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 13

신라전 국내7 837~935 [양순, 염장, 위흔, 정강왕, 최치원 등]

양순良順837/6, 신무왕神武王 김우징金祐徵에게 투항함, 본기847, 흥종興宗과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 당함, 본기 염장閻長장변張弁정년鄭年,連낙금駱金장건영張建榮이순행李順行838/12, 군사를 이끌고 철야현鐵治縣에 이르러 기병 3천으로 왕의 군대와 싸워 승리함, 본기 김민주金敏周838/12, 김양金陽의 군대에 맞서서 싸우지만 패배함, 본기: 무주武州의 철야현鐵治縣 대흔大昕839/1.19, 김양金陽의 군대에 맞서서 싸우지만 패배함, 본기849, 김식金式과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 당함, 본기: 달벌達伐 윤린允璘의훈嶷勛839/1.19, 김양金陽의 군대에 맞서서 싸우지만 패배함, 본기: 달벌達伐 경의율사瓊儀律師840, 지증국사智證國師에게 구족계를 내림, 고승전 홍필弘弼841, 반역을 도모하다가 일이 발각되자 섬으..

동아시아 역사 2017.03.31

신라전 국내5 780~822 [향성, 염철, 김제옹, 김헌정, 김웅원 등]

지정志貞780/2, 어지러운 국내 상황을 틈타 반란을 일으킴. 진압 당하지만 이 난리에 왕과 왕비가 사망함, 본기 김주원金周元785, 비가 내려 북천北川에 물이 넘치는 바람에 왕이 되질 못함, 본기: 북천北川, 명주溟州 모초毛肖세강世强789, 자옥子玉은 당唐에서 학생이 된적이 있기에 지방 장관이 될 수 있다 했음. 왕은 세강世强의 말을 따름, 본기: 양근현楊根縣 김인겸金仁謙791, 태자太子였으나 791년에 사망. 시호는 혜충惠忠, 본기 제공悌恭791, 반역하다 처형됨, 본기 향성向省791, 아내가 한꺼번에 아들 셋을 낳음, 본기 충렴忠廉792, 792년에 사망함, 본기 김의영金義英794, 태자太子였으나 794년에 사망. 시호는 헌평憲平, 본기 석남오石南烏797, 아내가 한번에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음,..

동아시아 역사 2017.03.29

고구려 초기 왕계의 불합리성, [왕가 혈연 복원, 맺음말]

ⅴ. 왕가 혈연 복원 - 삼국사기에 나온 표면적인 혈연 관계 아버지 어머니 자식 해모수 유화 동명성왕 동명성왕 예씨 유리명왕 유리명왕 송양의 딸 대무신왕 도절 해명 여진 민중왕 재사 대무신왕 갈사국 왕녀 호동 모본왕 재사 부여 태후 대조대왕 차대왕 신대왕 신대왕 고국천왕 발기 산상왕 계수 -복원한 왕가 혈연- 아버지어머니자식 해모수 유화 동명성왕 동명성왕 예씨 유리명왕 유리명왕 송양의 딸 대무신왕 도절 해명 여진 재사 여진 대무신왕 민중왕 대무신왕 갈사국 왕녀 호동 모본왕 재사 부여 태후 대조대왕 대조대왕 차대왕 신대왕 고국천왕 고국천왕 발기 계수 차대왕 아들 산상왕 ⅴ. 탈락된 인물들에 대한 소고 고구려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구려 왕은 왕 중의 왕인 태왕이고 그 시조인 추모왕은 바로 하늘의 직계 후손이다..

동아시아 역사 2017.03.28

조선 시대 천문과 과학 '국립고궁박물관'

경복궁 바로 옆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보면 천문과 과학이란 전시실이 있습니다. 이곳은 다른 전시실과는 다르게 꽤 자세한 기술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천문과 과학이 주제잖습니까... 전시실의 유물 자체는 적은데 기술적인 글이 많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천문이나 우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재미있는 기억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조선 시대 천문학 고대부터 제왕의 역할 중 하나는 하늘에 나타나는 천문 현상을 관측하여 그 운행을 알아보고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알아내어 때를 살피는 것이었다. 조선의 왕들도 태양과 달, 별과 행성의 운행과 같은 천문 현상을 관측하여 백성이 농사를 짓는 데 도움을 주고, 하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는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천문 ..

동아시아 역사 2017.03.26

사극 속 오류 3가지 - 주리, 칼, 사약

기축옥사 당시 이발의 노모와 아들이 고문으로 죽임을 당할 정도였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발의 아들은 압슬이라는 고문을 겪다가 죽고, 노모는 매를 맞다가 죽는다. 압슬은 바닥에 사기 조각이나 자갈을 깔고 무릎을 꿇게 한다. 그 위에 널을 올려놓고 널 위에 사람이 올라가 짓밟아 고통을 주는 것이다. 조선 시대 대역죄인들에게 가끔 썼던 고문이다. 곤장은 조선 후기에 출현한다. 곤장 세 가지가 있는데 조선 정조 때 관리들의 형장 남용을 막기 위해 형벌도구 규격을 통일한다. 중곤은 제일 길며 길이는 181cm 가량 되며 사형죄에 해당하는 자에게만 사용한다. 대곤은 170cm가량 되며, 소곤은 160cm가 조금 안 된다. 이렇게 3가지 곤장이 존재했다. 곤장은 상당히 가혹한 매로, 조선 말기 선교사들의 기록에 ..

동아시아 역사 2017.03.19

실패한 쿠데타, 묘청의 서경 천도 주장

출처 - 인물로 보는 고려사, 송은명 혁명의 실패와 함께 사라진 자주국의 꿈 서경 천도파에 대한 반격은 인종의 장인이자 개경 수호 세력인 동지추밀원사 임원애로부터 시작되었다. 임원애는 인종 10년(1132) 8월, 상소를 올렸다. "묘청과 백수한 등은 간사한 괴와 해괴한 말로써 뭇사람의 마음을 속이고 미혹하는데, 한두 명의 대신들이 그들의 말을 깊이 믿어 위로 임금의 눈과 귀를 흐리니 장치 큰 환난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묘청 등을 저자에 내다 목을 베어 화의 싹을 끊도록 하소서." 하지만 인종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임원애의 상소가 있은 뒤 묘청은 인종에게 아뢰었다. "성상께서는 대화궁에 거처하셔야 마땅한데, 그렇게 하지 못하실 것 같으면 근신을 보내 옥좌를 설치하고 공경해 받들기를 성..

동아시아 역사 2017.03.19

항우가 오강을 건너지 않고 멸망한 원인, 조선 이가환의 분석

※ 우선 오강에 대한 설명 오강烏江은 지금 중국의 안휘성安徽省 화현和縣 동북 쪽에 있는 강이다. 초한楚漢 시 때 항우羽가 일찍이 서초패왕西楚覇王이 되어 천하를 호령했으나, 뒤에 해하垓下에서 한군漢軍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곤경에 처하자, 밤중에 일어나 장중帳中에서 우미인虞美人과 함께 술을 마시며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는데, 때가 이롭지 못하여 오추마가 가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가지 않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우여 우여 너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 何]" 라고 노래하였다. 그리고는 오강烏江을 건너 그의 근거지인 강동江東으로 건너가 재기하려 하는데,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가, "강동 江東이 비록 작다고는 하나 땅이 ..

동아시아 역사 2017.03.15

신라의 교역 목록-3 [삼국사기 본기, 효성왕에서 신무왕까지]

☆ 효성왕孝成王 737(1) 당 - 토산물方物738(2) 당 - 금金, 보물寶, 약물藥物, 성덕왕 사후, 당에서 조문 온 형도에게 내려줌738(2) 당 -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형도가 바침739(3) 당 - 황금 30냥黃金, 베 50필布, 인삼 100근人蔘, 형도에게 내려줌739(3) 국내 완산주 - 흰 까치白鵲 (출처 ; 白鹊) ☆ 경덕왕景德王 743(2 당 - 효경孝經, 초록빛 웃옷綠袍, 은대銀帶, 왕의 아우가 신년하례를 하니 선물로 줌744(3 당 - 토산물方物, 말馬746(5 당 - 토산물方物747(6 당 - 토산물方物 753(12) 국내 무진주 - 흰 꿩白雉754(13) 국내 대영랑 - 흰 여우白狐, 대영랑은 이 공으로 남변 제일의 직위를 얻음758(17) 당 - 조공朝貢762(21) 당 -..

동아시아 역사 2017.03.13

원나라 신분 차별 속 문벌 주의

문벌 주의 강렬한 근각根脚 = 세습관계 몽골인, 색목인, 한인, 남인의 4분류는 대등한 입장에서 병렬된 단순한 평면적 구분이 아니라 그 각각이 공적인 국가 생활, 사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위에서의 각종 불평등한 자격을 부수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살펴보면 그것은 일종의 신분제도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몽고, 색목인은 모두 고위 고관에 있고 한인, 남인은 항상 소리小吏, 군졸軍卒이었던 것도 아니므로, 이 신분규정을 정말로 신분제도이도록 만드는 별개의 요인을 찾아내는 것이 새삼 필요해진다. 이 요인에 해당하는 것이 근각관계根脚關係이다. 근각이란 유서由緖란 뜻으로 구체적으로는 몽골 조정과의 사이에 결합한 세습관계를 가리킨다.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세습관계, 다시 말해 군..

동아시아 역사 2017.03.11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 그리고 한사군

한나라와 고조선, 그리고 한사군 연나라의 태자 단丹의 군사가 진군秦에게 쫓겨 요하 근처에서 어지럽게 흩어진 뒤에 위만은 이들 망명한 백성들을 거두어 해동海東에 집결시켰다. 진번을 병합하고 국경을 항복하면서 한나라의 외신국外臣國이 되었다. 요동 변경 밖 동북쪽으로 고조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나라 무왕 때 은나라 왕족인 기자를 조선의 군주로 삼아 기자조선이라 불렀다. 기자조선은 사십일 대까지 전해졌을 때 연나라 사람 위만이 그곳으로 쳐들어가 조선왕 기준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어 왕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출처 : 箕子朝鲜) 일찍이 진秦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킨 뒤로는 조선을 요동 국경 밖의 땅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한나라가 일어난 뒤에도 조선은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렵다 하여 요동에 있던 요새를 새로 쌓..

동아시아 역사 2017.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