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기 2

금의 해릉왕 - 그 인물과 행적

금의 제4대 황제는 통상 해릉왕海陵王이라 불린다. 태조의 서장자庶長子 완안종간完顔宗幹의 차자로, 본명은 테크나이, 중국명으로는 량亮이라 한다. 그에게는 천덕天德 정원貞元 정륭正隆의 3원호元號가 있고, 13년의 치세(1149-61)를 가진 황제이면서도 묘호(사후 종묘에 제사 지내질 때 그 종묘 내의 위치를 취해 故황제의 칭호에 사용한다)가 칭해지지 않음은 왜일까. (출처 : 天津的一篇高分的高考作文,批判狭隘汉民族主义思维) 궁정 내에서는 임금을 죽이고 모후를 죽여, 규문이 안정되지 않았고, 밖으로는 가혹한 형벌로써 무고한 자를 살해하고, 까닭 없이 맹약을 깨고, 명분 없이 군사를 일으켜 국력을 소모하는 등의 잘못을 지적받아서 사후에도 종묘(종묘에 제사 지내지는 것은 황제의 특권)에 제사 지내지지 않은 채 단순..

동아시아 역사 2017.05.24

진나라를 공격한 수나라의 공격 과정 [천하 통일의 대업 달성]

진의 황제와 신하들이 하는 일 없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을 때 양견은 진을 멸망시키기 위한 작업을 하나하나 진행했다. 진 후주가 즉위할 무렵, 양견은 대장군 한금호韓擒虎를 광주廣州 총관으로 파견하고 여강廬江(지금의 안휘성 여강현)에 진주하도록 지시했으며, 하약필賀若弼을 오주吳州(지금의 강소성 양주현) 총관으로 임명하고 강을 사이에 두고 진나라 수도를 견제하라고 명했다. (출처 : 韩擒虎) (출처 : 隋朝名将贺若弼用兵:大张声势真假难分) 개황 8년(588) 말에는 회남행태성淮南行台省을 수춘壽春에 설치하고 차남 진왕晋王 양광楊廣을 상서령으로 삼아 진나라 토벌전의 총지휘를 맡겼다. 그리고 양광, 양준楊俊, 양소楊素를 행군원수行軍元帥로 임명하고 군사 50여 만을 동원했다. - 양광은 육합六合- 양준은 양양襄陽-..

동아시아 역사 2017.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