 따라서 위진세어는 진기가 찬술된 325년 이전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판단된다.

위세민魏世民은 현존하는 위진세어 일문의 기사記事 중에서 가장 늦은 것이 서진 말 회제懷帝, 민제愍帝 때이므로, 곽반이 서진 말에 진 황실을 따라 강남으로 건너간 후에 이 책을 지었으며 그 시기는 동진 초년(약 371년)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필자가 고찰한 바로는 위진세어의 일문 중 325년을 기준으로 시기적으로 가장 늦은 기사는 삼국지 배송지 주에 인용된 부선傅宣(생졸년 미상)과 그의 동생 부창傅暢(?~330)에 관한 것이다.


부창은 일찍이 후조後趙의 석륵石勒에게 포로로 잡혀가 대장군우사마大將軍右司馬에 중용되어 석륵의 신임을 받았는데, 석륵이 대장군, 대선우大單于, 영기주목領冀州牧으로서 조왕趙王에 즉위하여 정식으로 후조를 건국한 것은 동진 원제元帝 태흥太興 2년(319)이므로, 이 기사는 319년에서 325년 사이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필자는 위진세어의 찬술 시기를 일단 325년 이전으로 편년編年하고자 한다.


진양추의 저자 손성[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진양추의 저자 손성


일문

현존하는 위진세어 집일본은 이렇다.


원대 도종의陶宗儀의 설부設郛 본(11조)

명대 무명씨의 오조소설五朝小設 본(11조)

청대 황석黃奭의 자사구침子史鉤沈 본(11조)

민국 무명시의 오조소설대관五朝小設大觀 본(11조)

민국 오증기吳曾祺의 구소설舊小設 본(1조)


모두 절선본節選本으로 참고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


구소설본을 제외한 4종은 모두 설부본과 같다. 필자가 집록한 위진세어의 일문은 총 159조인데, 그중에서 춘추전국시대의 고사와 325년 이후의 고사 14조는 위진세어의 일문으로 간주하기 어려우므로 일단 제외하면 총 145조가 된다.

역대 전적 중에서 위진세어의 일문을 가장 많이 인용한 것은 삼국지 배송지 주로서, 총 92조가 수록되어 있다.


삼국지 주에 인용된 위진세어의 일문은 위진세어의 찬술 시기와 가장 가깝고, 또한 후대 전적에서 종종 착오를 일으키는 세설과의 혼동 가능성도 전혀 없으므로, 현존하는 일문 중 가장 믿을 만하다. (유의경 - 403~444년, 진수 - 233~297년. 진수는 세설신어를 봤을 리 없음)


한편 청대 섭덕휘葉德輝는 세설신어 일문을 집록 하면서 세설신어 일문의 집록 출처가 세어와 혼동된 문제에 대해 그 서문의 모두冒頭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설신어의 일문 가운데 당송인唐宋人의 유서類書에 인용되어 보이는 것은 종종 위진세어와 서로 섞여 있다.


생각건대, 세어는 진대의 곽반이 지은 것으로 수서 경적지 잡사류에 보이는데, 유효표가 주를 달 때 역시 그것을 인용하여 이동異同을 증명했으니 임천(臨川 : 유의경)의 이 책은 어쩌면 바로 그것을 남복으로 했을 것이다."


진기의 저자 간보[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진기의 저자 간보


그 밑에 다음과 같은 자주自注를 달아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태평어람 권353에 인용된 삼공령병三公領兵 조의 주에서 또 다른 출처는 곽반의 세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송대인이 보았던 세설과 세어가 본래 서로 섞여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서에서 같은 고사를 양쪽에서 인용할 때 여기서는 세설이라 하고 저기서는 세어라고 한 것은 자형이 비슷해서 생긴 오류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당송대의 유서에서 고사를 인용할 때 그 인용출처를 세설세어로 혼재混載한 것은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본래 두 책의 고사가 서로 중복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섭덕휘의 주장이다.


세설은 전대前代의 전적, 특히 배계裵啓의 어림語林이나 곽징지郭澄之의 곽자郭子와 같은 지인소설에서 상당한 분량의 고사를 채록한 것으로 보아, 어림, 곽자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세어에서도 당연히 고사를 채록했을 것이다.

필자가 집록한 145조의 세어 일문 중에서 11조가 세설에 채록되어 있고, 유효표 주에는 세어의 일문 15조가 인용되어 있다.


따라서 세설과 세어의 일부 고사가 중복되어 있었다는 섭덕휘의 주장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금본 세설신어에 수록되어 있지 않는 인물으로 그 인용 출처가 세어와 혼동된 고사는 세설신어의 일문이라기보다는 위진세어의 일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출처 : 위진세어, 김장환, 학고방, 14p~16p


위진세어가 완성된 연도는 325년으로 추론됩니다. 원나라 시기에도 위진세어가 있었다는 점을 비춰볼 때, 김장환 교수님의 추론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고찰한 바로는 위진세어의 일문 중 325년을 기준으로 시기적으로 가장 늦은 기사는 삼국지 배송지 주에 인용된 부선傅宣(생졸년 미상)과 그의 동생 부창傅暢(?~330)에 관한 것이다.


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찬술 시기, 일문)[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부창은 일찍이 후조後趙의 석륵石勒에게 포로로 잡혀가 대장군우사마大將軍右司馬에 중용되어 석륵의 신임을 받았다.


석륵이 대장군, 대선우大單于, 영기주목領冀州牧으로서 조왕趙王에 즉위하여 정식으로 후조를 건국한 것은 동진 원제元帝 태흥太興 2년(319)이므로, 이 기사는 319년에서 325년 사이의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으로선 일문이 더 발견되지 않는 이상에야 이 이상의 추론은 힘든 상황입니다.


어찌 됐건, 이 책을 읽어보면 분명히 겹치는 일화가 있긴 있습니다. 그리고 세설신어와 같은 맥락의 책이라는 것도 알 수 있고요. 삼국지에 관심 많은 분이 읽기엔 괜찮은 책입니다. 근데 18,000원이란 가격은 부담스럽네요.


ps. 진양추晉陽秋 - 양추陽秋는 춘추春秋와 같은 것으로 역사서를 뜻함.


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찬술 시기, 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