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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방통은 오나라(손오) 유명인사, 명사로 유명했던 방사원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2. 9. 07:58

삼국지 방통은 오나라(손오) 유명인사, 명사로 유명했던 방사원


방사원龐士元(삼국지 방통, 龐統)이 오나라吳 땅에 가자 손오 땅 사람들은 모두 그를 친구로 삼았다. (1) 삼국지 방통은 육적陸績 (2), 고소顧劭, 전종全琮 (3) 등을 만났는데 이 사람들을 평하여 말했다.


"육자陸子(육적)는 이른바 둔한 말이지만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쓰임새가 있다. 손오의 고자顧子(고소)는 이른바 둔한 소이지만 무거운 짐을 싣고 멀리 갈 수 있다는 쓰임새가 있다."


오나라의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의 비평에 따른다면 육씨 쪽이 낫다는 것인가요?" (손오의 일부를 대상으로 나눈 이야기)

삼국지 방통은 말했다.


"둔한 말은 비록 발은 좀 빠르다 해도 한 사람밖에 실어 나를 수 없소. 둔한 소는 하루에 백 리 밖에 못 가지만 실어 나를 수 있는 짐은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오."


오나라 땅의 사람들은 누구도 반론하지 못했다.


그는 또 말했다.


"전자全子(손오 전종)가 명성을 좋아하는 것은 여남汝南의 번자소樊子昭와 비슷하다. (4)


허자장 허소 방통 삼국지 명사[삼국시대 유명인사, 명사로 이름 날리던 방사원]


고소는 일찍이 방사원(삼국지 방통)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방사원에게 물었다.


"그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는 평판이던데 나와 그대를 비교한다면 어느 쪽이 낫다고 생각하오?"


"세속世俗을 교화시키는 때의 움직임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라면 내가 그대에 따르지 못하오. (5) 그러나 왕자王者, 패자覇者의 유책遺策을 논하고 화복禍福이 생겨나는 요소를 꿰뚫어보는 점에서는 내가 다소 나을 것이외다."


고소도 그 이야기를 이해했다. (6)

유효표의 주.


(1) 촉지蜀志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손오의 주유가 남군南郡의 태수였을 때, 삼국지 방통(방사원)은 군의 공조功曹였다. 주유가 죽자 방사원은 그 시신을 옮기어 오나라 땅으로 갔다. 오 땅의 많은 사람은 방사원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방사원이 서쪽으로 돌아갈 때 창문閶門(하늘로 닿는 문이란 의미로 많은 왕조에서 부귀와 흥성함을 바라며 자주 지었던 이름)에 모여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2) 문사전文士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손오의 육적은 자가 공기公紀인데 어렸을 때부터 재예才藝(재능과 기예)와 술수가 뛰어났으며 박학다식했다. 방사원, 삼국지 방통은 육적보다 나이가 많았고, 함께 교제를 맺었다. 벼슬을 하여 울림태수鬱林太守에 이르렀다. 자신이 죽는 날을 알았고 32세에 세상을 떠났다.'


삼국지 방통 방사원 손오[삼국시대 유명인사, 명사로 이름 날리던 방사원] 신삼국지 방사원


(3) 환제環濟의 오기吳紀(손오, 오나라 역사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전종의 자는 자황子黃이며 오군吳郡 전당錢塘 사람이다. 덕행이 있었으며 의기義氣가 넘쳤는데 대사마大司馬가 되었다.'


(4) 장제蔣濟의 만기론萬機論에 이런 말이 있다. '허자장許子將(허소許劭)은 인물 평가를 불공평하게 하여 번자소變子昭를 발탁하는 한편, 허문휴許文休(허정許靖)를 물리쳤다.


남군 호북성 공안읍 세설신어[삼국시대 유명인사, 명사로 이름 날리던 방사원] 중국 삼국지 허자장, 허소


유엽劉曄이 이 의견에 반론을 폈다.


"번자소는 상인商人(장사하는 사람)에서 발탁되었는데 나이 70이 되자 물러나서 조용히 쉴 수 있었고 나아가더라도 구차하게 다투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대꾸했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란 삼국시대 유명인사였던 조조의 부하 장제를 말함)

"번자소는 진실로 어려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용모가 매우 고결했지만 이야기할 때면 입을 내밀고 볼을 불룩하게 하여 말을 마구 내뱉는 것으로 볼 때 진실로 허문휴의 적수가 아니외다.'"


(5) 오지吳志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고소는 인물 평하기를 좋아했는데 그 대상은 주군州郡의 현인으로부터 천하의 명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길을 오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어떤 사람은 평을 해주고 가기도 하고 혹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가 헤어지기도 하여 그의 품평에 대한 명성은 원근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이런 고소가 삼국지 방통과 친했음)


(6) 오록吳錄(손오, 오나라 역사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고소는 그의 말을 이해하고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주해


환서還西 - 당시 남군南郡 땅은 호북성 공안읍公安邑에 있었다. 오나라吳 땅에서 본다면 서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


삼국지 방통은 오나라(손오) 유명인사, 명사로 유명했던 방사원[삼국시대 유명인사, 명사로 이름 날리던 방사원] 중국 역사, 남군 호북성 공안읍


의복倚伏 - 노자 제58장에 '화禍 속에 복福이 깃들어 있고, 복 속에 화가 숨겨져 있다(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란 말이 있는데 화와 복은 상인相因(뒤의 일은 앞의 일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의미)의 관계로 생긴다는 것.


서기庶幾 - 현인賢人


세설신어 中, 품조品藻(인물을 비교하고 우열을 가림으로써 품평을 가하는 일)편 2, 3화

세설신어 中, 안길환, 명문당


삼국지 중국 역사 방사원 손오 오나라[삼국시대 유명인사, 명사로 이름 날리던 방사원] 방사원과 제갈량, 봉추와 와룡


세설신어를 보면 과연 삼국지연의에서처럼 삼국지 방통이 무명이었나 의심이 듭니다. 아무리 봐도 방통은 무명이 아니었습니다. 사마휘가 그랬던 것처럼, 방통이 건 제갈량이 건 유명 인사였습니다.


삼국지 방통은 오나라(손오) 유명인사, 명사로 유명했던 방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