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장거정이 제거한 하심은, 취화당과 공산주의 취화당이 설립된 것은 하심은이 과거를 포기한 1546(명나라 세종 주후총 시기)년이고, 해체된 것은 1559년이니 약 십 년 정도 유지된 셈이다. 결국 '황목은량皇木銀兩(궁정을 짓기 위해 거둔 조세와 부역)'이라는 특별세 납부를 거부함으로써, 그리고 조세 저항의 과정에서 몇몇 마을 사람들이 무기를 가지고 싸우다가 죽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써 (장거정을 포함한) 지방관들은 이를 빌미로 모든 죄를 하심은에게 뒤집어씌우고 체포하여 교수형을 내렸다. 하지만 후에 다른 사람들의 구제 활동으로 인해 유배로 감형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일생은 황야를 떠돌며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의 연속이 되었다. 왕지원王之垣의 역사록歷仕錄에 "각 성에서 매년 그 행적을 샅샅이 뒤졌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