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진양추 2

"내 시중을 돌려주시오" - 동진 성제 사마연

성제成帝(동진 사마연)가 석두石頭에 있을 때, 임양任讓이 성제의 눈앞에서 시중侍中인 종아鍾雅(2)와 우위장군右衛將軍 유초劉超(3)를 체포했다. 성제는 울면서 말했다. (322년생 말띠인 사마연은 329년 당시 8세) "내 시중을 돌려주시오." 임양은 황제의 말을 듣지 않고 곧바로 유초와 종아의 목을 베고 말았다.(4) 반란이 평정된 다음 도공陶公(도간, 陶侃)은 임양과 구교舊交가 있었던 고로 그를 용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허류許柳의 아들인 사비思妣란 사람은 훌륭한 인물로서 제공諸公들은 모두 그의 목숨을 구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사비를 살려준다면 도공을 위해 임양을 살려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을 모두 용서해 주기로 하고 이 사실을 성제에게 상주上奏했다. 황제는 말했다. "임양은..

동아시아 역사 2017.01.01

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찬술 시기, 일문)

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찬술 시기, 일문) 찬술 시기위진세어의 찬술 시기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지 배송지 주에서 간보干寶(?~336)와 손성孫盛(302~374)이 위진세어의 고사를 많이 채록하여 그들의 진서晉書를 지었다는 기록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진서는 간보의 진기晉紀와 손성의 진양추晉陽秋를 말한다. 진기는 동진 명제明帝 태녕太寧 3년(325)에 찬술되었고, 진양추는 동진 폐제廢帝 해서공海西公 태화太和 5년(370)에 찬술되었다. 따라서 위진세어는 진기가 찬술된 325년 이전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판단된다. 위세민魏世民은 현존하는 위진세어 일문의 기사記事 중에서 가장 늦은 것이 서진 말 회제懷帝, 민제愍帝 때이므로, 곽반이 서진 말에 진 황실을 따라 강남으로 건너간..

동아시아 역사 2016.11.06
반응형