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가야인의 일본열도 이주, 가야와 일본의 교류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5. 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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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인의 일본열도 이주


4세기 말 고구려군이 가야까지 침공하였을 때와 6세기 중엽 가야가 신라에 멸망하였을 때, 많은 가야인이 일본열도로 이주하였다. 이주지역은 주로 규슈 북부였으며, 이후 세토우치 지역을 거쳐 점차 기나이畿内 지역과 도호쿠東北 지역으로도 이주하였다.


이들은 대게 농기구, 무기, 말갖춤 등을 만드는 야철, 제련기술, 농경기술, 직조기술, 스에키 토기를 만드는 기술 등 선진 기술이 있어 일본내 수공업집단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중에는 오사카 남부의 가와치씨河内氏나 오카야마현 서부 및 히로시마현広島市 동부의 기비씨吉備氏 등과 같이 왕권이나 정치권력과 결합해 외교관으로 활약한 집단도 있었다.


합천 옥전고분군 68호무덤 출토 대금계 판갑옷합천 옥전고분군 68호무덤 출토 대금계 판갑옷


일본에서 전해져온 지명 가운데 효고 일대 하리마播磨 지역의 아야베노사토漢部里는 아야히토漢人 곧 아라가야의 아야阿耶-安邪에서 비롯되었고, 데가리오카는 가라히토韓人 곧 가라加羅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있으며, 후쿠오카현, 야마구치현山口縣, 오카야마현, 가가와현, 나라현, 지바현 등지의 가야加耶-賀陽-賀夜, 가라韓良, 다라多羅, 다다라多多羅-太太良-多多良 등 지명을 가야인들이 거주한 흔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야광조개국자고령 지산동 고분군 야광조개국자


고령 지산동 고분군 출토 금동관. 후쿠이현 니혼마쓰야마고분 출토 금동관고령 지산동 고분군 출토 금동관. 후쿠이현 니혼마쓰야마고분 출토 금동관



가야 출토 왜계 갑옷과 투구


일본 고훈시대의 대표 유물인 대금계 갑옷과 투구가 5세기 전반에는 낙동강 하류 지역, 5세기 후반에는 대가야 관련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대금계 갑옷과 투구란 충각부투구, 차양투구라는 투구와 대금계 판갑옷을 함께 가리킨 것인데, 대금계 판갑옷은 가로로 긴 지판으로 된 대금 사이에 삼각형 또는 장방형의 지판을 배치, 연결한 갑옷이다.


5세기 무렵 가야는 이미 기존의 종장판갑옷 보다 실용성이 뛰어나고 기술적으로 복잡한 비늘갑옷으로 개량한 상태였으므로, 같은 시기에 가야지역에서 출토되는 대금계 갑옷과 투구는 실용품이라기보다 교류의 상징적인 물품이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왜계 비늘갑옷도 고성 송학동 고분군 1A-1호 무덤, 고령 지산동 고분군 45호 무덤, 거제 장목고분 등에서 출토되었는데, 대금계 갑주보다 늦은 시기이며, 대개 무덤 주인이 왜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야에 온 왜인이 입었던 것을 무덤에 껴묻었다는 것이다.


출처 - 한성백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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