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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 27

일본 천지천황이 참여한 백제 부흥전쟁 1

출처 - 재미로 읽는 일본 역사의 비밀, 이우각 38대 천지천황의 백제부흥전 참전쟁 한반도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던 백제는 660년 여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 여성천황인 제37대 제명천황(齊明天皇, 사이메이천황 재위 655.1-661.7) 말기에 있었던 국제적 대변란이었다. 34대 서명천황(舒明天皇, 죠메이천황 재위 629.1-641.10) 치세기간에 일본에 와있던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660;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병사)의 왕자 부여풍은 그동안 36대 효덕천황의 치세기간에 전개된 대화개신大化改新의 급한 물결을 가까이서 체험하고 있었다. 천황주권의 회복을 위해 일대 개혁을 단행하는 대화개신의 주역들을 보며 느낀 바가 참으로 많았다. 한데 여성천황인 제명천황 치세 밑에 참담한 ..

동아시아 역사 2017.04.19

고궁박물관,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대한제국 대한제국 1897년 조선 제27대 왕 고종은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경운궁慶運宮(현 덕수궁)을 제국의 궁궐로 삼고 황제국에 걸맞은 부국강병한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과 정책을 추진하였다. 행정, 군사, 재정 등 각 분야의 국가운영체제를 개편하였고 도시를 새롭게 정비하였다. 전기, 전차, 철도 등 서구 근대 시설을 도입하고, 시민 공원도 조성하는 등 근대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궁궐 내에는 전통 건축과 함께 서양식 건물을 건립하고 서양문화를 받아들여 황궁으로의 위엄을 더하면서 근대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대한제국은 한일 강제병합으로 인해 그 역사가 13년밖에 지속되지 못했지만, 우리 역사 최초의 근대국가이자 황제국이었다는 점에서 짧지만 큰 발자취를 ..

동아시아 역사 2017.04.18

윤관 - 영광을 위해 오랜 시간 인내했던 인물 3

출처 - 인물로 보는 고려사, 송은명 그러나 여진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듬해인 예종 3년(1108) 1월, 윤관은 오연총과 함께 정병 8천 명을 이끌고 가한촌 좁은 길을 지나다가 매복해 있던 여진족의 기습을 받았다. 미처 손 쓸 겨를도 없이 윤관을 비롯한 고려군은 포위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연총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윤관이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병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척준경이 순식간에 여진족 10여 명을 해치웠다. 곧이어 최홍정과 이관직이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고, 윤관은 이들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해 영주성으로 돌아올 수 있다. 윤관이 영주성에 머물고 있을 때 여진족 2만 명이 또다시 공격해 왔다. 이때 윤관은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어서 도저히 대적할 ..

동아시아 역사 2017.04.17

윤관 - 영광을 위해 오랜 시간 인내했던 인물 2

출처 - 인물로 보는 고려사, 송은명 숙종은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그해(1104년) 12월 전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별무반이라는 특수부대를 설치하여 여진 정벌을 위한 만반의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별무반은 기병 중심의 신기군, 보병 중심의 신보군, 승병 중심의 항마군으로 편성되었는데, 말을 가진 사람은 기병인 신기군에 속했고, 보병인 신보군은 20세 이상으로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제외한 말이 없는 사람으로 조직되었다. 항마군은 사원에 예속된 하급 승려들을 징발하여 조직했다. 이듬해 1105년, 윤관이 태자소보 판상서병부사 한림원사에 올라 한창 군사훈련에 열중하고 있을 때, 숙종이 재위 10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숙종은 자신이 강력하게 추진해 왔던 여진 정벌과 남경 천도의 꿈을 이루지 못한..

동아시아 역사 2017.04.16

윤관 - 영광을 위해 오랜 시간 인내했던 인물 1

출처 - 인물로 보는 고려사, 송은명 고려 중기의 문신 윤관은 여진을 정벌하여 9성을 축조한 장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전전하다 숙종의 즉위 사실을 알리기 위해 요나라에 파견되면서부터 신임을 얻어 요직에 발탁되었다. 그 후 여진 정벌에 나섰다가 패한 뒤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하여 동북 지방에 쳐들어와 약탈과 방화를 일삼던 여진을 정벌했다. 그러나 동북 9성을 여진에게 반환하는 과정에서 패장이라는 억울한 모함을 받고 관직과 공신 작호를 빼앗긴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윤관은 무장으로서 잘 알려졌지만,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학자로, "장군이 됨에 이르러 진중에 있으면서도 항상 오경五經을 지니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학문에 열중했던 문신이기도 하다. (..

동아시아 역사 2017.04.15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 주요 인물 2

출처 - 재미로 읽는 일본역사의 비밀, 이우각, 한림 구로다 나가마사 (黒田長政, くろだ ながまさ, 1568-1622)구로다 나가마사는 지금의 오오이다겐에 있는 나가죠오의 성주였다. 전국시대의 무장 구로다 요시다가의 아들이다. (출처 : 万历援朝战争始末(二十七)) 임진왜란 때는 1만 2천 명을 이끌고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평양성에 입성했다. 그 후 황해도에 주둔했는데, 곧 이정암이 지휘하는 의병에게 패전하여 서울로 퇴각했다. 다시 서울에서 퇴각하여 양산시 기장면 해안가에 견고한 왜성을 축성한 후 머물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다. 정유재란 때는 우군으로 황석산성 전투에 참전했다. 북상하다 충청도 직산에서 조선, 명나라 연합군을 만나자 싸우지 않고 퇴각하여 기장 왜성에 들어갔다. 구로다 가문의 문서보관소인 슈게..

동아시아 역사 2017.04.14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 주요 인물 1

출처 - 재미로 읽는 일본역사의 비밀, 이우각, 한림 가토 기요마사 (加藤清正, かとう きよまさ, 1562-1611) 가토 기요마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아이지겐 나카무라에서 태어났다. (출처 : 人人小站~浮世绘ㄨ日本战国) 그는 히데요시 어머니의 4촌 여동생 아들이다. 3살 때 아버지가 죽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 히데요시의 부하가 되어 전공을 많이 세우고 구마모도의 구마모도죠오 성주가 되었다. 인접해있는 우도성의 성주 고니시 유키나가와는 이해관계가 얽혀 사이가 나빴다. 히데요시 사후 세기가하라의 싸움에서 도쿠가와 측에 가담하여 승리했다. 도쿠가와 측에 반대하다 참수당한 고니시의 영토 우도를 빼앗아 구마모도의 영주가 된 뒤 현재의 구마모도죠오를 축성했다. 현재는 신격화되어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다...

동아시아 역사 2017.04.13

세설신어 감상, 사학과 학생의 리포트 (펌)

출처 - 중국문학.com, 중국 시의 이해 1. 세설신어(世說新語) 세설신어는 남조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것으로 전체 36편에 걸쳐서 총 1,130조의 고사가 실려 있다. 주로 동한東漢 말에서 동진東晉 말까지 약 200년간 실존했던 제왕과 고관 귀족을 비롯한 문인, 학자, 현자, 은자, 화상, 부녀자 등 700여 명의 언행과 일화를 수록했다. 그 내용은 당시 명사들의 도덕 수양이나 학술 사상과 문학 관념, 재능, 품성과 개성, 일상생활 및 인간관계 등 철저한 ‘인사人事’를 기록하고 지괴적志怪的인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지인 소설이 갖추어야 할 범주를 제시하고 있다. 1) 세설신어의 내용 1. 덕행德行 - 충의, 효도, 청렴, 인애 등 전통적인 유가도덕에 관한 일을 기록. 2. 언어言語 - 당시 청담..

동아시아 역사 2017.04.12

광개토대왕의 왜구 격퇴, 선비 정복 - 조선상고사

광개토대왕의 왜구倭寇 격퇴 왜(倭)는 일본의 본이름이니, 지금 일본이 왜와 일본을 구분하여 왜는 북해도(北海道)의 아이누 족이요, 일본은 대화족(大和族)이라 한다. 그러나 일본음에 화(和)ㆍ(倭)가 같으니 일본이 곧 왜임이 분명한데 저들이 근세에 와서 조선사나 지나사에 쓰인 ‘왜’가 너무 문화 없는 흉포한 야만족임을 부끄럽게 여겨 드디어 화(和)란 명사를 지어냈다. (출처 : 吉林旅行豆腐账之——集安) 백제 건국 이후까지도 왜가 어리석고 무지하여, 일본삼도(日本三島 : 일본의 국토를 이룬 세 섬, 곧 규슈本州ㆍ시코쿠四國ㆍ규주九州)에서 고기 잡고 사냥으로 생활할 뿐 아무런 문화가 없었는데, 백제의 고이왕(古爾王)이 그들을 가르쳐 인도해서 봉직(縫織)과 농작(農作)과 그 밖의 백공(百工)의 기예를 가르치고 박..

동아시아 역사 2017.04.11

신라의 교역 목록-4 [삼국사기 본기, 문성왕에서 경순왕까지]

☆ 문성왕文聖王 851(13) 당 - 불경佛經, 부처의 치아佛牙, 당나라에 있던 아찬 원홍이 가지고 귀국 (출처 : 佛牙何其多) ☆ 헌안왕憲安王☆ 경문왕景文王 86(22) 당 - 토산물方物865(5) 당- 비단 1천 필錦綵, 문건 한 통誥, 황제의 신임표 한 벌節, 비단 5백 필錦綵, 옷 두 벌衣, 금은 그릇 7개金銀器, 당 의종이 경문왕에게 내려줌865(5) 당 - 비단 50필錦綵, 옷 한 벌衣, 은그릇 두 개銀器, 왕비에게 내려줌865(5) 당 - 비단 40필錦綵, 옷 한 벌衣, 은그릇 한 개銀器, 왕태자에게 내려줌865(5) 당 - 비단 30필錦綵, 옷 한 벌衣, 은그릇 한 개銀器, 대재상에게 내려줌865(5) 당 - 비단 20필錦綵, 옷 한 벌衣, 은그릇 한 개銀器, 다음 재상에게 내려줌 869(..

동아시아 역사 201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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