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을 합리화하는 일본 대학생의 주장

을사늑약에 대한 어느 일본 대학생의 주장입니다. 논리 자체는 일본인으로선 합리적이겠으나,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 입장에선 매우 비합리적이란 생각입니다. 결과만 놓고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는 식의 논리 전개는 그 과정을 매우 깎아내리는 것으로 행동에 대한 결과를 논의하기보단, 결과만 놓고 결과가 파생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전체 영상을 보고 싶은데 그건 제 능력으로 어떻게 안 되니, 약 6분의 영상 링크와 거기에 나온 패널들의 발언을 텍스트로 남깁니다.



(어느 일본 대학생) 저는 대학에서 역사학과를 나왔는데요. 한국과 일본은 같은 대일본제국의 일원 중 하나였지요? 같이 미국과 영국에 대항했었던 이른바 전우지요. 해방 후, 그런 사실은 빠지고 마치 일본과 한국이 서로 전쟁이라도 했냐는 식의 역사관이 있는데 저는 사과한다는 말 자체가 그렇고 오히려 같은 일본인이었으니까 같이 사과하는 식이 맞지 않나요. 저희는 같은 적을 두고 같이 싸웠으니까요. 그런 역사관은 없나요?


역사는 계속 쌓인 생각들인데 이건 확실하죠. 저는 그걸 젖혀두고 역사적인 사실 하나를 정리하고 싶은데요. 독일이 유대인 학살한 것처럼 일본이 학살했다고 말해지는데요. 일본인은 합병 당시 한국인을 학살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건 좀 과장된 표현입니다. 합병 당시 빨치산들을 탄압하거나 그런 건 있지요. 그건 저도 참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단, 당시의 일본인은 한국을 증오해서 합병한 게 아니에요. 당시는 식민지... 열강의 제국주의의 시대라는 것 위에서 한 거예요. 이건 좀 이해해줬으면 해요. 그러니 당시의 사람들이 나쁘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다른 일본인) 그건... 어쩔 수 없다 뭐다 그렇다 쳐도 그런 논리로 해도 된다는 건 좀....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니까 어쨌건 오케이라고 한다고 말할 순 없죠.


민비 시해 이야기 중민비 시해 이야기 중

(민비 시해 이야기를 하면 흔한 정치 다툼으로 인한 피해자라는 답변이 나오지 않나? 역사적으로도 정치 다툼에 따른 암살이 많았으니. 그러니, 민비 이야기도 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주된 논리는 민중의 고통과 일제의 수탈이 되어야 함)


(최양일) 식민지를 만드는 것에 대해 당시 사람들 누구도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죠. 그거에 대해서는 확실히 1910년 한일강제병합에 대해 말을 하자면 일본이 그런 이데올로기 하에 지배당하고 있었고 그게 무단 통치라는 긴 식민통치로 이어진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한반도의 사람들이 당시의 말 같지 않은 (일제) 정권을 원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죠. 그 부분에서 일단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죠. 마치 강한 우정에 의해 약한 자(한국)를 도와주고 훨씬 더 강한 자(영국,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합병이 있었다는 거는 말도 안 되는 사관으로 연결되는데 저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도 당신은 안 바뀔 거예요. 저런 사관이 바뀌려면 객관적인 사실이 쌓여가야 하는데, 이건 당연한 거죠? 즉, 1910년 (강제) 합병 당시의 일본의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흘러갔었다. 국가 자체는 그러했었다. 그렇지만 36년에 걸친 식민지배가 그런 식으로 긍정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역사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어요.


최양일씨 발언 - 일제 정권을 원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최양일씨 발언 - 일제 정권을 원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최양일 씨의 발언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신 3총사의 이야기보단, 한반도 사람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함)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샘...)


(오구라 기죠) 일단 이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말이죠. 최씨가 말한 당신은 역사를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말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역사란 건 어떤 생각의 방식이건 아우르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의 방식을 갖던 그건 괜찮습니다. 다만, 그게 잘못된 사실에 근거해서 자신의 역사관을 구축한다면 고쳐야 하겠지만, 역사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까지 말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최양일) 그... 이번 문제는 간단한 거예요. 객관적으로 한일 간 역사를 논할 때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해서 말을 하는 한, 자기주장이 객관적 사실에 따랐다는 전제가 있으면, 그걸 부정하는 건 많이 있는 일이지요. 언론이나 비평에서 다루는 전제들을 다 무시해버리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저분이 말한 객관성을 잃은 발언에 대해서 확실히 설명해주려고 한 겁니다. 객관적으로 이런 것들을 말하는 건 최소한 사정을 알고 한일관계에 관해 연구하는 어른들로서 책임이잖아요. 


(오구라 기죠) 제가 생각하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은요. 저 사람이 가진 건 한정된 지식이에요. 대학 시절에 역사를 배운 한정된 지식에 의해서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말했는데, 너 의견도 있지만 그건 틀릴지도 몰라라고 말해주는 게 어른의 책임이라고...


객관성을 잃은 발언에 대해서객관성을 잃은 발언에 대해서

(오구라 기죠가 누군진 모르겠으나, 어른이 역할에 대한 논리는 괜찮음)


(최양일) 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른이라고 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아니라고 말하는 건 잘못됐다고 하는 게 어른의 책임이죠.


(오구라 기죠) 왜 이런 얘기를 했느냐면요 역사의 문제에 관해선 어떤 권력자가 너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어라고 원천봉쇄하면 안 됩니다. 어떤 생각도 할 순 있죠. 


(최양일) 죄송하지만 저는 권력자도 아니고 봉쇄한 것도 아니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한 거 뿐이에요. 


(발췌 끝)


기본적으로 당시 을사늑약이 벌어진 배경에는 민비, 고종, 흥선대원군이란 병신 3총사와 더불어 조선에 야욕을 부리던 열강들이 있었습니다. 한심한 조선의 세 지도자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열강들을 조선 내부로 깊숙이 끌어들였었죠. 이 부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선 사람 대다수는 조선이 일본 일부가 되는 것에 결사반대했습니다. 당시 유명인 중 하나인 황현은 신문과 입소문들을 모아 매천야록을 지었는데, 이분은 책이 완성되기 전,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자결했습니다. 이게 당시 조선인들의 심정이었단 말이죠. 제가 생각하기엔 저런 일본 대학생의 논리에 대해선 민중의 목소리를 근거로 반대 논리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을사조약’ 아니죠! ‘을사늑약’ 맞습니다!)


일본어 음성 자막 때문에 어느 한국분의 주장은 제대로 못 들었는데, 여전히 민비 시해나 을사오적을 예로 들며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개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건 큰 효과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디까지나, 그릇된 정치인의 행동(위에서 언급한 병신 3총사)으로 벌어진 조선인의 고통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논거를 둬야죠. 오히려 민비는 일제를 끌어들인 일등 공신으로 일본 측에선 좋게 볼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참고로 민비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본인 꼬마 아이의 재롱을 보며 귤을 까먹고 있었죠.


그리고 조선과 일본이 힘을 합쳐 유럽과 미국 열강에 대항했다는 부분도 억지 주장입니다.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강제동원[클릭]이란 페이지를 보면, 이런 문맥이 있습니다.


일본의 인적 물적 동원 및 자금 통제 : 의회의 동의 없이 일본 본토와 식민지, 점령지 등 모든 지배 지역의 사람과 물가, 자금을 총동원하여 전쟁에 투입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광범위한 권한을 위임한 전시 통제 기본법이다.


강제 동원 실태 :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하고, 일본인보다 낮은 임금, 이직할 수 없거나 임금을 거의 모두 억지로 저금을 하게 하는 등의 열악한 대우는 다를 바 없었다는 점에서 이름만 다를 뿐 강제동원이라고 할 수 있다. 군인은 처음에는 말뿐인 지원병으로 모집하다가 이후에는 징병령으로 동원하였고, 군무원도 같다. 일본군 ‘위안부’와 여자근로정신대는 속임수와 기만에 의한 동원이 대부분이었다.


함께 힘을 합쳤다기보단, 당시 일제는 자신들의 야욕을 위해 조선을 수탈한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 학교 폭력 가해자 부모들이 자기 못난 자식 옹호하는 허튼 논리랑 비슷하죠? 그냥 억지에 불과한 주장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을사늑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본인에 맞서 민비 시해나 을사오적을 예로 드는 경우를 많이 봐왔었는데, 이건 좀 불만입니다. 당시 민중(황현 같은)과 식민 지배 시절의 조선 수탈에 초점을 맞춰야지, 병신 3총사에 시점을 맞추니 해야 할 이야기를 상당히 빼먹는 느낌이란 말이죠.


을사늑약이 이뤄졌던 중명전 을사늑약이 이뤄졌던 중명전

(출처 : ‘을사조약’ 아니죠! ‘을사늑약’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재일교포인 최양일 씨의 발언은 아쉽네요. 그렇게까지 인신공격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괜한 불씨를 만들어 버렸어요. 어떤 토론의 자리에서도 상대방의 인격을 윽박지르는 발언을 해선 안 됩니다.


ps. 오구라 기죠란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으나, 이 발언은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구라 기죠) 왜 이런 얘기를 했느냐면요 역사의 문제에 관해선 어떤 권력자가 너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어라고 원천봉쇄하면 안 됩니다. 어떤 생각도 할 순 있죠. 


저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 교과서에 반대합니다. 정치 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말하는 친일 미화나 박정희 숭배 때문이 아니죠. 많은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게 정치인의 몫이고 어른의 몫입니다. 근데, 국정 역사 교과서는 이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국정 역사 교과서이자, 중국 한나라 초기에나 이뤄지던 무위사상입니다.


한나라 무제가 유학을 토대로 백성들을 교화시키겠다고 하자 할머니 두태후는 백성들이 무식하고 아는 게 적어야 다스리기 쉽다는 논리를 폅니다. 이게 무위사상인데, 요즘 시대에 박근혜가 무위사상 비스무리한 것을 추진한 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탄핵도 됐으니 국정 역사 교과서 폐지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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