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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4

강대한 흉노를 달래던 전한의 효문제 1

출처 - 초한지와 삼국지를 이어주는 전한, 후한지, 장개충 흉노를 달래는 효문제 하, 은, 주 3대 이래로 중국에서는 언제나 흉노족이 환난과 재해의 근원이었다. 한나라 황실에서는 그들 강약의 시기를 알아채고 군비를 갖추어 그들을 정벌하고자 했다. 흉노족은 대체로 북쪽의 미개척지대에서 목축하며 이리저리 이동하며 살았다. 특히 천고마비, 가을철에 말이 살찌면 한바탕 약탈하여 풍성한 겨울을 지내곤 하였다. 그들의 가축에는 말, 소, 양이 많았고, 물과 풀을 따라 이동해가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성곽이나 일정한 주거지가 있을 수가 없었고, 더구나 농사도 짓지 않았으므로 나누어 가질 땅도 없었다. 그들의 일반적인 풍습은 평화 시에는 목축에 종사하는 한편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생계를 세웠고, 전쟁이 일어나면 남..

동아시아 역사 2017.04.30

환빠들의 유목민 한민족 떡밥 [단재 생각 = 유목민은 그냥 야만족]

트랙백 - 환단고기는 지독한 국수주의 역사책인가? 트랙백한 글에서 발췌 나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 즉 그 뿌리를 찾는 과정이다. 단순히 혈통을 찾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뿌리를 고구려 단군 배달 환국까지 확대해주는 역사책이 환단고기이다. 지금 이 순간 사는 우리 사회 구성원 이외의 과거 모든 우리 민족들을 모두 배척하고 있음을 모른다. 북방유목민족들도 단군시대 갈라져 나간 우리 정신문화 바탕을 공유하는 형제들이다. 그러나 식민사학자들은 우리와 관계없다며 배척하고 있다. 누가 국수주의인가? 거기 달린 댓글 하나 1. 현재 사학계에서 고조선은 신화로서 인정하죠.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라요. 서기 300년 이전의 역사는 거의 원시인 수준으로 설명하는 게 현재 사학계인데, 고조선이 과연 국가다..

동아시아 역사 2017.04.06

사마천 궁형이란 치욕을 받다 (전한시대 한무제의 분노)

사마천 궁형이란 치욕을 받다 (전한시대 한무제의 분노) 한서漢書 (전한시대 역사서)누에를 치는 자는 따뜻한 곳에서 누에가 빨리 자라기를 원하므로 누에를 밀봉된 방에 넣어두고 불을 지피게 마련이다. 부형腐刑(남자를 거세하는 형벌, 사마천 궁형 시에도 마찬가지)은 죄인의 몸에 바람이 들어갈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밀봉된 장소에서 행해졌으므로 그곳을 잠실蠶室(궁형에 처할 사람을 가둬두는 곳, 한무제는 바로 이곳에 사마천을 가둠)이라 불렀다. 청나라 저인획, 견호솝직의 부인유폐편 (睽人獲, 堅瓠續集, 婦人幽閉)갈석잉담碣石剩談에 '여자를 탁규椓竅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탁椓은 여형에 나오는 말로 순전舜典의 궁형과 같은 뜻이다. 남자는 거세하고 여자는 막는 것을 이른다. ... '탁규'하는 방법은 나무망치로 여자의..

동아시아 역사 2016.11.21

흉노족의 갈족은 어떤 민족이었을까

흉노족의 갈족은 어떤 민족이었을까 흉노족匈奴은 어떠한 민족이었을까? 민족 구성이 고비사막 이북지역에서의 정복전쟁 과정에서 생겨난 다수의 피정복민족을 포함하여 극히 잡다했다는 점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흉노의 언어는 고대 알타이어의 일종으로, 현재 러시아의 볼가 강을 따라서 사마라와 카잔 사이에 사는 추바슈인들의 언어에 가까웠던 듯하다. 그러나 흉노의 지배 부족 가운데에는 인도, 유럽계로 보이는 인종으로 이루어진 부족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치다 긴푸가 지적하듯이, 흉노 왕후王侯의 분묘로 추측되는 노인 우라 고분에서 출토된 자수刺繡 인물이 그 특징을 갖추고 있다. 또 한무제 때에 흉노를 토벌한 명장 곽거병의 묘 앞에 있는 석조에는 말발굽 아래에 쓰러진 흉노인 앙와상仰臥像이 있는데, 용모가 북유럽계..

동아시아 역사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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