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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 19

회사채와 CP(기업어음) 차이, 많이 다른 두 종류 채권

회사채와 CP(기업어음) 차이, 많이 다른 두 종류 채권 회사채와 CP는 모두 채권의 일종이다. 채권은 돈이 필요한 주체가 돈을 빌리면서 발행하는 증서다. 국가가 발행하면 국채, 은행이 발행하면 은행채, 회사가 발행하면 회사채다. 반면 기업어음는 어음 형식의 단기 채권을 말한다. 그런데 회사채는 보통 3년 만기의 중장기 채권이 주를 이루지만, CP는 단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년 미만으로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발행과 유통 과정도 다른데, 회사채는 자본시장통합법의 적용을 받지만, 기업어음는 어음법의 구속을 받는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적용을 받는 회사채는 발행 절차가 복잡하다. 이사회의 결의가 필요하고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 다음 회사채를 주간하는 증권사들이 발행에 앞서 기관들을 대..

생활정보 2017.11.27

조선 명필, 조속, 서명균, 정조대왕, 박문수 등 (대전역사박물관)

조선 명필, 조속, 서명균, 정조대왕, 박문수 등 (대전역사박물관) 조선명필조선 시대에는 문신, 학자 중에 명필이 많았고 사자관寫字官 등의 직업서예가도 많았습니다.그중 조선왕조 초기, 중기, 후기, 말기의 서예를 이끈 명필로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1418~1453), 석봉韓濩 한호石峯(1543~1605), 백하白下 윤순尹淳(1680~1741),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를 들 수 있습니다. 이밖에 성수침成守琛, 김구金救,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양사언楊士彦, 황기로黃耆老, 김현성金玄成, 조속趙涑, 허목許穆, 송준길宋浚吉, 이수장李壽長, 이광사李匡師, 강세황姜世晃, 조윤형曺允亨, 유한지兪漢芝, 신위申緯, 이삼만李三晩 등이 뛰어난 기량과 개성으로 서예사를 빛냈습니다. 이들의 필적을 통하여..

동아시아 역사 2017.11.25

수원 역사 인물, 근대 위인들 (수원역사박물관)

수원 역사 인물, 근대 위인들 (수원역사박물관) 김노적, 1895~1963, 교육 및 독립운동김몌례, 생몰년 미상, 교육자김사라, 1874~?, 종교인 (수원 최초의 전도부인)김세환, 1889~1945, 교육 및 독립운동김향화, 1897~?, 독립운동 (기생) 나중석, 1878~1970, 지역유지 박충애, 1897~1978, 교육자 변기재, 1903~?, 사회운동가 송세호, 1881~?, 대한제국기 무관, 교육자 염석주, 1895~1944, 농촌계몽운동 윤교충, 1903~?, 동착, 천도교인 이그레이스, 1883~?, 수원 최초의 여의사이하영, 1870~1952, 교육 및 종교인이현경, 1899~?, 사회운동가 임면수, 1874~1930, 교육 및 독립운동 홍가륵, 1913~?, 독립운동홍득순, 생몰년 ..

동아시아 역사 2017.11.21

[수원역사] 수원역과 수원시 변화모습 (정월 나혜석 유럽)

[수원역사] 수원역과 수원시 변화모습 (정월 나혜석 유럽) 다양한 삶의 교차점 수원역 수원역은 경부선이 개통된 1905년 이후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의 꿈을 꾸며 서울로 통학했던 학생들을 맞이하였고, 광복 이후 한국 전쟁의 포화 속에서 역사驛舍가 파괴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산업화를 이끌던 우리 부모님들의 출퇴근길을 위로해주었으며, 민주화 항쟁이 뜨겁던 1980년대에는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함성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각각의 사연을 지닌 채 수원역을 거쳐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수원 사람들 삶의 교차점으로서 100여년 동안 변함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원역의 역사歷史를 되돌아봅니다. 수원역에서 바라..

동아시아 역사 2017.11.20

60년대 수원 거리, 양장점, 중앙극장, 화춘옥 [수원역사박물관]

60년대 수원 거리, 양장점, 중앙극장, 화춘옥 [수원역사박물관] 예쁘다 양장점 1960년대 초반 영동시장 안에 세워진 양장점이다. 주인 박창원씨는 남문의 양재학원을 졸업하고 천덕상회 옆 단층건물을 세내어 장사를 시작하였다. 그 당시 옷은 집 또는 양장점에서 직접 지어 입었던 때로 영업이 번창하였다. 우리말 이름 '예쁘다'라는 상호가 재미있어 누구나 쉽게 기억하였다. 소화국민학교와 영복여고 교복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며, 1980년대 없어졌다. 중앙극장 625전쟁 직후인 1953년 9월 10일 남문 옆에서 개관하였다. 일제시대 문을 연 수원극장과 더불어 수원을 대표한 극장이었다. 수원에서 가장 번화한 남문 옆에 있어 친구들과 연인들이 만나는 장소였다. 개봉관이었던 중앙극장은 2004년 문을 닫았다. 화..

동아시아 역사 2017.11.18

우리나라 한국 60년대 수원 풍경, 수원역사박물관

우리나라 한국 60년대 수원 풍경, 수원역사박물관 대통령 후보 강하고 담대한 사람 리승만착하고 진실한 사람 리기봉 환경 포스터쥐를 살려두면, 사람은 굶는다, 쥐를 잡아 없애자 삐라 포스터불온삐라를 보면 즉시 신고합시다! 60년대 공중전화 1. 중앙극장2. 예쁘다 양장점3. 공중목욕탕4. 화춘옥5. 천덕상회 헌법 개정안 게시 국민투표법 제23조의 규정에 의하여 1969년 8월 9일에 공고되고 1969년 9월 14일에 국회의 의설을 거친 헌법개정안을 다음과 같이 게시한다. 1969년 9월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우리나라 한국 60년대 수원 풍경, 수원역사박물관

동아시아 역사 2017.11.17

수원문화재, 그림과 글들, 수원화성박물관

수원문화재, 그림과 글들, 수원화성박물관 수원의 선비문화조선시대 수원은 정조와 수원화성으로 대표되지만, 그 이전부터 충과 효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서울과 평양 다음으로 무과武科 급제가가 많았던 수원은 상무尙武 전통과 함께 문무文武를 겸비한 유교 문화가 꽃피었다. 수원 땅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선비들은 유력한 명문 벌열閥閱 가문은 아니지만 수많은 동족 마을을 형성하면서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김시진 유언金始辰遺言, 1667년김시진(1618~1667)이 아들 양신에게 써 준 유언. 김시진은 한성좌윤, 형조, 예조, 호조의 판서와 수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 유언은 그가 죽은 50세의 3월과 4월 두 번에 걸쳐 작성된 것으로, 3월의 기록에는 하나뿐인 적자 양신이 공부를 게을리하여 가문의 유업遺業이 끊..

동아시아 역사 2017.11.16

유목생활 대신 농경생활을 택한 탁발선비 [북위]

유목생활 대신 농경생활을 택한 탁발선비 [북위] 사실 북위는 등국 초(386~) 부락 해체 때 시동위편민始同爲編民또는 개동편호皆同編戶라는 기록은 곧 탁발선비족이 지난 시절의 유목생활을 버리고 부족 조직을 해체하여 농경민화 된 편호로 개편(농경생활은 곧 한화漢化를 의미)되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인 것 같다. 왜냐하면, 탁발선비가 세운 북위 태조가 후연 정벌을 마치고 대국 평성에 개선한 뒤 성곽을 축조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대군, 선무, 음관, 참합을 경계로 하는 기내를 획정했다. 그 주변의 사방사유四方四維(동, 서, 남, 북과 손巽=동남, 곤坤=서남, 진辰=동북, 건乾=서북)의 기외에는 선비계 유목민의 8부(8국)를 배치하여 각각 8부대인 1명을 임명하여 농상을 권장하고 군수품을 징발하였다. 또 명원제..

동아시아 역사 2017.11.14

한나라 낭관 등 관료 임용 정책 (향거리 선제와 당고)

한나라 낭관 등 관료 임용 정책 (향거리 선제와 당고) 한나라 시기의 관료 임용은 삼공三公, 구경九卿, 군의 태수太守, 현령縣令 등 녹봉 2백 석 이상의 관위는 황제가 그 임명권을 가졌으며, 1백 석 이하의 하급 관위(두식斗食)는 해당 관청의 장관이 선임권을 갖고 있었다. 이들 하급 관리는 연차나 공적으로 승진하는 것이 아니고 2백 석 이상의 관위에 오르려면 원칙으로 선거에 따라 추천되어 낭관을 거쳐서 상급관으로 승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두식, 좌사 직과 낭관은 확연히 구별되어 관료 위계질서가 연속이 아니라 단절되고 있었다. 낭관 임용에는 다음 다섯 종류의 방도가 있다. 1. 북변 제군諸郡 출신의 양가자良家子 즉, 호족 고위 관료의 자제로 무술이 뛰어난 자.2. 3년 이상 고급관료(공경에 상당)..

동아시아 역사 2017.11.13

삼국시대, 고려 시대 수원 역사와 유물 (수원화성박물관)

삼국시대, 고려 시대 수원 역사와 유물 (수원화성박물관) 한성백제 시대의 수원 한성백제는 마한 지역 연맹체인 안성천과 한강 유역 소국들의 다양한 정치적 경험을 흡수하면서 성장한 고대국가이다. 백제는 고이왕대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비류왕대 정치, 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4세기 근초고왕대 안정적 국가기반을 바탕으로 활발한 대외 정복 활동을 벌여 경기, 충청을 거쳐 전라도에 이르는 영역을 차지한다. 475년 고구려의 침입으로 한성을 포기하고 웅진으로 천도함으로써 500여 년 가까운 한성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수원지역은 이른 시기에 백제 세력권에 편입되었으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화성 동탄 먹실유적, 발안리 마을 유적이 있다. 삼국 문화의 융합점, 한강 유역과 수원지역 수원지역은 서해안과 한강 하류 ..

동아시아 역사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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