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천황 2

일본 천지천황이 참여한 백제 부흥전쟁 2

일본서기는 참패의 원인을 '불관기상不觀氣像'과 '난오중군지졸'에 돌리고 있다. 백제왕과 일본 군장 모두에게 공동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극심한 백촌강 입구의 형세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세도 제대로 못 읽은 채 오합지졸로 정예병으로 구성된 나당연합군에 맞섰으니 패배는 명약관화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백제 의병들은 "주유성도 무너졌다. 백제라는 이름도 오늘로써 다했으니 어떻게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며 일본 망명을 결심했다. 9월 11일 모궁牟弓을 출발하여 13일 궁례弓禮에 이른 뒤 침복기성枕服岐城(시무부쿠기사시)에 있는 처자들의 도착을 기다렸다가 663년 9월 24일 마침내 일본으로 향했다고 일본서기 '천지기天智紀'에 기록되어 있다. 좌평 여자신, 달솔 ..

동아시아 역사 2017.04.20

일본 천지천황이 참여한 백제 부흥전쟁 1

출처 - 재미로 읽는 일본 역사의 비밀, 이우각 38대 천지천황의 백제부흥전 참전쟁 한반도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던 백제는 660년 여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 여성천황인 제37대 제명천황(齊明天皇, 사이메이천황 재위 655.1-661.7) 말기에 있었던 국제적 대변란이었다. 34대 서명천황(舒明天皇, 죠메이천황 재위 629.1-641.10) 치세기간에 일본에 와있던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660;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병사)의 왕자 부여풍은 그동안 36대 효덕천황의 치세기간에 전개된 대화개신大化改新의 급한 물결을 가까이서 체험하고 있었다. 천황주권의 회복을 위해 일대 개혁을 단행하는 대화개신의 주역들을 보며 느낀 바가 참으로 많았다. 한데 여성천황인 제명천황 치세 밑에 참담한 ..

동아시아 역사 2017.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