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사극 속 오류 3가지 - 주리, 칼, 사약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3. 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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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벌은 어느 정도 잔혹조선시대 형벌은 어느 정도 잔혹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기축옥사 당시 이발의 노모와 아들이 고문으로 죽임을 당할 정도였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발의 아들은 압슬이라는 고문을 겪다가 죽고, 노모는 매를 맞다가 죽는다.


이발 아들은 압슬형, 노모는 매를 맞아 사망이발 아들은 압슬형, 노모는 매를 맞아 사망


조선시대 압슬조선시대 압슬


압슬은 바닥에 사기 조각이나 자갈을 깔고 무릎을 꿇게 한다. 그 위에 널을 올려놓고 널 위에 사람이 올라가 짓밟아 고통을 주는 것이다. 조선 시대 대역죄인들에게 가끔 썼던 고문이다.


압슬은 대역 죄인을 심문할 때 하던 고문압슬은 대역 죄인을 심문할 때 하던 고문


곤장은 조선 후기에 출현한다.


곤장 세 가지가 있는데 조선 정조 때 관리들의 형장 남용을 막기 위해 형벌도구 규격을 통일한다. 


조선시대 형벌도구 곤장의 종류조선시대 형벌도구 곤장의 종류


곤장은 조선 후기에 출현곤장은 조선 후기에 출현


정조 형벌도구 규격 통일정조 형벌도구 규격 통일


중곤은 제일 길며 길이는 181cm 가량 되며 사형죄에 해당하는 자에게만 사용한다.


곤장 중곤 용도곤장 중곤 용도


대곤은 170cm가량 되며, 소곤은 160cm가 조금 안 된다. 이렇게 3가지 곤장이 존재했다.


곤장, 대곤과 소곤의 차이곤장, 대곤과 소곤의 차이



곤장은 상당히 가혹한 매로, 조선 말기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곤장 서너 대에 피가 솟고 열 대에 살점이 묻어났다고 한다.


프랑스 선교사 리델 - 나의 서울 감옥생활 1878년프랑스 선교사 리델 - 나의 서울 감옥생활 1878년


조선 시대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보면 조선 전기, 후기 할 것 없이 국문할 때 으레 주리를 틉니다만, 고증이 잘못된 겁니다.


조선시대 주리 사용 시작조선시대 주리 사용 시작


조선시대 주리는 17세기 시작조선시대 주리는 17세기 시작


주리를 트는 건 17세기부터 시작됐다. 그것도 포도청이나 지방의 병영에서 도적을 심문할 때 쓰는 것이다.


주리 - 사용 용도주리 - 사용 용도


전반적으로 사극 고증을 다시 해야 한다.



잘못된 고증 1. 용의 눈물과 불멸의 이순신


용의 눈물 - 15세기 조선 전기

불멸의 이순신 - 16세기 조선 중기


용의 눈물-주리용의 눈물-주리


용의 눈물 - 죄인 주리용의 눈물 - 죄인 주리


불멸의 이순신 주리불멸의 이순신 주리


이순신 선조이순신 선조


역사 고증의 중요성역사 고증의 중요성



잘못된 고증 2. 춘향전


춘향이 목에 칼을 쓴 이유춘향이 목에 칼을 쓴 이유


또 하나, 춘향전을 보면 춘향이 목에 칼을 쓰고 옥에 갇힌다. 사실, 규정에 의하면 여성의 목에 칼을 씌울 수 없었다. 그런데도 춘향에게 칼을 씌운 건 변학도가 규정을 무시하고 직권을 남용했다는 뜻이다. 


여성에게 칼을 씌우는 것은 금지여성에게 칼을 씌우는 것은 금지


변학도는 왜 춘향에게 칼을변학도는 왜 춘향에게 칼을



잘못된 고증 3. 사약


조선 시대 사약조선 시대 사약


또 하나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사약을 마시는 장면이다.


드라마 왕과 비 - 사약 장면드라마 왕과 비 - 사약 장면


사약 한 사발 원샷사약 한 사발 원샷


사약의 효과는 곧바로사약의 효과는 곧바로


사약 때문에 사망사약 때문에 사망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마시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죽지는 않았다.


사약의 효과는 사실 사람마다 다름사약의 효과는 사실 사람마다 다름


야사에 의하면 숙종 대 송시열은 한 사발을 마시고 죽지 않아서 두 사발을 마셨다고도 한다. 명종 때 을사사화에 연루된 이명수는 무려 18사발을 마셨는데도 죽지 않아 목을 매서 죽였다는 기록이 연려실기술에 적혀있다.


송시열 사약 두 사발송시열 사약 두 사발


사약 18 사발사약 18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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