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 사건 : 미우라 고로 민비 시해 사건 과정 [매천야록]

명성황후 시해 사건 : 미우라 고로 민비 시해 사건 과정 [매천야록]


조선 말기 황현이 지은 매천야록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 경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인 미우라 고로가 민비 시해 사건을 저질렀는데 이 과정이 상세히 적혀있죠.


아래 글은 서해문고 매천야록을 인용했습니다. 매천야록에 기록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 과정, 미우라 고로가 민비 시해 사건을 저지르는 과정 살펴보시죠.

1. 명성황후 시해 사건 원인 - 명성황후 권력욕

1895년 8월 2일[무자]에 왜국 공사 미우라 고로(삼포오루三浦梧楼)가 대궐에 침입했다. 왕후 민씨가 시해되고, 궁내부대신 이경직과 대대장 홍계훈이 적에게 대항하다가 죽었다. 


왕후는 오랫동안 정사에 참여하지 못하다가 (왜국 공사)정상형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임금에게 정권을 돌려주도록 했다. 그러나 궁에 들어앉아 예전처럼 권세를 부리려고 했으므로 박영효가 미워하여 지난 5월에 음모를 꾸민 것이었다. (신임 공사)미우라 고로는 박영효가 왕후 시해를 노린다는 말을 익히 들었다.


미우라 고로의 회고록

(미우라 고로의 회고록)


※ 박영효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때 직간접적으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무렵 왕후는 차츰 권세를 회복하여 밤마다 궁중에서 놀이를 벌이고 노래를 들었다.


왜국인 소촌실(고무라)에게는 영리한 딸이 있었는데, 왕후가 그녀를 사랑하여 날마다 불러들였다. 미우라 고로는 부하들에게 광대들과 섞여 연극을 보게 하면서 몰래 왕후의 초상을 수십 매 그리게 하여 간직했다.


기일을 정해 거사를 감행했는데, 남의 국모를 시해했다는 죄를 뒤집어쓸까 두려워 대원군과 내통하여 음모를 꾸몄다.

그날 밤 공덕리로 가서 대원군을 가마에 태워 앞세우고 많은 왜놈이 그의 뒤를 따랐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잘못된 사극 주인공)

2. 명성황후 시해 사건 시작 - 미우라 고로 민비 시해 사건 과정

모두 왕후의 초상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소촌실의 딸이 그들을 인도하여 곤령전에 이르자, 궁중에 횃불이 훤히 밝아 땅강아지와 개미 새끼까지도 셀 수 있었다. 이경적을 만나 왕비가 있는 곳을 물으니 이경적이 모른다고 했다.


그가 곧 소매를 들어 왜놈들을 막으니, 저들이 그의 좌우 팔을 잘라 죽였다.


왕후는 (옥호루)벽에 걸린 옷 속으로 피신했지만, 왜놈들이 머리채를 잡아 끄집어냈다.


민비 시해 사건


소촌실의 딸이 확인하자 왕후가 연신 살려 달라고 빌었지만 왜놈들이 칼로 마구 내리쳐 그 시신을 검은 천에 싸서 녹산 아래 숲속에서 석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타다 남은 유해 몇 조각은 주워 불을 지른 곳에 파묻었다.


왕후는 기지가 있고 영리하며 권모술수가 많았는데, 정사에 간여한 지 십 년 만에 나라를 망쳤고 끝내 천고에 없던 변을 당하고 말았다.


미우라 고로 민비 시해


왜놈들이 처음 궁궐에 들어오자 홍계훈이 큰소리로 물었다.


"칙령이 있어서 군사를 불렀는가?"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그는 들것에 실려 돌아갔지만, 며칠 만에 죽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발생한 피해자)


홍계훈은 졸병에서 시작해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성격이 청렴결백하고 몸가짐을 삼가 사대부를 대할 때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으니, 당시 아첨하여 총애를 얻은 자들과는 달랐다. 그의 어머니도 언제나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매천야록 조선말기

(명성황후, 고종, 순종)


3. 미우라 고로, 민비 시해 사건 과정 감추려 하다

미우라 고로가 우리 외부에 이렇게 조회했다.


"어제 병란이 일어났는데 외간에서는 이렇게 전해진다.


'이달 8일(음력 20일) 새벽에 (조선의) 훈련대가 대궐 안으로 돌진해 원통한 일을 호소했는데, 편복을 한 일본인 몇 사람이 섞여 들어가 행패를 부렸다.' 

본 공사는 이 말이 와전된 것이라 보지만 매우 중요한 사건이므로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번거롭지만 귀 대신은 진실을 확실히 조사해서 회답해 주기 바란다."


김윤식이 회답했다.


"우리 군대를 조사해 보니, 그날 대궐에 호소하러 갈 때 만약 시위대와 만나면 서로 알아보지 못해 충돌이 날까 봐 외국 복장을 한 것이었다.


이는 무기를 겨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이 사실은 일본인이 아니었음을 회답한다."


이때 훈련대를 감원하여 군인들의 마음이 불안했으므로 미우라 고로가 이것을 핑계로 탈출구를 마련하려고 이렇게 선언했다.


"훈련대와 떠돌이 왜인들이 섞여서 난당을 조직했다"


그러고는 자기는 모르는 일인 것처럼 했다. 김윤식도, "섞여 들어온 자들은 사실 왜인이 아니라 훈련대가 왜인으로 가장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왜국이 두려워 그들을 두둔해준 것이었다.


== 명성황후 시해 사건 : 미우라 고로 민비 시해 사건 과정 [매천야록] 끝 ==


오른쪽 위. 노년에 이른 미우라 고로

(오른쪽 위. 노년에 이른 미우라 고로)


복잡하네요. 민씨 일가와 민비의 싸이코 행적을 보면.....

복잡한 감정이군요. 당대 조상님들의 속마음은 또 어찌나 복잡했을지 상상이 안 됩니다.

그 와중에 보신하겠다며, 거짓말을 내뱉은 김윤식은 참 한심합니다.


매천야록 2권 을미년(1895년, 고종 32년), 서해문고

[참조1. 매천야록 서평 [클릭]]

[참조 2. 을사늑약을 합리화하는 일본 대학생의 주장[클릭]]


ps1. 황현은 동학운동에 참여한 이들도 역적이라 불렀지만, 일관되게 조정에 반기를 든 집단이나 사람들을 모두 역적이라 불렀습니다. 그를 고리타분한 유학자라 부를 수 있을지언정, 그가 조선의 충신이라는 점에 대해선 논의의 여지가 없습니다.


ps2. 민비란 희대의 악녀가 사망하자 조선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우리 조상이라고 이런 정신 나간 사람까지 감싸줄 이유는 없어요. 민씨 일가가 부당 취득한 재산이 조선 왕실 1년 치 예산에 맞먹을 정도라 했으니, 민씨 일가야 말고 청산해야 할 우리 역사의 비극입니다.


ps3. 조선 말기 동학의 경우엔 세력이 갈라지며 일부는 친일, 일부는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일진회도 마찬가지고요.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ps4. 고려 천추태후는 사극으로 나왔죠. 그녀가 주인공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나라 말아먹은 악녀를 미화했습니다. 명성황후도 천추태후랑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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