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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문화재, 그림과 글들, 수원화성박물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1. 16.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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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문화재, 그림과 글들, 수원화성박물관


수원의 선비문화

조선시대 수원은 정조와 수원화성으로 대표되지만, 그 이전부터 충과 효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서울과 평양 다음으로 무과武科 급제가가 많았던 수원은 상무尙武 전통과 함께 문무文武를 겸비한 유교 문화가 꽃피었다.


수원 땅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선비들은 유력한 명문 벌열閥閱 가문은 아니지만 수많은 동족 마을을 형성하면서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수원문화재 경보첩 나주나씨


김시진 유언金始辰遺言, 1667년

김시진(1618~1667)이 아들 양신에게 써 준 유언. 김시진은 한성좌윤, 형조, 예조, 호조의 판서와 수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 유언은 그가 죽은 50세의 3월과 4월 두 번에 걸쳐 작성된 것으로, 3월의 기록에는 하나뿐인 적자 양신이 공부를 게을리하여 가문의 유업遺業이 끊어지게 될 것을 걱정하며, 그나마 제사라도 제때에 지내고 남겨준 재산만이라도 잘 보존하라고 당부하였다.


반정균 그림부채 수원문화재 수원화성박물관


경보첩敬寶帖, 근대

수원의 대표 성씨인 나주나씨羅州羅氏 선현의 편지, 서화 등을 모아 만든 첩이다. 성재공필적, 나홍석과 나경석의 편지글, 한말 서예가로 활약하였던 소봉小蓬 나수연羅壽淵 축수시와 묵난 등이 있다.


김시진 유언 수원문화재


반정균 그림부채潘庭筠, 18세기

1766년(영조 42) 동지사 일행의 부사副使로 연행길에 올랐던 김선행金善行(1716~1768)이 청나라의 젊은 선비인 반정균으로부터 선물 받은 그림 부채다.


화면 중앙에 고아한 품격의 묵매墨梅가 그려져 있고 좌측 상단에 화제가 쓰여있다. 1756년(영조 32) 수원부사 재지식에는 경내의 흉년으로 농민들의 양곡이 떨어져 폐농 지경이므로, 창고에 남아 있는 향미餉米를 나누어주도록 상소하였다.

정조의 수원 화성 건설

1789년(정조 13) 정조는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읍치가 있던 화산으로 옮긴다. 이에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상공업 진흥을 위해 시전을 설치하고, 새로운 저수지를 쌓아 둔전을 경영함으로써 자급적 신도시를 만들고자 하였다.


더욱이 화성華城을 건설하고 화성유수부華城留守府를 설치함으로써 수원은 서울 남쪽의 대도회지가 되었다.


화성 건설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백성과 함께하는 여민與民을 실천하고자 한 군주 정조의 꿈이 담겨 있다.


조심태 편지 수원문화재


조심태 편지趙心泰書簡, 1790년

조심태(1740~1799)의 본관은 평양, 자는 집중執仲, 시호는 무의武毅. 1789년(정조 13)에 수원부사水原府使로 재직 시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을 수원으로 이전하는 데 공을 세웠다. 관직은 어영대장과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수원부사 재직 시 보낸 청사 낙성식에 요청하는 편지이다.


수원외촌유생시취방 수원문화재 그림


수원외촌유생시취방水原外村儒生試取榜, 1793년

수원에서 치러진 향시 합격자 명단. 정조실록에 의하면 사관을 파견하여 수원의 유생들에게 제술 시험을 보이고 수석을 한 진사 허간許暕을 전시에 응시하게 하였다.

문서에는 연대가 나와 있지 않지만 시에서 삼하三下를 한 이방李埅을 근거로 한다면 1793년임을 알 수 있다.


오의상 고풍 수원문화재 수원화성박물관


오의상 고풍吳毅常古風

1787년(정조 11)에 별군직別軍職 오의상이 받은 고풍이다. 고풍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선물을 칭해 받은 후 기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고풍'이라 한다.


정조 어사御射와 관련된 자료를 보면, 정조가 활쏘기에서 성적이 잘 나오면 그 자리에 있던 신하들이 축하의 뜻으로 고풍을 청하여 받은 기록이 보인다.


정조 어제어필 연희당 축수시 수원문화재


정조 어제어필 연희당 축수시正祖御製御筆延禧堂軸受詩, 1795년

정조는 화성행궁에서 이미 혜경궁홍씨 진찬을 마쳤지만 1795년(정조 19) 6월 18일 혜경궁홍씨의 회갑을 맞은 날 연희당에서 다시 60회 탄신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당시 정조가 직접 짓고 쓴 축수시다.


수원의 물과 길

수원은 물고을로 서해를 아우르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고구려의 매홀과 신라의 수성, 고려의 수주 등은 모두 '물골'을 뜻한다. 한남정맥의 주봉인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은 서해까지 흐르며 안성천 문화권을 만든다.


수원은 전국 6대로 중 해남로(제주로)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1795년 시흥-안양을 거쳐 수원으로 오는 수원대로水原大路가 열리면서 수원은 모든 임금이 찾는 도시가 되었고, 1번 국도와 경부선 철도가 이 길을 따라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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