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청주 백제 유적과 유물 - 송절동, 봉명동, 신봉동 유적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7. 2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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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천변의 풍경, 청주 송절동 유적


청주 송절동 유적은 청두 도심의 서쪽, 미호천과 맞닿은 낮은 구릉지대에 넓리 분포한 마한 시기의 무덤이다.


무덤은 기다란 구덩을 파고 널만 사용한 널무덤과 널 밖에 덧널을 덧댄 덧널무덤이 있다. 또 두 사람을 함께 묻었던 어울무덤도 확인되었다. 또 껴묻거리널을 따로 만든 무덤과 주위에 눈썹 모양의 도량을 갖춘 무덤도 있다.


무덤 안쪽에는 토기, 철기,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주로 둥근 단지와 바리가 짝을 이루고 있다. 철기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 유적은 2~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백제의 중앙세력이 미치기 이전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 정치 집단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송절동 백제 단지송절동 백제 단지


송절동 바리모양토기 백제송절동 바리모양토기 백제


백제의 땅 대길大吉, 청주 봉명동 유적


청주봉명동유적은 해발 60~70m 정도의 구릉에 조밀하게 분포하는데, 대부분 널무덤이고 일부 어울무덤도 발견된다. 무덤 안쪽에는 주검 칸과 유물 부장 칸을 구분하거나 널의 측판을 세우기 위해 기둥을 세웠던 기둥구멍도 확인되어 무덤의 구조와 매장 행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토기류는 기본적으로 바닥이 둥근 단지와 바리가 짝을 이루지만, 굽단지, 아가리 구멍토기, 손잡이 단지, 전달린 토기, 굽구멍단지 등 다양하다. 철기에는 농공구, 무기, 마구류가 있고, 청동 제품은 말모양 허리띠고리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새김글인 대길大吉명 청동방울 등이 있다.


봉명동 백제 단지봉명동 백제 단지


봉명동 쇠뿔손잡이잔, 백제봉명동 쇠뿔손잡이잔, 백제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은 무심천가의 낮은 구릉에 있는 백제권역 최대의 무덤 유적이다.


지금까지 6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돌방무덤 3기와 널무덤, 덧널무덤 320기, 작은 구덩유구 49기, 기타 20기 등이 조사 되었다. 유물은 토기 982점, 철기 1,338점, 금동 18점, 옥석류 1,070점, 기타 45점이 출토되었다.


널무덤은 구릉 전체에 걸쳐 분포하며 빠른 것은 4세기 후반부터 구릉의 아래쪽에서부터 만들어졌다. 돌방무덤은 이보다 약간 늦게 능선의 위쪽에 만들어졌다. 덧널무덤은 크고 깊게 구덩을 판 뒤 바닥에 자갈을 깔고 많은 껴묻거리를 함께 묻은 형태로, 돌방무덤과 함께 상류 계층의 무덤으로 보인다.


이곳에 만들어진 무덤들은 안쪽에서 발견되는 많은 무기류를 통해 전쟁에 참여한 전사집단의 공동 무덤으로 생각된다.


신봉동 입큰 단지, 백제신봉동 입큰 단지, 백제


신봉동 작은 단지신봉동 작은 단지


신봉동 바리모양 토기신봉동 바리모양 토기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매우 다양하다. 철기로는 쇠갑옷과 투구, 둥근고리 큰칼, 큰칼, 손칼, 화살촉, 창 등의 무기류와 발걸이, 재갈 등 마구류 등, 또 단지, 바리, 손잡이 잔 등의 토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러한 출토 유물은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갑옷과 마구류, 철제 무기, 뚜껑 접시 등은 가야, 왜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들과 비교된다. 이 유물을 통해 당시 백제는 청주를 기반으로 하여 한강과 금강, 그리고 백두대간 넘어 낙동강 유역에 이르는 활발한 대외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신봉동 손잡이잔신봉동 손잡이잔


신봉동 병, 백제신봉동 병, 백제


신봉동 접시, 백제신봉동 접시, 백제


출처 - 청주 백제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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