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제 3

강대한 흉노를 달래던 전한의 효문제 2

출처 - 초한지와 삼국지를 이어주는 전한, 후한지, 장개충 효문제 시기, 공주를 흉노 땅에 호송하는 자로 환관 중항렬中行說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그는 먼 길을 떠나려 하지 않았기에 구실을 대어 거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효문제는 그가 연나라 사람으로 북방에서 자랐기에 흉노의 형편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보내지 않고 굳이 그에게 가라고 명하였다. 마침내 거절할 수 없었던 그는 길을 떠날 때, 이런 말을 한다. "조정에는 흉노에 갈 사람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꼭 나에게 가라고 하니 가긴 하겠지만 내가 장차 오랑캐를 도와서 한나라를 해치는 일이 있어도 탓하지 마시오!" 그 말을 들은 모두는 그가 일시적인 화를 못 이겨 한 말이라고 생각하였고, 한낱 환관인 주제에 무슨 힘이 있어서 ..

동아시아 역사 2017.04.30

강대한 흉노를 달래던 전한의 효문제 1

출처 - 초한지와 삼국지를 이어주는 전한, 후한지, 장개충 흉노를 달래는 효문제 하, 은, 주 3대 이래로 중국에서는 언제나 흉노족이 환난과 재해의 근원이었다. 한나라 황실에서는 그들 강약의 시기를 알아채고 군비를 갖추어 그들을 정벌하고자 했다. 흉노족은 대체로 북쪽의 미개척지대에서 목축하며 이리저리 이동하며 살았다. 특히 천고마비, 가을철에 말이 살찌면 한바탕 약탈하여 풍성한 겨울을 지내곤 하였다. 그들의 가축에는 말, 소, 양이 많았고, 물과 풀을 따라 이동해가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성곽이나 일정한 주거지가 있을 수가 없었고, 더구나 농사도 짓지 않았으므로 나누어 가질 땅도 없었다. 그들의 일반적인 풍습은 평화 시에는 목축에 종사하는 한편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생계를 세웠고, 전쟁이 일어나면 남..

동아시아 역사 2017.04.30

북위 문명태후 풍씨(풍태후), 그녀의 프로필 [효문제와의 관계]

북위 문명태후 풍씨(풍태후), 그녀의 프로필 [효문제와의 관계] 문명태후 풍씨(풍태후, 효문제의 어머니)는 하북의 장락군張樂郡 신도信都 기현冀縣 사람으로 북연의 제2대 왕 풍홍馮弘의 손녀이고, 외가는 낙랑 왕씨로 호한의 혼혈녀이다. 오랫동안 이적夷狄 사이에서 생활하여 한족다운 관습이나 감정이 전혀 없었으며 선비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풍태후(북위 원굉의 어머니, 효문제)의 고모가 세조 태무제의 좌소의로 입시入侍한 연유로 그녀는 14세에 문성제의 귀인이 되고 뒤에 황후가 되었으나 자식이 없었다. 문성제가 재위(452~465) 14년 26세를 일기로 죽자 12세의 황태자 홍弘이 즉위하니 이가 헌조 헌문제이다. 문명태후는 거기장군 을혼을 제거하고 헌문제가 유약하다는 이유로 수렴 정치를 하게 되었다. 풍태후 집..

동아시아 역사 2016.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